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스발바르국제종자저장소>북극 스발바르 미래를 담은 씨앗들-노아의 방주 본문

세상이 변한다./지구는 위기

<스발바르국제종자저장소>북극 스발바르 미래를 담은 씨앗들-노아의 방주

세덕 2016. 12. 14. 09:44


<스발바르국제종자저장소>북극 스발바르 미래를 담은 씨앗들-노아의 방주

<스발바르국제종자저장소>북극 스발바르 미래를 담은 씨앗들-노아의 방주



노르웨이 스발바르제도 스피츠베르겐섬 롱이어비엔에 있는 스발바르국제종자저장소 . |세계작물다양성재단(GCDT)

노르웨이의 스발바르(Svalbard) 제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메마르고 척박한 곳이다. 전체의 60%가 빙하다. 북위 74~81도인 이곳에서 1300㎞를 더 가면 북극이다. 스발바르의 중심지 롱이어비엔은 10월26일부터 다음해 2월15일까지 해가 뜨지 않는다. 빛이라고는 눈에 부딪치는 달빛뿐이다. 인류는 이 영원히 녹지 않는 어두운 땅 깊숙이 ‘미래’를 묻어두었다. 씨앗이다.

빵과 쌀, 술과 담배, 기름과 향신료, 연료, 옷감까지 씨앗이 틔운 문명은 우리 삶의 ‘거의 모든 것’이다. 이런 씨앗이 어느 날 사라진다면? 그래서 지구에 어떤 재앙이 닥쳐도 씨앗을 보호할 수 있는 창고가 만들어졌다. 세계 각국 정부, 연구기관, 유전자은행 등에서 보내온 종자 88만여종이 스발바르국제종자저장소(Svalbard Global Seed Vault)에서 깊은 겨울잠을 자고 있다. 전 세계 1750개 종자저장소들의 최후의 보루로, 세계 중요 작물 종자 3분의 1이 이곳에 보관돼 있다. 기독교 성서에서 대홍수 때 노아의 가족과 동물이 탄 배에 비유해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고 불리는 이유다. 밥상의 근원인 씨앗을 찾는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가 스발바르였던 건 그래서였다. 한국 언론 최초로 스발바르의 종자저장소를 찾았다.

영하 18도의 씨앗 창고
밀가루 450㎏, 곡식가루 50㎏, 청완두 30㎏, 커피 20㎏, 고다 치즈 14㎏, 마카로니 15㎏, 말린 자두와 건포도 각각 12㎏. 롱이어비엔의 식당 ‘크루아’에는 전설적인 북극곰 사냥꾼 힐마르 노이스가 1929년 동료 사냥꾼 세 명과 함께 겨울을 나는 데 필요한 물품을 적어놓은 목록이 장식으로 걸려 있다.
지구 상에서 사람이 사는 가장 북쪽 동네의 겨울은 혹독했다. 배로 본토 노르웨이를 오가던 시절 바다가 얼면 이곳은 완벽히 고립됐다. 이듬해 봄 바다가 녹아 다시 보급선이 오가기 전까지 버티기 위한 월동식량은 필수였다. 1975년 롱이어비엔에 공항이 생기면서 힘겨운 월동은 사라졌다. 기후변화로 이제 롱이어비엔 앞 아드방피오르는 얼지 않는다.

스발바르제도는 여러 섬으로 이뤄져 있는데 스피츠베르겐 섬이 가장 크다. 공항이 있고 번화한 롱이어비엔, 러시아타운이 형성된 바렌츠부르그, 북극 연구기지가 들어서 있는 뉘올레순 등이 주요 거주지역이다. 한국의 다산기지도 뉘올레순에 있다. 스발바르의 주민은 약 2100명. 집집마다 주차된 겨울철 교통수단 스노모빌 숫자(4000여개)가 인구보다 많다.


스발바르의 관문 롱이어비엔 공항 뒷편에 자리잡은 사암산 플라토베르겟 중턱에 스발바르국제종자저장소 입구가 삐죽 나와 있다. |이인숙기자

지난 9월16일 낮 12시 롱이어비엔 공항 활주로에 내려섰다. 자그마한 공항 건물에 들어서자 이방인을 가장 먼저 맞아준 것은 수화물 찾는 곳 한가운데 서 있는 하얀 북극곰 모형이었다. 털모자를 눌러 쓴 50대 남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북유럽유전자자원센터(노르젠·NordGen)의 아스문드 아스달 박사(59)였다. 아스달 박사는 센터가 관리하는 스발바르국제종자저장소의 코디네이터다. 씨앗을 받아 보관하는 일 전반을 관리하고 외부 방문자들을 맞는 일도 한다. 그는 이곳에 1년에 5~7번 온다. 저장소에는 상주 직원이 없다. 저장소 가동을 맡은 국영 시설관리회사 스타츠비그 직원만 1년 내내 머문다.

