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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잊혀진 역사

단군조선의 불편한 진실…식민사학을 파헤치다!

세덕 2013. 12. 9. 14:59

단군조선의 불편한 진실…식민사학을 파헤치다!


단군조선의 불편한 진실…식민사학을 파헤치다!

 

“내가 젊었을 적에는 한국 땅에서 단군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실증사학을 내세워 단군을 가상인물로 보기 시작한 것은 이승만 정권 때부터이지요.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이지만 이병도 박사도 잘못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 박사는 말년에 건강이 나빴는데, 어느 날 병실을 찾아갔더니 죽기 전에 옳은 소리를 하겠다며 단군을 실존인물로 인정했어요. 그 사실을 후학들이 모르고 이 박사는 기존 학설에만 매달려온 것입니다.”

 

서울대학교 법대 초대학장을 역임하고 한국 상고사 연구에 매진한 故 최태영 박사의 증언이다.

그러나 개천절을 앞두고 우리나라 사학계에서 단군은 실존인물이고 고조선 건국을 기원전 2333년으로 인정하는 학자는 드물다. 건국연대만 하더라도 중국 기록인 <관자>에 조선이 처음으로 등장한 기원전 8~7세기로 보고 있다.

 

심지어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응한다는 목적으로 설립한 동북아역사재단은 경기도 교육청 소속 역사교사들이 만든 자료집 <살아있는 우리 역사, 고조선>에 대해 “고조선 개국신화는 여전히 신화적인 범주에 속하며 역사적인 사실이 아닌 것이 자명하다”라고 언론을 통해 시정 권고를 내렸다.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과 통치자 단군왕검에 대해 의견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코리안스피릿은 7번째 문화마당으로 식민사학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한 2권의 책을 소개한다.

 

식민사학 뿌리는 일본 제국주의다

 

 

 

 이주한 역사비평가(한가람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는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역사의 아침>에서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서 한국사를 날조한 쓰다 소키치와 이마니시 류 등 일제 사학자들과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 이병도로부터 한반도를 점령한 식민사학을 파헤친다.

 

그동안 종종 제기됐던 문제를 학자들의 실명을 담아서 책으로 비판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노태돈 서울대 교수,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주장이 일제 식민사학자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자신의 권력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역사를 조작한 이병도의 학설은 그의 제자들에게 이어졌다”라며 “이들은 앞장서서 일제 식민사관을 옹호하고 확대하며 재생산했다”라고 분석했다. 때문에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등 국민의 혈세를 받는 기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 것이다.

 

앞서 소개한 <살아있는 우리 역사, 고조선> 자료집에 대해 시정권고를 내린 동북아역사재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식민사학은 역사를 보는 주체적인 관점의 상실이다. 또한 일제 식민사학은 학문이 아니라 침략 이데올로기로 봐야 한다는 점은 주목된다.

흥미로운 것은 식민사학에서 제기하는 문헌적인 부족에 관한 비판을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일본 총리에 대해 반박한 것으로 비유한 대목이다.

 

2012년 8월 27일 일본의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위안부를 강제 연행했다는 사실이 문서로 확인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올해 85세인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는 “나 이상의 증거가 어딨나? 그들이 사람인가?”라고 분노했다. 일본의 극우파 총리는 문서가 없으면 위안부는 없는 것이라고 우겨댄다. 내가 폭행당했다고 주장하는데, 폭행당했다는 문서가 없으면 사실이 아니라는 격이다. 일제 식민사학의 주장이 딱 이와 같았다. 그 추종자인 한국 주류 역사학계도 마찬가지다. p40

 

소고조선론 VS 대고조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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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태 씨는 강단사학, 진보, 재야사학계까지 모두 고대사 왜곡의 주범이라고 비판한 책 <한국 고대사와 그 역적들(책보세)>을 냈다.

 

저자는 고조선 연구의 일인자로 평가받는 윤내현 단국대 명예교수를 故 노무현 대통령으로 비유한다. 노무현이 언론보도와 정치적 비난에 시달렸던 것처럼 윤내현 또한 이기백과 주류 고대사학계로부터 난도질을 당했다는 것이다. 윤내현 표절시비가 대표적이다. 결론은 힘과 권력이 가진 집단이 성공했다는 것이다.

 

고조선에 대해서는 소고조선론과 대고조선론으로 나뉜다. 전자는 남한 주류 고대사학계의 이론으로서 평양중심설이자 중심지 이동설이다. 후자는 신채호 등 민족주의 사학자, 북한학계, 윤내현 등의 이론이다.

특히 논란의 중심은 한사군과 낙랑군이다. 일본 학자들은 한국의 역사학을 시작하면서 한사군과 낙랑군에 몰두했다. 낙랑군은 연구분량과 성과가 많다. 한편 이들의 이론을 배운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있었다. 이병도와 신석호다. 특히 이병도는 한사군과 낙랑군 연구로 유명하다.

 

때문에 해방 이후 역사학계는 고대사에 대한 내용은 한사군과 낙랑군으로 채워졌다. 고구려, 신라, 백제의 초기 역사 등 그 밖의 모든 고대사가 이 낙랑군을 기준으로 구성된다.

저자는 “주류 고대사학계는 낙랑군이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이론을 지켜야 하며 악착같이 소고조선론을 주장해야 한다. 고조선이 큰 나라이면 안 되는 이유, 고조선이 오래전에 국가를 이루어서는 안 되는 이유도 모두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에 대고조선론은 고조선은 오래 전에 고대 국가로 탄생했고 그 영역은 만주와 한반도를 아우르는 넓은 지역이었다. 한사군은 최소한 요동 지역 이서에 설치된 것으로 한반도에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이 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