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가면 국립전파연구원 우주전파센터라는 곳이 있습니다. 2011년에 생겼습니다. 우주전파센터 건물 바로 옆에는 비닐하우스 몇 동이 있습니다. 1km 정도 떨어진 곳에는 독신자 숙소까지, 제주에서 특별히 외진 곳은 아니지만, 주변에 상업 시설은 전무합니다. 그래서 전파 간섭이 전혀 없습니다. 정부가 오래 전부터 보유해온 땅인데, 2011년 우주전파센터가 들어서서, 지금은 10여 명의 직원이 가족처럼 근무하고 있습니다. 전파 간섭이 없는 곳은 제주 말고도 많지만, 정부가 땅을 갖고 있었다는 이유로, 여러 직원들이 제주에서 우주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우주전파센터 1층에는 우주 전파 예보 상황실이 있습니다. 대형 모니터에 시뻘건 태양이 떠 있습니다. 미국 나사의 태양 관측 위성(SDO)이 촬영한 영상입니다. 자외선으로 찍은 영상이어서 태양 흑점은 오히려 밝게, 흰색에 가깝게 나타납니다. 흑점의 에너지가 태양의 다른 지점보다 높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외선으로 촬영하는 이유는 태양의 에너지를 관측하기 위해서인데, 에너지가 높으면 밝은 색, 에너지가 낮으면 어두운 색이 나타나도록 했습니다. 에너지에 따라 채도의 변화를 준 겁니다. 자외선으로 찍은 태양 옆에는 같은 위성이 가시광선으로 촬영한 영상도 떠 있는데, 거기 흑점은 말 그대로 정말 까맣습니다.
우주전파센터 근무자들은 미국 위성이 촬영한 영상, 그리고 우리 장비가 관측하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요즘 태양 흑점이 심심치 않게 폭발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미국 위성 영상은 폭발 여부를 확인하는데 큰 도움은 되지 않습니다. 너무 순식간에 번쩍! 하고 섬광처럼 지나가니까요.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대신 흑점 폭발로 지상에서 관측하고 있는 전리층이나 지구 자기장, 고에너지 데이터가 갑자기 요동을 친다, 그러면 바로 흑점 폭발이 있었구나 알게 됩니다. X선은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그런 것처럼, 단 8분이면 지구에 도착해 데이터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어제 오후 1시 25분, 태양 흑점이 또 폭발했습니다. 3단계 폭발입니다. 올해 3단계 폭발이 12번 일어났는데, 최근 2주 사이에 절반인 6번이 집중됐습니다. 우주전파센터는 이번 폭발로 지구 전리층이 15분간 교란됐다고 밝혔습니다. 전리층은 대략 고도 100km 위쪽인데, 태양 자외선이나 우주선이 대기 상층부의 기체 분자를 전리시킨 곳, 즉 + 혹은 -의 이온으로 변화시킨 곳을 뜻합니다. 전리층 교란이라는 것은 이 전리층의 전자 밀도나 높이 등이 평소보다 많이 요동치는 걸 말합니다. 어제 전리층 교란으로 인한 단파 통신 장애는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에 통신을 안 했을 수도 있고, 전리층이 교란되지 않은 지역에 있어서 문제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전리층이 교란된 것은 흑점 폭발의 발생 시각과 관련이 있습니다. 폭발 시각은 오후 1시 25분, 대낮입니다. 바로 이전 5번째 폭발도 같은 흑점 1890에서 일어났는데, 그때는 전리층이 전혀 교란되지 않았습니다. 폭발 시점은 6일 오전 7시 12분입니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아침일 때 흑점이 폭발하면 전리층 교란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고, 대낮에 폭발하면 교란 가능성은 높아진다고 전파센터는 설명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밤일 때 흑점이 폭발하면, 우리가 지구의 그림자에 숨어서 태양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폭발 영향을 덜 받게 되는 원리입니다.
최근 3단계 폭발은 10월 25일 2번, 28일 1번, 30일 1번, 11월 6일 1번, 그리고 어제 또 1번, 이렇게 총 6번입니다. 4번째 폭발까지만 해도, 전리층 교란도 없고 피해도 없다고 하니 저도 그냥 넘어갔습니다만, 이번에 제주까지 찾아가 뉴스로 다룬 이유는 이런 일련의 연쇄 폭발이 더 큰 규모의 폭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궁금증 때문입니다. 인터넷에도 흑점 폭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이러다 대형 폭발이 일어나는 것 아닌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태양 흑점 폭발은 1에서 5단계로 나눠지고, 가장 강력한 게 5단계 폭발입니다. 지구에서는 여러 데이터를 측정하는데, 태양 X선의 세기와 고에너지 입자, 그리고 지구자기장의 교란이 대표적입니다. 각 항목 별로 태양 X선은 R경보(1-5단계), 고에너지 입자는 S경보(1-5단계), 지구자기장 교란은 G경보(1-5단계)를 발령합니다. 흑점 폭발 등급은 이 세 항목 가운데 가장 높은 걸 기준으로 합니다. 예를 들어 R 1등급, S 3등급, G 4등급으로 나왔으면, 4단계 흑점 폭발이 되는 것입니다.
