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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라 바이러스>에볼라로 되짚어 보는 바이러스의 역사 본문

세상이 변한다./전염병의 횡포

<에볼라 바이러스>에볼라로 되짚어 보는 바이러스의 역사

세덕 2014. 10. 21. 12:24

 <에볼라 바이러스>에볼라로 되짚어 보는 바이러스의 역사

 <에볼라 바이러스>에볼라로 되짚어 보는 바이러스의 역사
‘악의 축’ 불리지만 유산균·효모 등은 좋은 바이러스…한나절이면 전 세계 전파
 
올여름 세계를 강타한 공포 중 최고는 단연 '에볼라 바이러스'였다. 일단 에볼라 바이러스에 걸리면 온몸의 장기가 파괴되며 죽어가는 병으로 알려져 있었다. 서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에볼라 바이러스의 창궐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여전히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 때문에 파생된 사회적 이슈도 다양하다. 한국에선 발병국도 아닌 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고 이들 국가로부터의 입국조차 터부시하는 여론도 있었다. 사이버 공간에선 아프리카 대륙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기 위해 중국·인도·미국·유럽 등을 잘라서 아프리카 대륙에 모두 넣어 만든 지도가 유행하기도 했다.

 

바이러스는 세균보다 더 작은 존재로, DNA나 RNA와 같은 유전자 정보를 가지고 있는 핵산과 이를 둘러싼 약간의 단백질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지 못해 다른 생물체에 기생, 에너지를 얻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다. 기생하는 생물인 숙주는 동물·식물·세균·곤충 등으로 구분되곤 한다. 1900년께 처음 발견된 바이러스에 관한 연구는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해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분자생물학의 효시가 되기도 했다.

바이러스의 침공이 시작됐다

이들 바이러스가 만들어 내는 병은 비단 '에볼라'뿐만 아니라 일본뇌염·유행성출혈열·광견병·인플루엔자·홍역 등 무척 다양하다. 에이즈·조류인플루엔자·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등도 바이러스와 관련된 질병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도 많아 언제 어떤 바이러스가 출현해 인류의 삶을 위협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더욱이 교통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다. 가령 사람의 접촉을 통해 전염되는 바이러스, 혹은 기침 등을 통해 전염되는 바이러스는 도보 정도가 유일한 이동 수단이었던 과거에는 전파 속도가 굉장히 느렸다. 하지만 요즘은 한나절의 비행만으로 지구 반대편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대륙과 대륙을 넘나드는 건 비행기 삯조차 들지 않는 수월한 일이 돼 버렸다. 전염병이 창궐하면 아예 해당 마을을 폐쇄해 다른 지역으로의 전파를 막곤 했는데, 이젠 전염을 저지해야 할 방어선의 길이와 범위가 너무나도 커져 버렸다.

그간 에볼라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굉장히 높고 사망에 이르는 시간 또한 무척 짧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금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는데, 이런 바이러스는 도리어 전염성이 약하다. 가령 바이러스에 감염되자마자 죽어 버리는 병이라면 미처 바이러스가 다른 숙주로 전파되기 전에 기생하고 있던 숙주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해당 바이러스는 더 이상 살아갈 에너지를 얻을 수 없다. 따라서 굉장히 제한적인 지역만 감염시키고 사라져 버리게 된다. 즉 적절한 잠복기와 치사율 등의 조건을 만족할 때 바이러스의 파괴력은 최강에 도달하게 된다.

몇 년 전 신종 인플루엔자의 창궐로 세계보건기구(WHO)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이후 올 초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대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소아마비 역시 폴리오바이러스가 원인인데, 신생아들이 특히 취약한 바이러스다. 그러나 소아마비는 전 세계적으로 백신이 개발되고 예방접종이 확산되면서 거의 소멸된 것으로 여겨졌다. 한국에서도 소아마비 환자가 보고되지 않은 지 30여 년이 지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파키스탄에서 소아마비가 급작스레 유행했는데, 탈레반들이 예방접종을 미국의 음모라고 주장하며 이를 중단하도록 해 폴리오바이러스가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준 때문이다. 최근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서아프리카 지역에서도 병원에 들어간 환자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 나오는 모습을 보며 에볼라 바이러스는 서양 국가와 의사들의 음모이며 병원이 바로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진원지라고 주장하며 병원을 폐쇄하는 행위가 계속된다고 한다.