그의 차를 타고 흙길을 천천히 달렸다. 그가 손으로 공항 뒷산을 가리켰다. 유심히 보니 나무도, 녹색도 없는 암갈색 민둥산의 중턱쯤 작은 회색 점이 보였다. “저기가 저장소예요.” 공항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곳에 저장소를 지은 건 씨앗 운송시간을 가능한 한 줄이기 위해서다.

구불구불 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산을 오르자 회색점이 점차 커졌다. 산에서 삐죽 나와 있는 네모난 상자 모양의 큰 시멘트 구조물이 나타났다. 저장소의 입구다. 산 윗부분은 평평한 고지대다. 그래서 고원이 있는 큰 바위라는 뜻의 ‘플라토베르겟’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말 그대로 산 전체가 큰 사암 덩어리다. 씨앗을 보관하기 위해 암반을 뚫고 120m 깊이 굴을 팠다. 저장소는 맨 안쪽에 있다. 산 밖으로 드러난 입구는 산 속에 묻힌 거대한 저장소의 작은 일부일 뿐이다.

입구 위쪽에서는 주기적으로 ‘윙’하는 소리가 들렸다. 환기 시설이 저장고 온도를 늘 차갑게 유지하기 위해 공기를 밖으로 빼내는 것이다. 아스달 박사가 열쇠를 꺼내 굳게 닫힌 철문을 열었다.


소행성 충돌에도 버틴다
저장고까지 가려면 세 개의 문을 지나야 한다. 첫번째 문앞에는 파란 헬멧과 방한복이 놓여 있었다. 한겨울이 되면 천정까지 온통 얼음으로 뒤덮이기 때문에 꼭 안전모를 써야 한단다. 방명록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이곳을 다녀간 인사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첫번째 문을 열자 내리막길이 쭉 뻗은 긴 복도가 나타났다. 복도 앞부분은 ‘스발바르 튜브’라 불리는 골판지 모양의 쇠로 된 원통이다. 저장고를 가장 안전한 곳에 만들기 위해 사암 암반층 바로 아래에 뒀는데 이 암반층으로 접근하는 통로다. 저장고는 입구보다 1.5m 낮다. 저장소를 지을 때 규모 6.2 강진까지 견디는 내진 설계를 했고, 그보다 큰 지진이 나도 이 천연암반층이 지켜주게 돼 있다. 기본적으로 지각활동이 적은 곳을 고르기도 했다. 핵무기 공격과 소행성 충돌까지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 해수면보다 130m 위에 있어 빙하가 녹아도 물에 잠기지 않는다.


스발바르국제종자저장소 안 저장고로 연결되는 긴 복도. |이인숙기자

튜브를 지나 복도 끝 오른쪽에 작은 사무실이 자리잡고 있다. 책상 두 개와 의자, 캐비넷, 종자에 관한 사항을 기록하기 위한 작은 컴퓨터 하나가 전부였다. 사무실 왼쪽 벽에는 벤트 스코브만 박사(Dr. Bent Skovman)를 기리는 동판이 박혀 있다. 덴마크 식물학자 스코브만은 2003년 노르젠의 전신인 북유럽유전자은행을 이끌면서 저장소 설립을 지휘했으나 개관을 불과 열 달 앞두고 뇌종양으로 숨졌다.

두번째 문에 다가서니 공기가 부쩍 차가워졌다. 손잡이 부근에 성에가 끼어 있다. 아스달 박사가 “이제 카메라를 안으로 갖고 들어가면 나와서는 한동안 렌즈에 김이 서려 있을 테니 지금 사진을 찍으라”고 귀띔을 해줬다. 문이 열리자 넓은 굴과 저장고 3개의 출입문이 나타났다. 가동 중인 한 곳의 출입문은 온통 하얗게 성에로 덮였다. 저장고는 씨앗이 발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늘 영하 18도로 유지된다. 천재지변으로 전기가 끊겨도 암반층 안은 영하 3.5도의 자연냉동상태가 이어진다.