3단계 연쇄 폭발을 대형 폭발의 징조로 볼 수 있을까요. 이전 대형 폭발의 전례가 궁금합니다. 가장 최근 5단계 폭발이 일어난 게 2003년, 태양 활동의 극대기였던 2002년 이듬해였습니다. (극대기는 11년이 주기여서 2013년인 올해도 극대기입니다). 2003년 10월 29일에는 G5 경보가 2번, 30일에 G5 경보가 1번 발령됐습니다. 그 이전 데이터를 보면, 5단계 폭발에 앞서 10월 28일에 4단계 폭발, 26일에 2단계 폭발, 24일에 3단계 폭발이 일어난 걸 알 수 있습니다. 이걸 언뜻 보면, 대폭발의 전조 증상인 중소형 폭발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잦은 기침 잦아지다가 큰 기침 터지는 식입니다.
반면 가장 최근의 4단계 폭발은 2년 전에 있었는데, 그때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2011년 8월 6일에는 G3의 3단계 폭발이 있었는데, 그 전날 1,2,3단계의 폭발이 있었다는 것 말고 전조 증상이라고 할 만한 특징이 전혀 없었습니다. 또 2011년 9월 26일에도 4단계 폭발이 있었지만, 역시 갑자기 대형 폭발이 일어난 것입니다. 작은 것이 조금씩 터지면서, 차분하게 대응을 준비할 만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냥 쾅 하고 터진 것입니다.최승만 우주전파센터장은 흑점 폭발 자체를 예측하는 건 사실상 어렵다고 했습니다. 4,5단계의 대형 폭발이 언제 일어날지 물론이고, 작은 폭발도 미리 알 수 없다는 겁니다. 2003년처럼 대폭발의 전조 증상인 듯 보이는 데이터들이 있긴 하지만, 3단계 폭발이 잇따른다고 해서 그것이 4,5단계 폭발로 이어지는지 입증된 바는 없다고 했습니다. 현재로서 가능한 것은 흑점 폭발을 뒤늦게 알아챈 뒤에,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장애를 미칠 수 있느냐를 미리 예측하는 것입니다. 전파센터는 흑점의 위치와 그것이 폭발한 시간, 그리고 사람의 분석을 종합해 장애 여부를 예보합니다. 우주 전파 ‘예보’라는 것이 그런 뜻입니다.
단파 통신 장애가 대표적입니다. 전리층 교란이라고 하면, 전리층이 뭔지 잘 알지 못하는 이상, 그저 남의 일로 느껴집니다. 전리층은 전자 밀도에 따라 전파를 반사하기도, 흡수하기도 합니다. 단파 통신은 이 전리층의 전파 반사 효과를 이용한 것인데, 항공기 교신에 이 단파 통신을 씁니다. 그래서 북극 항로를 지나는 항공편은 흑점이 크게 폭발했을 경우 통신 장애 우려 때문에 항로를 돌아갈 수 있습니다. 특히 지구의 극 지역을 지날 때는 승객과 승무원들의 방사선 피폭량이 많아진다는 점도 마음에 걸립니다. 극 지역은 태양풍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약해서, 오로라 같은 자연의 장관도 보여주지만, 이런 약점도 있습니다. 단파 통신을 쓰는 군부대와, 지구 전리층을 뚫고 교신하는 인공위성 관제국도 흑점 폭발에 민감합니다. 한 가지 덧붙일 점은 휴대전화 통신인데, 이건 전리층이 아니라 지상 기지국을 쓰기 때문에, 장애 우려가 거의 없습니다.
흑점 폭발은 그 자체를 예측할 수 없어서 좀 불안하긴 합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위도가 높은 편이 아니라서 태양풍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합니다. 적도 지방이 가장 안전하고, 극 지역에 가까워질수록 태양풍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하니 우리로선 그나마 다행입니다. 실제로 2003년과 2011년, 4~5단계 흑점 폭발이 일어났을 때, 우리나라에 통신이나 전력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흑점 폭발 때문에 나한테 뭔가 큰 일이 일어나는 것 아닐까 너무 걱정하기보다는, 흥미로운 미국 위성 사진 사이트에 들어가서 시뻘건 태양과 흑점을 관찰해보는 것이 유익할 수도 있습니다.
http://sdo.gsfc.nasa.gov/
박세용 기자psy05@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