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정을 뭉쳐야 건강하다 본문

수행과 명상/태을주 수행

정을 뭉쳐야 건강하다

세덕 2012. 3. 16. 13:40

 

정을 뭉쳐야 건강하다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이 태어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하늘은 나를 낳아준 아버지이며 땅은 나를 길러준 어머니입니다. 하늘과 땅이 어울려 우리 몸이 형성된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천지부모의 한 포태에서 생겨난 형제이며, 각종 만물은 나와 함께 가는 동료들입니다. 임금은 하늘과 땅의 장자이며, 정승 신하들은 집안의 장자를 모시는 심부름꾼입니다. 그리고 모든 천하의 노쇠한 사람, 형제 없는 사람, 자식 없는 사람, 홀아비, 과부, 장애자 등은 환난을 겪으면서도 하소연할 데 없는, 모두 불쌍한 나의 형제들입니다『( 정몽正蒙』).
 
 천지안의 모든 만물은 한 뿌리이며, 만상의 변화는 음양인 수화(水火)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수화는 물과 불인데『주역』으로는 감리(坎離) 괘입니다. 이 물과 불은 서로 다른 상극적인 것이지만 실은 한 몸으로 일체가 되어 작용합니다. 하나이면서 둘이라는 오묘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 하나면서 둘의 모습을 자세히 이해하면 큰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물은 아래로 흐르고 불은 위로 타오르려고 합니다. 불이 나면 물로 끄고 물은 불을 가까이 대면 증발해버립니다. 천지안의 만물을 가장 원활하게 움직이게 하는 수화(水火)에는 두 가지의 모습이 있습니다. 무형(無形)의 수화가 있고 유형(有形)의 수화가 있습니다.
 
 무형의 수화는 서로가 생하고 낳아주는 상생의 관계이며, 유형의 수화는 서로가 상극하는 관계입니다. 무형이란 아주 어려운 말로 들릴 수 있는데, 무(無)란 글자는 화(火)와 토(土)의 글자로 되어 있습니다. 유(有)란 글자는 월(月)이 오른쪽 안에 들어가 있어 금수(金水)의 모습입니다.
 
 무형은 없는 듯 보이나 결코‘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무(無)란 글자를 잘 이해하면 동양철학의 핵심을 꿰뚫게 된다고 말합니다. 화(火)란 것은 형태가 드러나면 그 무엇인가 화의 재료가 불타고 있는 것입니다. 불은 밖으로는 활활 타나 내부는 암흑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반면 물은 화가 그 속에 들어 있어 속이 환하게 보입니다.
 
 


 관건은 인체의 기氣를 통일하는 것
 수와 화는 인체에서는 성(性)과 명(命)으로 됩니다. 성은 리(離)괘이고 명은 감(坎)괘입니다. 리괘는 가운데 효가 기토(己土)에서 온 것으로 심장을 상징하고, 감괘는 가운데 효가 무토(戊土)에서 온 것으로 신장을 상징합니다. 이 감리에 있는 두 개의 토[戊己]인 쌍토(雙土)가 통일되어 하나가 되면, 바로 무형의 수화로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심(心)인 리괘에 들어있는 것을 용(龍)이라 하고, 신(腎)인 감괘에 들어있는 것을 호(虎)라고 합니다. 이는 상고로부터 내려오는 가르침으로, 용은 날아가려 하고 호는 아래로 내려 달리려고 합니다. 마음은 언제나 분열하고자 하고, 신장의 정수는 욕정으로 밑으로 빠져나가고자 합니다. 용호를 합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은 이것을 두고 한 것입니다.
 
 인체의 기(氣)는 명문(命門, 하단전, 임맥시스템)에서 통일됩니다. 이 명문은 바로 선천 무형의 수화가 모이는 곳인데, 심장·뇌를 위시한 인체의 모든 기관이 여기에서 기(氣)를 공급받아 사용합니다. 만약에 사용하는 곳은 많은데 명문에서 기운이 통일되어 모아지지 못하면 인체는 질병의 상태가 됩니다.
 
