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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상제문화의 회복을 주장하다

세덕 2012. 3. 22. 16:00

다산 정약용, 상제문화의 회복을 주장하다


다산 정약용, 상제문화의 회복을 주장하다
 
역사스페셜 '정약용 3형제, 과연 신(神)을 버렸나?' 94회 1월26일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다산 정약용은 실학의 집대성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고대 유교문화에서 섬겨온 ‘하늘의 주재자이신 상제님 문화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산은 젊어서 한때 서적을 읽고 천주교에 심취하여 전도까지 한 일이 있었으나, 조상을 우상이라 여기고 신주를 불태우는 행태에 분노하여 신앙을 버렸다.

그 후 그는 유교의 본질이 상제신앙에 있음을 깨닫고 주요 경전 속에 드러난 상제사상을 정리하여 방대한 주석을 내놓았다.
그리고 성리학의 관념적인 천天 개념을 비판하면서 상제님을 인격적인 존재로 말하였다. 다산 철학의 출발점이자 근간은 한마디로 동방의 인격 주신의 상제천, 즉 상제님의 천명을 세우는 일이었다.

상제님이란 누구신가? 이는 천지신인天地神人 밖에서 그것들을 조화하고 재제안양宰制安養하시는 분이다.
상제를 하늘이라 이르는 것은 마치 국왕을 ‘나라’라 하는 것과 같다.
저 푸르고 형체를 갖춘 하늘을 가리켜 상제라 하는 것은 아니다.
일음일양으로 운동하는 위에 분명히 이를 주재하는 조화의 근본(상제님)이 있다.
껍질뿐인 태극과 리로써 천지만물의 ‘주재 근본’을 삼는다면 천지간의 일들이 다스려질 수 있겠는가.

 다산은 성리학자들이 하늘을 감정도 형체도 없는 ‘도, 태극, 리理’ 등 극히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이해하는 것을 비판하고, 그러한 태도는 날마다 온 인류의 곁에 계시며 굽어보시는 상제님에 대해 삼가고 두려워하는 감정을 사라지게 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다산의 견해는 조선 후기, 주자학 일변도의 학풍 속에서 이단시되었으며 이후 상제문화는 안타깝게도 또다시 어둠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출처 : 개벽실제상황 258p 
  
* 최근 동양철학자들이 펴고 있는 논지는 '다산은 천주교에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 천주교의 천주신앙이 원시 유교에도 있음을 발견하여 유교쪽으로 미심을 되돌리려 하였고 또 그것이 유교의 핵심임을 주장하였다'는 것이다
 


참고 : 다산 정약용의 상제님 이야기
  
상제의 체는 형과 질이 없으므로 귀신과 같은 덕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귀신’이라 이른 것이다. 감응하여 굽어보는 것으로 말한 까닭에 ‘귀신’이라 한 것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하늘을 리로 생각하고 그로써 귀신을 공용으로 여기며, 조화의 자취로 여기기도 하고 二氣의 양능으로 여기기도 하니, 마음 속으로는 리를 안다고 하지만 아득하고 답답하여 거의 아무 지각도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어두운 방 속에서는 제 마음을 속여 기탄없이 함부로 하며, 평생토록 도를 배운다 하더라도 그와함께 요순의 경지에는 들어갈 수 없으니 이는 모두 귀신의 설이 분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유당전서, 중용강의)


일음일양 하는 위에 분명히 이를 주재하는 상제님이 계시다.
(여유당전서, 역학제언, 2. 2a. 一陰一陽之上, 明有造化之本)

상제님이란 누구신가? 이는 天地神人의 밖에서 그것들을 造化하고 宰制安養(주재하고 안정시키심)하시는 분이다. 상제를 하늘이라 이르는 것은 마치 국왕을 ‘나라’라 하는 것과 같다. 저 푸르고 푸른 형체를 갖춘 하늘을 가리켜 상제라 하는 것은 아니다.

(여유당전서, 춘추고증, 4, 24a. 上帝者何, 是於天地神人之外, 造化天地神人萬物之類. 而宰制安養之者也.)

