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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잊혀진 역사

<환단고기>세계 문명사의 시원은 환국문명1

세덕 2014. 6. 7. 12:31

<환단고기>세계 문명사의 시원은 환국문명

<환단고기>세계 문명사의 시원은 환국문명

안경전 종도사님의『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서양문명의 근원인 수메르문명과 배달 동이의 동방문명은 모두 환국에서 나왔다.”

동이는 곧 배달민족

◎ 우리 민족을 배달민족이라고도 하는데 과연 배달과 동이는 같은 민족입니까?

▶배달倍達은 순 우리말 ‘밝달(박달)’에서 온 것입니다. 밝달을 한자로 표기해 배달이 된 것입니다. 밝음을 뜻하는 ‘배’와 땅을 뜻하는 ‘달’이 합쳐진 말입니다. 풀어보면 ‘광명의 동방 땅’이 됩니다. 한민족의 역사는 ‘배달의 역사’가 되는 것이고, 한민족은 바로 배달민족입니다.

그런데 『환단고기』에서 전하는 배달의 역사는 중국 역사서에 동이의 역사로 기록되어 전합니다. 치우천황이 큰 활을 만들어 쓴 이래 중국인들이 동방 배달민족을 동이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동이는 배달동이로 불러야 맞습니다.
홍산유적과 유물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국내 학자들은 홍산지역이 일찍이 곰 토템을 지닌 웅족과 청동기시대 이전 한민족의 원류 중 하나인 배달국이 자리했던 곳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홍산문화의 유적과 유물은 바로 동이족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동이는 바로 배달민족입니다. [지도]

◎ 그러면 배달동이족의 활동무대는 어떠했습니까.

▶인류문명은 중앙아시아 일대의 환국문명에서 시작되어 한편으로는 동방으로 확산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방으로 전파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동방으로 와서 문명을 세운 주체가 동이입니다. 홍산문화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동이는 동북아 일대로 그 영역이 확대되었는데 고대 황하문명의 중심지들도 모두 이 동이의 영역에 들어갑니다. 동이의 일부는 요령성 서부에 와서 한 갈래는 동북으로 다른 한 갈래는 발해를 따라 내려와 산동반도로 진출하였습니다. 즉 신석기시대 말기부터 동이족들은 회하 유역과 산동반도에 걸치는 중국 동해안 일대, 남만주, 발해만 일대, 한반도 북부에 걸쳐 거주하였는데 이들이 세운 나라가 배달에서 단군조선으로 이어졌습니다. 단군조선은 동이문화권의 중심을 형성하였습니다. 그리고 황하 유역의 동이는 은나라를 세워 중국 고대문명의 기초를 놓았는데 그 문화가 대부분 주나라를 비롯한 한족에 의해 계승되어 화하문명으로 꽃피게 된 것입니다. [지도]


 

◎ 흔히 동이라 하면 남만, 북적, 서융과 함께 중국 주변의 오랑캐다, 그렇게들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이는 동쪽 오랑캐다, 그런 뜻이 들어 있기는 있습니까.

▶그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동이는 오랑캐란 뜻이 아닙니다. 이는 후대 중국인들이 자신들을 높이고 주변을 낮추기 위해 만들어 놓은 개념일 뿐입니다. 중국인들은 처음에는 동이를 오랑캐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뛰어난 문명을 가진 사람들로 생각했습니다. 사실 동東이란 글자는 태양이 떠오르는 광명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동방은 생명·탄생·시작을 의미합니다. 광명사상은 동방 한민족 사상의 원형이며, 동방의 뿌리시대에 건립된 국가도 광명사상을 배경으로 하였습니다.

중국 후한 때의 경학자요 문자학자인 허신許愼이 편찬한 중국 최초의 종합 자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이夷 자에 대해 “동방지인야東方之人也. 종대종궁從大從弓”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는 ‘큰 활을 쏘는 동쪽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夷’ 자는 또한 ‘신을 대신하는 사람’과 ‘어진 사람’을 뜻합니다. [그림]

은나라 갑골문에서 이夷는 시尸, 인人과 똑같이 ‘사람이 똑바로 서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 시尸는 제사 때 신이 응감하도록 세워놓은 신상으로 ‘신의 대리인’을 뜻합니다. 이렇게 ‘이夷’ 자를 ‘신의 대리인’을 뜻하는 말로 사용한 것은 당시 동이족이 신성한 종족으로 간주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夷’ 자를 어진 사람으로 해석한 것은 “이夷는 뿌리이니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하여”라고 한 『후한서』「동이열전」에서 분명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중국인의 눈에 비춰진 동이족은 하늘의 이치에 따라 사는 어진 민족이었습니다.

◎ 그런데 어쩌다 ‘동쪽 오랑캐’라는 못된 말꼬리가 붙었을까요.