씨앗 창고에 들어섰다. 냉기가 온몸에 스며들었다. 입구 위쪽 냉각팬이 끊임없이 찬 바람을 들여보내, 체감온도는 영하 18도보다 더 내려간다. 창고 내부는 단순하다. 길이 27m, 너비 10m 암석 동굴에 열 칸으로 나뉜 철제선반이 일곱 줄로 늘어서 있다. 종자는 산소와 물기를 제거하고 세 겹으로 특수밀봉된 봉투에 담긴 뒤 플라스틱 상자에 넣어져 철제 선반에 차곡차곡 쌓인다.

저장고는 약 80%가 찼다. 창고가 다 차면 두번째 저장고를 연다. 지난 10월18일에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반자루카 대학, 싱가포르의 테마섹 생명과학연구소 등 9곳으로부터 씨앗 상자 25개가 도착했다. 이것들을 더해 창고에 보관된 종자는 모두 88만 837종. 저장소는 품종 하나당 씨앗 500개씩 최대 450만종까지 보관할 수 있다. 전 세계 유전자은행에 보관된 씨앗 전부의 2배가 넘는 용량이다.



발바르국제종자저장소를 관리하는 북유럽유전자자원센터의 아스문드 아스달 박사가 종자 저장고로 들어가는 문을 열고 있다. 저장고 내 온도를 영하18도를 유지하는 냉각시스템이 가동되고 있기 때문에 출입문과 창고 주변이 온통 성에로 뒤덮였다. |이인숙기자


유일한 나무 상자의 주인은
이곳에 오는 방문객이면 누구나 카메라를 들이대는 붉은 상자가 있다. 북한의 것이다. 독특한 외양 때문인데 이곳의 유일한 나무상자다. 대만에서 보낸 녹색 플라스틱 상자와 나란히 놓여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뜻하는 ‘DPR of Korea’가 쓰인 나무상자 여섯 개에 번호가 매겨져 있다. 한국도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가 2008년 6월, 9월에 토종 보리, 참깨, 콩 등 30종 1만3185점을 이곳으로 보냈다. 파란 플라스틱 박스 윗면에는 나라 이름과 함께 태극기가 붙어 있다.
저장소의 문턱은 높지 않다. 운송비만 있으면 씨앗을 보낼 수 있다. 국가, 연구기관, 비영리단체가 주요 ‘의뢰인’이다. 그러나 한번 닫힌 저장소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이곳에 보낸 씨앗은 똑같은 씨앗이 먼저 자체 유전자은행에 안전하게 보관돼 있어야 한다. 여기는 보존하던 씨앗을 잃어버려 원형을 찾을 수 없게 됐을 때 마지막 도움을 요청하는 곳이다.

저장소는 금고를 관리할 뿐, 씨앗의 주인은 맡긴 국가나 연구소다. 저장소도 맘대로 상자를 열어볼 수 없다. 유전자변형(GM) 종자는 들어올 수 없다. 차가운 온도로 씨앗이 자라지 못하게 막지만 아스달 박사는 “씨앗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이 때문에 각국 유전자 은행은 5년마다 씨앗의 활력을 점검해야 한다. 발아하기 힘든 종자를 새 종자로 바꾸면서 이곳에도 바꾼 종자를 보내줘야 한다.

지금까지 저장고는 딱 한번 열렸다. 지난해 9월 시리아 알레포의 국제건조지역농업연구센터(ICARDA)가 저장소에 SOS를 쳤다. 알레포가 있던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인류 역사상 농경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으로 유전자원의 보고다. 알레포 유전자은행에는 128개국에서 온 밀, 보리, 렌틸콩, 잠두 등 종자 15만종이 보관돼 있었다. 그러나 내전이 벌어지면서 2012년 반군이 알레포 남쪽 32㎞떨어진 곳에 있던 ICARDA 연구실과 유전자은행을 장악했다. 연구센터는 2012년 모든 인력을 철수시키고 레바논 베이루트로 본부를 옮겼다. 반군도 유전자은행은 파괴하지 않았지만 은행에 있는 씨앗을 옮겨오거나 접근할 수는 없게 됐다.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소 안에 보관돼 있는 북한의 종자 상자. 저장고 안에서 유일한 나무박스다. |이인숙기자

결국 알레포 은행과 동일한 쌍둥이 은행을 만들기로 했다. 스발바르에 똑같은 종자들이 대부분 보관돼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곳에 맡겼던 종자 3만8073종이 배에 실려 레바논과 모로코로 향했다. 지난달 29일 레바논 테르볼과 모로코 라바트에 총 13만5000종을 보관할 수 있는 자매은행이 문을 열었다.