오직 옥황상제만은 형질이 없기는 하지만 날마다 곁에 계시면서 굽이보시며 천지를 통괄하시면서 만물의 부모가 되시고 백신의 조종이 되시니 뚜렷하고 빛나시되 위에 와 계심이 분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이점에서 조심조심 뚜렷이 그분을 섬기시니 여기에 郊祭가 일어나게 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에 明神은 명을 받아 혹 일월성신풍운뇌우를 맡기도 하고 또는 토곡산천구능임택을 맡기도 하는 것이다. … 하늘의 明神이란 하늘과 땅을 맡아 밝게 퍼져있고 널리 나열되어 천명을 받들고 인사를 돕는 것이니 이 또한 만물이 한 근본임을 밝히는 증거와 경험이다. (춘추고정)

옛 사람들은 實心으로 하늘을 섬기고 실심으로 神을 섬겼다. 움직이거나 고요하거나 한 생각이 싹틀 때에는 혹 진실하기도 하고 혹 거짓되기도 하며 혹 착하기도 하고 혹 악하기도 하니, ‘나날이 이 곳을 살피고 계신다’라고 경계하여 말하였다. 그러므로 경계하고 삼가며, 두려워하고 홀로 있음을 삼가 功이 진실로 간절하고 독실하여 하늘의 덕에 통하였다. (여유당전서, 중용강의 1-21)

사람이 태어남에 욕망이 없을 수 없다. 그 욕망에 따라 그것을 채우려 한다면 방자하고 사악해지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이 감히 드러내 놓고 그것을 범하지 못함은 삼가고 경계하며 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삼가고 경계하는가?
위로 관리가 있어 법을 집행하는 것이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위로 임금이 계시어 벌주고 죽일 수 있음이다. 만약 위로 군장이 없음을 안다면 누가 방자하고 사악한 짓을 하지 않을 것인가? 대저 어두운 방에서 삿된 생각 망녕된 생각으로 마음 속에서 간음하고 도적질하고서도 그 다음날 의관을 바로하고 단정히 앉아 용모를 가다듬으면 완전히 흠없는 군자라. 관장이 알 수 없고 군왕도 살필 수 없으니 죽을 때까지 거짓을 행하고도 당대의 명예를 잃지 않고 욕망에 따라 악을 짓고도 후세에 숭앙을 받는 자가 천하에 즐비하다. … 군자가 어두운 방 가운데 있을 때도 두려워하여 감히 악을 행하지 못하는 것은 상제께서 조림하고 계심을 알기 때문이다. … 천명과 도와 교를 하나의 理라 귀속시킨다면, 리는 본래 지각도 없고 위용도 없는데 무엇을 삼가며 무엇을 두려워 할 것인가? …격물치지는 사물의 본말을 아는 것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요, 明善은 반드시 하늘을 알아야 한다. 하늘을 안 이후에야 선을 택할 수 있다. (여유당전서, 중용자잠)

저 푸르고 푸른 유형의 천은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집의 지붕에 불과한 것으로 그 品級은 土地水火와 동등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 어찌 우리들의 性道의 근본이 될 수 있겠는가? …무릇 천하의 무형지물(태극)은 능히 주재할 수 없는 까닭에, 한 집안의 가장에 혼미하고 우매하며 지혜롭지 못하면 집안 만사가 다스려지지 않고, 한 현의 현관이 혼미하고 우매하며 지혜롭지 못하면 현 안의 만사가 다스려지지 않는 법이다. 하물며 빈 껍질 뿐인 태극과 리로써 천지만물의 주재 근본을 삼는다면 천지간의 일들이 다스려질 수 있겠는가? (여유당전서, 맹자요의, 2-3後.)

천지귀신이 빽빽한 나무처럼 늘어선 가운데에서 지극히 존대한 것은 상제님일 뿐이다, …하늘의 所以는 인간의 선악을 살피는 데 있으니 항상 人倫에 있다. 고로 인간의 所以는 修身하여 하늘을 섬기고 人倫을 힘씀에 있다.(여유당전서, 중용강의1-23, 중용자잠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