▶중국의 『사서석지四書釋地』라는 책에는 “3대 이후에는 화華와 이夷가 정해진 구분이 있지만 삼대 이상에는 화와 이가 정해진 구분이 없었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기서 3대는 하·은·주 시대를 말합니다. 즉 중화와 동이를 구분하여 존화양이를 내세운 것은 후기의 일이며 본래는 중국에 화와 이의 구분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서주西周 세력이 이족을 몰아내고 중국의 집권세력으로 등장하면서 자신들의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 화이개념을 만들어내 춘추시대 공자에 의해 그것이 본격화된 것이며 본래는 고정된 화나 고정된 이가 따로 없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이’가 변방의 오랑캐로 폄하된 것은 중국의 의도적인 공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동이는 원래 국한된 한 지역이 아니라 전 중국에 걸쳐 사방에 골고루 분포되어 살았는데 나중에 화하華夏족이 중국의 집권세력으로 등장하면서 동방에 사는 이夷를 동이東夷, 서방에 사는 이夷를 서융西戎, 남방에 사는 이夷를 남만南蠻, 북방에 사는 이夷를 북적北狄이라 폄하하여 부르게 되었습니다. 특히 한무제 때 사마천이 중국 최초의 정사인 『사기』를 저술하면서 동이족 역사의 뿌리부터 왜곡하였습니다.

동이의 진면목을 찾아내어 세상에 처음 알린 것은 역시 동이에 속해 있는 만주족의 청나라였습니다. 청나라는 중국을 통치한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데다가 동이의 일원인 만주족이 다스리는 국가이다 보니 중국인의 해묵은 동이관에 대해 각종 문헌을 통해 객관적 입장에서 면밀히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청나라는 스스로를 동이라고 당당하게 내세우고 주장하였습니다. 청나라는 한족의 거센 반청사상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 ‘사고전서四庫全書’라는 대규모의 국가적 편찬사업을 추진, 완성하였습니다.

이 ‘사고전서’의 동이 기사를 보면 중국의 동이관에는 대내용 동이 문헌과 대외용 동이 문헌이 있으며 이에 따라 두 종류의 동이관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고전서’의 동이 기사에 따르면 중국의 친화적 대외용 동이관이 있었는데도 배타적인 대내용 동이관이 현재 우리 사회에 깊숙이 박혀 있습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우리 선인들이 중국 동이관의 이중성을 알지 못하고 공자의 춘추관, 즉 배타적인 동이관에 안주하여 ‘소중화의식’에 사로잡힌 데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 앞서 동이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중국 쪽 기록들을 통해 말씀하셨는데… 정작 우리에게는 동이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은 반면 중국의 사서나 옛 기록에는 동이에 대한 내용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쉽지만 그렇습니다. 동이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중국 사서를 보아야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대륙을 지배한 민족이 동이족이니만큼 중국인들은 동이에 대해 잘 알 것이고 그러니 기록도 자연스러운 것이겠지요. 우선 『후한서』, 『삼국지』, 『구당서』, 『신당서』 등 중국의 정사들에는 동이전東夷傳이 들어 있기 때문에 동이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가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특히 3세기말 서진의 역사가 진수陳壽가 편찬한 『삼국지』의 「위서魏書」의 동이전에는 부여, 고구려, 옥저, 예, 삼한 사회에 대한 귀중한 기록들이 많아 역사학과 인류학의 보고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150여년 뒤에 나온 『후한서』는 위진남북조 시대 범엽范曄이라는 남조의 송나라 역사가가 편찬한 책인데 이 책의 동이전 서문에 요순시대와 하·은·주 시대의 동이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습니다. 동이에 구이九夷가 있었다는 기록이나 동이족의 영웅이자 인자한 왕으로 이름이 높았던 서언왕에 대한 기록도 여기에 나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학자 심백강沈伯綱 선생은 선진先秦시대부터 청대淸代 전기前期에 이르기까지의 동양의 주요 고서를 모은 청대의 사고전서四庫全書를 조사하여 그 가운데 동이에 관한 자료들을 집성한 분인데, 그에 따르면 경부經部에서는 총491권에 걸쳐 736곳, 사부史部에서는 563권 915곳, 제자백가서들을 모은 자부子不에서는 497권 689곳, 문집인 집부集部에서는 278권 308곳에서 동이에 관한 기록이 확인되었습니다. (『사고전서 중의 동이사료 해제』)

이렇게 우리 조상에 관련된 많은 귀중한 자료들을 중국 고서에서 발견할 수 있으나, 우리 학계는 지금까지도 다른 나라의 기록으로 치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 동이족의 역사가 그렇게 오래 되었다면, 오늘 우리에게도 이름이 알려진 동이족 옛 인물들이 있을 텐데요.