저장소의 냉각시스템은 롱이어비엔에 하나 남은 석탄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로 돌아간다. 미지의 탐험지, 북극곰 사냥터였던 스발바르는 20세기 말 탄광촌으로 변모했다. 1906년 미국의 탄광회사가 이곳에 가장 먼저 진출했다. 롱이어비엔은 이 회사 사주인 존 먼로 롱이어의 이름에서 나왔다. 10년 후에는 노르웨이 국영 광산회사 SNSK가 들어왔다. 땅주인이 없던 스발바르에서 석탄이 대거 발견되자 쟁탈전은 더 치열해졌다. 1925년 스발바르 협약이 체결됐다. 스발바르를 노르웨이령으로 인정하되 협약에 가입하는 나라는 누구나 자유롭게 연구활동이나 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은 2012년, 북한은 지난 3월에 가입했다.


산타클로스의 탄광
SNSK는 한때 롱이어비엔에서 7개 탄광을 운영했지만 1970년대 석탄 경기가 급격히 하락하자 7호 탄광을 뺀 모든 탄광이 문을 닫았다. 생산되는 석탄의 30%는 마을에 필요한 전기를 대고 나머지는 독일로 수출된다. 롱이어비엔은 수력발전을 하는 노르웨이에서 유일하게 석탄으로 전기를 만들어 쓰는 곳이다. 저장소 바로 근처 탄광은 작업복을 입고 헬멧을 쓰고 광부의 삶을 체험해보는 박물관이 됐다. ‘산타클로스 탄광’이라 불리는 탄광도 있었다. 이곳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저 탄광 안에 산타클로스가 산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석탄 산업이 몰락한 뒤 정부는 스발바르를 북극관광의 거점으로 만들었다. 회사가 운영하던 병원, 학교 등을 정부가 넘겨받고 공항을 지었다. 1995년에는 대학도 생겨 극지방 연구를 하려는 학생 350명이 공부하고 있다. 스발바르는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유치원이 3곳이고, 초·중등학교와 병원, 슈퍼마켓, 수영장, 영화관, 나이트클럽도 있다. 노르웨이의 소득세는 35~40%에 달하지만 여기는 16%에 불과하며 모든 물건은 면세다. 거주기간 제한도 없어, 40개국에서 온 이들이 산다. 주민 중 120명이 태국인이다.

1984년 북유럽유전자은행은 스발바르의 탄광에 눈을 돌렸다. 인적이 끊기고 영구동토 깊숙이 파 들어간 폐탄광이야말로 씨앗을 보관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300개 종, 2000개 품종의 씨앗 1만개가 보관된 저장소가 만들어졌다.

그 후 20년 넘게 학자들은 이곳에 ‘세계의 저장소’를 만드는 것을 꿈꿨다. 하지만 돈이 없었고 종자 보관과 교환에 관한 룰도 없었다. 그러다 2004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주도로 7년의 협상 끝에 ‘식량과 농업을 위한 식물유전자원에 관한 국제협약’이 만들어졌다. 유전자원에 모두가 접근하고 모두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한 다자간 협약이 처음 만들어진 것이다. 세계은행이 저개발국 식량 안보를 위해 만든 국제농업연구자문그룹(CGIAR)은 스발바르에 국제저장소를 만들어달라고 노르웨이 정부에 요청했다.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소를 관리하는 북유럽유전자자원센터의 아스문드 아스달 박사가 한국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에서 보내온 종자 상자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이인숙기자

그해 10월 노르웨이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FAO 국제회의에 ‘스발바르의 조건이 적합하다’는 검토 의견을 전달했다. 노르웨이가 건설비용 4500만 크로네(약 66억원)와 시설 유지비를 대기로 했다. 운영비는 세계작물다양성재단(GCDT)이 맡기로 했다. 이 기구는 미국 빌&멜린다 게이츠재단과 부국들에게 기부를 받아 돈을 마련했다. 씨앗을 포장해 배송할 돈이 없는 나라나 기구도 지원한다. 2006년 6월19일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총리가 스발바르에 모여 초석을 놓았다. 1년 반의 공사를 거쳐 2008년 2월28일 저장소가 문을 열었다.

