태을주 천지조화

도마복음과 불교 가르침은 같다 본문

세상이 변한다./현실로 다가오는 예언

도마복음과 불교 가르침은 같다

세덕 2013. 9. 3. 12:43

“도마복음과 불교 가르침은 같다”


“도마복음과 불교 가르침은 같다”


캐나다 리자이나大 오강남 교수 ‘불교평론’ 기고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대화하며 서로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는 당위론에 공감하면서도 양 종교의 접점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주류 그리스도교와 깨달음을 긍극의 목표로 삼는 불교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그리스도교의 ‘회개’나 ‘부활’, ‘구원’ 등을 불교의 ‘깨침’과 같은 것으로 보고 양 종교의 접점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나오는 정도다.

최근 우리에게도 알려진 ‘도마복음’이 주목을 받은 것은 ‘깨침’을 궁극의 목표로 삼는 불교와의 놀라운 유사성 때문. 이런 가운데 오강남(비교종교학) 캐나다 리자이나대 교수가 계간 ‘불교평론’ 최근호에서 “‘도마복음’과 불교는 다 같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며 ‘도마복음’에서 불교의 기본 가르침과 맥을 같이하는 구절을 인용, 풀이해 눈길을 끌고 있다.

오 교수가 ‘도마복음:불교와 그리스도교를 잇는 가교’란 제목의 ‘불교평론’ 기고문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접점을 찾을 수 있는 대표적인 구절로 인용한 ‘도마복음’은 예수가 젖을 먹는 아이를 보고 제자들을 가르친 제22절.

 

“여러분이 (젖을 먹는 아이들처럼) 둘을 하나로 하고, 안을 바깥처럼 바깥을 안처럼 하고, 높은 것을 낮은 것처럼 하고, 암수를 하나로 하여 수컷은 수컷 같지 않고 암컷은 암컷 같지 않게 하고, 새로운 눈을 가지고, 새로운 손을 가지고, 새로운 발을 가지고, 새로운 모양을 가지게 되면, 그러면 여러분은 그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한 구절이다.

 

여기서 오 교수는 젖먹이 어린아이는 주객(主客)과 내외(內外), 상하(上下), 고저(高低), 자웅(雌雄) 등 일견 반대되고 대립되는 것을 반대나 대립으로 보지 않고 조화의 관계로 보는, 이분법적 의식이 없는 상태로 풀이한다. 이는 또한 ‘양극의 조화’, 또는 ‘초이분법적 의식’을 갖는다는 것으로, 분별의 세계를 초월해 불이(不二)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추구하는 불교의 가르침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설 곳을 세상으로 정하고, 육신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났습니다. 나는 그들이 취해 있음을 보았지만, 그 누구도 목말라 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취해 있지만, 술에서 깨면 그들은 그들의 의식을 바꿀 것입니다”란 제28절도 불교와 접점이 큰 구절로 인용됐다. 예수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세상 죄를 지고 가려는 게 아니라, 술에 취한 상태에 있으면서 현상 세계만 실재인 줄 알고 있는 인간들에게 현상 세계 너머에 있는 실재(實在), 진여(眞如), 혹은 자신의 참모습을 보도록 깨우쳐 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오 교수는 특히 술에서 깨면 ‘의식을 바꿀 것’이라고 말한 대목을 예수 가르침의 핵심에 해당하는 부분이라며 주목한다. 그리스어 ‘메타노이아(metanoia·성서에서는 ‘회개’로 번역돼 있음)’를 번역한 ‘의식의 변화’는 단순한 반성을 뜻하기보다 이분법적 의식을 초이분법적 의식으로 변화시키라는 뜻으로, 불교의 ‘깨침’이나 ‘성불’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또 “나그네가 되라”고 한 제42절은 모든 수행의 시작이 집을 떠나는 것과 같다는 걸 지적하는 가르침으로,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도 자기를 모르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 제67절은 일반적인 앎을 기초로 한 인습적 지식을 ‘알음알이’라 하여 위험시하는 말씀으로 각각 풀이한 뒤, 이 역시 불교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은 중요한 구절이라고 설명했다.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