한국 역시 6·25전쟁 중 바이러스가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사례가 있다. 6·25전쟁 당시 국군과 미군 수천 명이 유행성출혈열을 앓았는데, 중국의 생물학무기 사용을 의심하기도 했었다. 알고 보니 중국군 역시 전선을 마주한 채 같은 병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전쟁 이후 25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정체가 밝혀진 이 바이러스는 발견된 지역을 흐르는 강의 이름을 따서 '한탄 바이러스'라고 불린다. 격전지였던 이곳에서 사라진 많은 생명들을 떠올리며 탄식하는 '한탄'의 깊은 시름이 담겨져 있는 듯하다.

에볼라 백신 기술이 아닌 비용이 문제

이번 에볼라 바이러스 열풍을 계기로 치료 백신 개발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성공적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특히 영화를 통해 소개되면서 우리들의 기억 속에 더욱 강렬한 공포로 남아 있는 바이러스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 수와 사망자 수 등이 공개되면서 영화에서 느꼈던 공포에 비해 치사율이 의외로 높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번 유행 덕분에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를 더욱 많이 갖게 됐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최근 얻어진 정보가 아니라도 이미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인류에게 많이 알려진 에볼라 바이러스를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백신이 왜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져봄직 하다.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에볼라가 유행한 국가는 기니·시에라리온·라이베리아·나이지리아 등인데 이들은 모두 내전을 겪고 있다. 그 덕에 바이러스와 같은 재앙에 맞서 싸워야 할 정부나 공공 의료 체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백신이 없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도리어 에볼라 바이러스 백신이나 치료제가 소위 시장성이 없기 때문에 기술을 확보할 수 있지만 제품화가 되지 않고 있는 대표적인 상품이라고 볼 수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 백신 개발은 수천억 혹은 수조 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에볼라 바이러스는 여전히 경제적으로 풍요하지 못한 아프리카 지역이 주요 활동 무대다. 과연 백신을 개발한 업체가 개발비를 보전할 수 있을까. 에볼라의 활동 지역이 미국이나 유럽 한가운데였다면 에볼라 바이러스 정복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에볼라 바이러스나 다른 질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 덕분에 악의 축과 같은 이미지를 강하게 가지고 있지만 유산균이나 효모 역시 바이러스다. 이 밖에 '컴퓨터 바이러스' 역시 우리에게 친숙한 존재다. 숙주에 기생하며 자신을 스스로 복제해 병을 일으키는 에볼라 바이러스처럼 컴퓨터 바이러스 역시 프로그램에 자신을 복사해 정상적인 작동을 방해하고 자료를 손상시키곤 해 '바이러스'라는 명칭을 부여받았다. 1980년대 즈음 등장한 컴퓨터 바이러스는 남을 공격하기 위한 악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제작된 경우도 있지만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제작되거나 프로그램 불법 복제를 막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도 있다. 초창기에는 에볼라 바이러스와 혼동해 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된 컴퓨터를 물에 씻거나 방충제를 뿌리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컴퓨터 바이러스 역사의 초기 단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브레인 바이러스다. 서울올림픽 즈음 한국에 상륙한 브레인 바이러스는 디스켓을 통해 복사되며 퍼져나갔다. 브레인 바이러스를 치료하기 위해 한국 최초의 백신인 'V1'이 탄생했고 이 제품이 이후 'V3'로 발전하게 된다. 이 외에도 13일의 금요일에만 작동해 '13일의 금요일' 바이러스라고도 불린 예루살렘 바이러스, 미켈란젤로 생일에 발현되던 미켈란젤로 바이러스 등이 바이러스 역사의 초기를 장식하고 있다.

바이러스의 연구와 정복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새로운 바이러스도 끊임없이 발견될 것이고 변이를 통해 새로이 탄생하는 바이러스도 있다. 이에 맞선 백신 개발을 위한 연구가 이뤄지고 인류와 바이러스는 끝이 없는 전투를 이어 갈 것이다. 그것이 사람의 몸을 위협하는 바이러스이건, 컴퓨터 가상공간에 존재하는 바이러스이건 간에 말이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