 수행이란 인체의 기(氣)를 통일하여 명문에 충전시키는 길입니다. 무형의 수화는 법신(法身)이 되고 유형의 수화는 색신(色身)이 됩니다. 이 상태가 온전하게 되면 사람의 몸은 마음뿐 아니고 불생불사의 장생으로 나가게 됩니다.
 
 수행을 통하여 마음이 고요한 정극(至靜之極)에 이르러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바로 분산되던 에너지가 통일 결집되면서 비로소 생명의 기(氣)가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도가에서 텅 비어 고요한 가운데에서만 진 종자(眞種子)가 발생한다고 한 것과 오직 허무에서만 도(道)가 살고 있다고 한 것도 이를 말합니다. 불가의 적멸 또한 마찬가지인데 이 허정의 극, 적멸을 이루지 못하면 온전한 기(氣)가 발생하지 아니하고, 단지 기가 분열되면서 소모되어 힘[力]으로 쓰이기만 하는 것입니다.
 
 이 기(氣)는 통일된, 정(靜)으로 인한 정(精)에서 나옵니다. 통일을 백 프로 이루지 못하고 사오십 프로의 상태에서 계속 가져다 쓰기만 하면, 다 성장한 인체가 줄어들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인체는 계속 정(精)이 부족한 상태로 운행하다 보니 잘못된 허열(虛熱)로 인한 울화(虛火)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금화金華의 광명을 회복하는 길
 거듭되지만, 수행의 세계도 천지자연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수화(水火)가 하나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수화가 하나가 되면 이를 토(土)라고 하며 중(中)이라고도 합니다. 토나 중이란 글자를 잘 보면 십(十)과 일(一)이 합하여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화가 하나가 되면, 기질적 감정의 잘못된 생각이 적멸이 되면, 허무의 지극한 정(靜)의 극(極)을 이루면, 곧 토(土)인 중(中)이 되면 어떤 상태가 될까요? 바로 수화통명(水火通明), 수통화명(水通火明)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체내부의 하단전에서 태양 같은, 혹은 보름달 같은 환한 광명이 솟아나오게 됩니다. 눈을 감아도 천지가 환하게 빛의 광명이 찾아옵니다.
 
 흔히 진공(眞空)이나 무(無)는 그냥 텅 비고 없는 것이 아니라 바로 광명(光明)을 회복하는 경지입니다. 무명(無明)의 어둠에서 다시 광명(光明)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플러스 전기[性]와 마이너스 전기[命]가 접촉되어 스파크가 일어나면서 환하게 밝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 광명을 금화(金華)라고 하였습니다. 광명을 회복하게 되면 뜻하는 대로 모든 것이 환하게 보입니다. 만약 수행 중에 천상의 대궐 같은 곳에 가서 아리따운 여인들에게 진수성찬을 대접받았다거나, 신선·도사를 만나 칭찬을 들었다던지 하면, 이는 제 마음의 희망 망상이 만들어 놓은 결과입니다. 이런 경계에 빠지면 수행의 공효가 물거품 되기도 합니다.
 
 무(無)나 공(空)은 무형의 화토(火土)이자 수토(水土)이며 바로 빛의 광명입니다. 허무의 기운은 도가인 선가(仙家)에서 주장하며, 적멸인 공의 기운은 불가(佛家)에서 주장합니다. 철학적으로는 무극과 태극의 다름이 있습니다. 무(無)와 공(空)은 수화가 통일된 상태를 형용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지 못하면 문자에 빠져 달을 가리키는 손만을 보게 됩니다.
 
 당나라의 신선인 여동빈 조사가 지은『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라는 서적에 보면 수행시 일어나는 과정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금화(金華)는 수화의 음양이 하나로 통일된[金] 광명을 일컬으며, 그 앞의 태을(太乙)이란‘가장 큰 하나’라는 태일(太一)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는 모두 오랜 상고로부터 내려오는 수행법입니다.
 
 수행은 바로 태을금화(太乙金華)를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이는 인류라면 누구나 이루어야 하며, 이는 오로지 수행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태을(太乙)은 만유생명의 뿌리이며 전 세계 우주는 태을(太乙)로 통합니다. 증산도의 태을주(太乙呪) 수행은 바로 수행의 궁극을 이루는 수행입니다.(개벽지 말씀중)

 

수행의 바른 체험 해보고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