▶배달국의 태호복희씨, 염제신농씨, 치우천황 이 세 분 제왕은 배달시대의 문화영웅입니다. 중국인들이 이 세 분을 자신의 조상으로 만들어 버렸는데 이는 분명한 역사왜곡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탁록이라는 곳에 삼조당三祖堂이 있습니다. 여기에 한민족의 조상인 염제신농씨와 치우천황이 중국 역사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황제 헌원과 함께 모셔져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오래 전부터 우리 배달겨레의 조상인 태호복희씨와 염제신농씨를 자기네 조상으로 모셔왔는데 삼조당을 지으면서 마침내 치우천황까지 자기네 조상으로 모신 것입니다.

한술 더 떠서 중국은 치우천황 후반기의 주 활동무대였던 탁록을 ‘중국 5천년 문명사의 요람’이자 ‘중화민족의 주요 발상지 중의 하나’로 치켜 세웠습니다. 한민족의 조상을 삼조당에 모셔 그들의 조상으로 만들더니, 이제 한민족의 고토인 탁록까지 그들의 시원역사 무대로 만들었습니다.

중국이 자기들 조상이라 우기는 복희씨는 5천여년 전 배달시대에 인간의 생활문명을 크게 진작시켰던 문명의 창시자입니다. 또한 팔괘의 창시자로서 대한민국의 태극기는 바로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복희씨를 모신 사당이 중국 내 도처에 있습니다. 그 가운데 최근에 크게 증축된 하남성 회양현의 복희묘가 가장 규모가 크고 유명하여 그곳에는 수많은 방문객이 늘 장사진을 치고 있습니다. 중국이 이곳에 복희 사당을 내세운 것은 복희씨의 이동 경로를 변조하여 그를 중국 본토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에서 살다 간 완벽한 중국인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왜 복희씨가 완벽한 중국인이 되어야 했는지, 그에 대한 답을 우리는 고풍스럽게 장식한 회양현 사당의 정면에 걸린 현판, ‘인문시조人文始祖’(인류문명의 첫 조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복희씨를 온 인류의 큰 조상으로 내세워, 복희씨의 후손인 현 중국을 전세계 사람들의 어버이 나라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중국 농업·의약·경제의 조신祖神이며, 중국문화의 원천으로 알려져 있는 신농씨도 배달 동이족입니다. 약 5200년전 8세 배달국 안부련환웅 때의 인물인 신농씨는 배달 동이족의 강씨 성의 시조입니다. 그는 고시씨의 방계 자손이며, 웅씨족 출신인 소전少典의 아들입니다. 신농씨의 아버지 소전少典은 안부련환웅의 신하이자, 유웅국有熊國의 군주였습니다. 『태백일사太白逸史』 「삼한관경본기」에 “웅씨족에서 갈려나간 후손 중에 소전이 있었다. 안부련환웅 말기에 소전이 명을 받고 강수에서 군병을 감독했다.”(熊氏之所分曰少典, 安夫連桓雄之末, 少典以命監兵于姜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동이족의 조상인 복희씨, 신농씨, 치우천황을 자기네 조상으로 모시는 것에 대해 ‘한족과 55개 소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서 소수 민족의 조상들은 모두 중국의 조상이다’라는 억지 논리로 정당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들 배달국의 성인 제왕들 외에 우리가 동이족인 줄 알지 못했던 역대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족의 시조로 알려진 황제 헌원을 비롯하여 오제로 손꼽히는 요임금, 순임금도 본래의 혈통이 동이족입니다.

◎ 중국의 상징적인 태평성대로 알려진 요순시절도 동이족 왕들의 치세였다는 말씀인가요?

▶물론입니다. 사마천이 지은 『사기』에는 헌원의 호가 유웅씨라고 했는데, 유웅씨는 환웅의 배달 건국 때 통합, 흡수된 웅족 계열로서 동방문화 개척의 주역입니다. 따라서 헌원은 동이 웅족계열의 배달국 사람이었습니다. 송대宋代 4대 사서 중의 하나인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에 “요堯는 북적지인北狄之人”이라 나와 있고 “순舜은 동이지인東夷之人”이라는 맹자孟子의 말이 실려 있습니다. 맹자가 근거 없이 그런 소리를 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중국인들이 이상적인 군주로 떠받드는 요, 순 임금도 동이족 출신이었습니다.

즉 중국의 고대사는 바로 우리 배달 조선민족이 직접 현지에서 나라를 건설한 창업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결론이 나오는지 알겠죠? 그래요. 우리가 그동안 중국인中國人으로 알고 있었던 중국의 지도자들이 모두 중국의 화하족華夏族이 아닌 동북東北의 이적夷狄출신이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동양東洋의 사상과 문화의 핵심은 중화사상·중국문화가 아니라 동이족東夷族에 의해 형성된 동이사상東夷思想·동이문화東夷文化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