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환단고기>한민족 뿌리 역사의 근거 - 홍산문화 본문

역사 이야기/잊혀진 역사

<환단고기>한민족 뿌리 역사의 근거 - 홍산문화

세덕 2013. 12. 23. 16:29

<환단고기>한민족 뿌리 역사의 근거 - 홍산문화
<환단고기>한민족 뿌리 역사의 근거 - 홍산문화


 

(아래는 상생출판에서 나온 <<삼성기>> 번역본을 발췌 및 참고한 내용이다)

 

 홍산 문화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홍산 문화에 대해 한 두번 정도는 들어 보셨을 것이다. 홍산 문화란 무엇일까?

 

 

1. 왜 홍산문화라 부르나?

홍산은 내몽골자치구 적봉시의 동북방에 인접한 산의 이름이다. 몽골인들이 '붉은산' 이라는 의미로 '우란하다'라고 부르던 것을 중국이 이 지역을 중국 영토로 편입하면서 '홍산'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름 그대로 적철광으로 뒤덮혀 온통 붉은 색이다.

 

 

좁은 의미의 '홍산문화' 는 BCE 3500년 까지 올라가는 신석기문화로, 내몽골과 요령성의 접경지역은 적봉, 조양, 능원, 객좌, 건평 등을 중심으로 분포된 유적지를 일컫고, 넓은 의미의 '홍산문화'는 요서 일대의 신석기 문화 모두를 일컫는다.

 

 

홍산 문화의 유적발굴은 1920년대 프랑스의 에밀 리쌍에 의해 시작되었고, 1930년대 중국 철학자 양계초의 아들인 양사영이 적봉시의 유적지를 조사한 이래 많은 학자들이 홍산문화 연구에 뛰어들었다. 적봉시의 부락에서만 발견이 되던 1930년대까지만해도 이 문화를 황항역에서 매우 번창한 앙소 문화의 후기에 발전된 문화로 보았다.

 

 

그러나 1979년 5월 요령성 조양시의 몽골족자치현 동산취촌 뒷산 정상에서 대형 제단유적인 '동산취 유적'이 발견되었다. 또 1983년부터 1985년에 걸쳐 동산취 유적에서 50Km정도 떨어진 '우하량촌'에서 대대적으로 유물이 발견되면서 요서 지역의 문화는 이제까지 알려진 바 없는 전혀 다른 문화라는 것이 확인되었고, 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던지게 되었다.

 

 

2. 요하 지역이 주요 신석기 문화

 

 

 

소하서 문화 - 적봉시의 홍산문화 유적보다 늦게 1987년 내몽골에서 발견된 소하서문화 유적은 적어도 BCE6500년까지 올라가는,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적이다.

 

흥륭와 문화 BCE 6200년까지 올라가는 신석기문화 유적지로 동북아시아 집단 주거지가 나왔으며 세계 최고(最古) 옥귀걸이가 발견되었는데 여기서 사용된 옥은 심양시에서 동쪽으로 자동차로 3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요령성 수암에서 나오는 '수암옥' 임이 밝혀졌다.

                    

이것은 BCE 6000년경에 이미 만주 벌판의 서쪽과 동쪽이 교류하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며, 요하 일대의 신석기를 주도한 세력이 예, 맥족과 연결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해문화 - 요령성 소부 의무려산 동쪽의 부신 몽골자치현에서 1982년에 발견되었으며 BCE5600년경에 시작된 문화이다. 유적에서는 특히 돌로 쌓은 용형상물인 석소룡이 발굴되었는데 이것을 중국 정부에서는 중화제일용이라 부른다.

 



 

 

조보구문화 - 적봉시 오한기 고가와포향 조보구촌에서 발견된 9만 평방미터의 유적지에서 발굴되는 BCE 5000년 경의 문화이다. 세계 최초의 봉황모양의 토기가 나왔으며 빗살무늬토기, 세석기 등 요서 지역의 신석기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특징들이 모두 나타난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림이 그려진 토기인 채도가 최초로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 채도는 황하 유역의 앙소문화(BCE 4500~2500) 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요하문명의 발굴 초기에는 앙소문화가 요하지역으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보았다. 그것이 이제는 뒤집어져 BCE 50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조보구 문화가 황하 중류의 '와이형 문화벨트'를 통해 중원의 앙소문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홍산문화 - 홍산문화 유적지 중에서 그 핵심지라 할 수 있는 우하량에서 BCE 3500년까지 올라가는 대형제단, 여신묘, 돌로쌓아 무덤의 묘실을 만든 적석총등이 발굴되었다. 일반적으로 도시의 출현, 문자의 형성, 청동기의 발명을 문명의 3대요소라고 하지만, 제례 문화를 보여주는 제단, 신전, 무덤 등의 발견도 문명의 수준을 척도질함에 있어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 문명의 발굴로 가장 당황한 것은 바로 중국 정부였다. 그 전까지 중국은 자신들의 고대를 황하 유역의 하나라에서 시작해서 상나라, 주나라로 이어지는 시기로 설정했는데 우하량 유적의 발견은 이런 정설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