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백제 의자왕>1300년 만에 밝혀진 의자왕 항복의 비밀 <예식진은 누구인가?> 본문
<백제 의자왕>1300년 만에 밝혀진 의자왕 항복의 비밀 <예식진은 누구인가?>
<백제 의자왕>1300년 만에 밝혀진 의자왕 항복의 비밀 <예식진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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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식진은 누구인가?>
백제는 부여, 사, 진, 해, 협, 목, 국, 백씨 등 백제 8대성이 백제의 최고 지배층이라고 역사서에 적혀있다. 그러나 대대로 좌평을 지냈다는 예씨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비는 예씨가 대당좌위위대장군이란 정삼품의 고위직을 지낸 백제의 유력 가문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 말은 즉 이 비가 백제 지배층을 연구하는데 큰 가치가 있는 유물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서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예식진이라는 이름. 그러나 우리는 ‘예식’에 관한 유일한 역사적 기록을 볼 수 있다.
“웅진성에서 그 장군 예식이 의자와 함께 항복하였다.”-<신당서 소정방전>
예식진과 예식. 이 둘은 가문 출신지 직위 활동기간 등이 동일인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 일치한다. 약간씩 다른 이름은 단지 표기상의 문제일 뿐이라는 사실이 사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즉, 예식진은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과 함께 있었던 웅진의 예식 장군임을 알 수 있다.
<예식진. 그의 공적은?>
최고귀족층이면서 역사서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예씨 가문의 비밀! 이것은 뭘 의미하는 것일까? 흑치상지. 백제 패망 후 당에 들어와 예식진과 비슷한 좌위위대장군을 지낸 당나라 명장이다. 그의 묘지명에도 증조부부터 집안 내력이 적혀있다. 그런데 예식진 묘지명의 경우 그의 조부부터 시작했다. 왜 그런 것일까? 그것은 예씨 집안이 조부 예다 때부터 중앙관직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예식진은 백제에서 웅진성의 예씨 집안 고위 장군 출신이었지만, 당나라의 무장으로 출세하게 된다. 그 비결은 과연 무엇인가?
<예식진 출세의 비결은 하극상?>
其大將?植 又將義慈來降(기대장예식 우장의자래항)-구당서
: 그 대장 예식이 의자왕을 거느리고 항복하게 하였다.
-將(장):데리고 가다. 체포해 가다.
즉, 부하인 예식이 왕을 잡아서 투항했다는 의미이다. 부하의 쿠데타, 즉 하극상인 것이다.
예식진 묘지명에 나타나 있는 내용은, 백제 멸망과 관련해 격동의 시대 민첩하게 주군을 바꾸는 예식진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위에 있는 모든 사료는 바로 의자왕의 충복, ‘예식진’이 출세한 내력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의 당나라에서의 출세는 백제의 멸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쿠데타를 통해 주군을 배신하고 당을 등에 업은 예식진의 행적이 묘지명에 암호처럼 새겨져 있다. 1300년 만에 발굴된 묘지명은 그래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중국 낙양의 고 미술가에서 백제와 관련된 주요 유물 한 점이 발견된다. 비의 주인공은 예식진.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백제 웅진 출신의 최고 직위인 좌평을 지낸 백제의 유력가문 출신이다. 또한 백제 금석문의 경우, ‘숫자’가 귀한데 그 정보가 대단히 구체적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금석문의 발견인 것이다. 묘비에 새겨진 대당좌위위대장군, 백제웅천인, 좌평 집안이라는 예식진에 대해 알려주는 몇 가지 글자. KBS 취재진은 직접 중국에 가서 예식진 묘지명을 수소문 끝에 취재하고 이 탁본을 국내 최초로 입수했다.
<예식진은 누구인가?>
백제는 부여, 사, 진, 해, 협, 목, 국, 백씨 등 백제 8대성이 백제의 최고 지배층이라고 역사서에 적혀있다. 그러나 대대로 좌평을 지냈다는 예씨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비는 예씨가 대당좌위위대장군이란 정삼품의 고위직을 지낸 백제의 유력 가문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 말은 즉 이 비가 백제 지배층을 연구하는데 큰 가치가 있는 유물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서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예식진이라는 이름. 그러나 우리는 ‘예식’에 관한 유일한 역사적 기록을 볼 수 있다.
“웅진성에서 그 장군 예식이 의자와 함께 항복하였다.”-<신당서 소정방전>
예식진과 예식. 이 둘은 가문 출신지 직위 활동기간 등이 동일인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 일치한다. 약간씩 다른 이름은 단지 표기상의 문제일 뿐이라는 사실이 사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즉, 예식진은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과 함께 있었던 웅진의 예식 장군임을 알 수 있다.
<예식진. 그의 공적은?>
최고귀족층이면서 역사서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예씨 가문의 비밀! 이것은 뭘 의미하는 것일까? 흑치상지. 백제 패망 후 당에 들어와 예식진과 비슷한 좌위위대장군을 지낸 당나라 명장이다. 그의 묘지명에도 증조부부터 집안 내력이 적혀있다. 그런데 예식진 묘지명의 경우 그의 조부부터 시작했다. 왜 그런 것일까? 그것은 예씨 집안이 조부 예다 때부터 중앙관직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예식진은 백제에서 웅진성의 예씨 집안 고위 장군 출신이었지만, 당나라의 무장으로 출세하게 된다. 그 비결은 과연 무엇인가?
<예식진 출세의 비결은 하극상?>
其大將?植 又將義慈來降(기대장예식 우장의자래항)-구당서
: 그 대장 예식이 의자왕을 거느리고 항복하게 하였다.
-將(장):데리고 가다. 체포해 가다.
즉, 부하인 예식이 왕을 잡아서 투항했다는 의미이다. 부하의 쿠데타, 즉 하극상인 것이다.
예식진 묘지명에 나타나 있는 내용은, 백제 멸망과 관련해 격동의 시대 민첩하게 주군을 바꾸는 예식진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위에 있는 모든 사료는 바로 의자왕의 충복, ‘예식진’이 출세한 내력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의 당나라에서의 출세는 백제의 멸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쿠데타를 통해 주군을 배신하고 당을 등에 업은 예식진의 행적이 묘지명에 암호처럼 새겨져 있다. 1300년 만에 발굴된 묘지명은 그래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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