아스달 박사에게 물었다. 노르웨이는 왜 이런 ‘좋은 일’을 하느냐고. 그는 “노르웨이가 국제사회에 하는 일종의 기여”라면서, 노르웨이처럼 작은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이라고도 했다. 세계 각국이 ‘중립적’인 노르웨이라면 귀중한 씨앗을 잘 맡아줄 것으로 믿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큰 나라가 이런 일을 하겠다고 했다면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노르웨이는 부국이든, 빈국이든, 서방 국가든, 사회주의 국가든 모든 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스발바르는 전쟁이 일어날 일이 없다. 스발바르 협약은 이곳에서 군사행동을 금지하고 있다.

한국 농업유전자원센터도 기존 종자은행을 확대해 2006년 스발바르 저장소처럼 영하 18도의 저장시설을 만들었다. 이곳은 기온이 높고 인프라가 열악한 아시아 저개발 국가를 대상으로 한다. 지난 11월에는 필리핀, 라오스, 인도네시아, 키르기스스탄 등 아시아 4개국에서 씨앗 2000점을 받았다.


씨앗은 ‘문명’이다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스페인 프란시스코 피사로 군대의 배를 타고 안데스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감자는 보리로 연명하던 유럽을 굶주림에서 해방시켰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낳은 바퀴는 신대륙에서 온 고무를 만나 산업을 굴리는 타이어가 됐다. 멘델이 엄청난 유전의 비밀을 풀어낸 열쇠는 작은 완두콩 씨앗이었다.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소 근처에 위치한 노르웨이 광산회사 SNSK의 3호 탄광에 예전 석탄을 실어나르던 장비들이 놓여있다. 석탄경기가 쇠퇴하면서 탄광은 문을 닫았고 지금은 관광객 체험 장소로 쓰인다. |이인숙기자

지구는 1억년 이상 버섯, 고사리 같은 포자·양치식물이 지배했다. 그러나 지금은 식물의 90% 이상이 종자식물이다. 한 식물학자의 표현을 빌면 “씨앗은 어린 식물체가 도시락과 함께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작은 씨앗에 집약된 강렬한 삶의 에너지 덕에 인류는 문명을 시작했다. 가장 흔한 씨앗작물인 곡물은 사람이 밥상에서 얻을 열량의 절반을 책임진다. 세계 곡물의 3분의 1은 동물을 먹여 살려 사람의 육식을 떠받친다.

씨앗 없는 삶은 존재할 수 없다. 출근길 커피전문점에서 사든 아메리카노와 베이글, 회의자료가 인쇄된 A4용지, 점심메뉴 비빔밥에 올려진 당근과 콩나물과 시금치, 하얀 쌀밥, 고추장과 참기름, 저녁 회식자리 생선회 옆 상추와 간장과 겨자, 호프집에서 시킨 생맥주 한잔, 집에서 편히 입는 면 잠옷 모두 씨앗에서 나온다.

스발바르의 저장소가 생기기 이전부터 각국은 토종 종자들을 보관하기 위해 유전자은행들을 세우려 애썼다. ‘씨앗금고’인 유전자은행들은 녹색혁명으로 곡물 생산이 급증하던 1970~1980년대에 만들어졌다. 농부들이 오랜 세월 경험과 지혜로 남겨온 토종 종자는 글로벌 생명공학 기업과 육종업체가 만든 개량종보다 생산량은 떨어지지만 끈질긴 저항력과 적응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농부들은 고수익을 위해, 때로는 등 떼밀려, 너도나도 토종 종자를 버리고 개량종을 택했다. 이대로 가면 씨앗을 영원히 잃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생겨났다.

씨앗은 한번 잃어버리면 복원할 수 없다. 당장 먹거리도 문제지만 문화유산과 역사를 고스란히 잃는 것과 같다. 다양한 토종 씨앗을 간직하는 것은 미래의 기후변화와 병충해, 전염병에 대비하는 최선의 방책이다. 유전자변형 식물이나 특정 개량품종은 신종 전염병이 돌면 한순간에 멸종될 수도 있다. 그때 원형이 남아 있지 않다면 먹거리의 종말이 올지 모른다.

유전자은행을 만들었다고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가장 큰 위험은 시리아 내전 같은 전쟁이다. 1977년 시리아 알레포에 유전자은행이 세워진 건 레바논 내전을 피해서였다. 지금은 시리아 내전을 피해 다시 레바논으로 옮겨갔다. 아프가니스탄, 부룬디, 르완다 등 내전을 겪은 나라의 유전자은행 종자들은 유실되거나 포화에 망가졌다.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소 사무실에 놓인 씨앗 견본들. |이인숙기자

천재지변도 늘 도사리는 위험이다. 2011년 태국 유전자은행이 홍수로 침수됐을 때 벼 종자 2만종이 사라졌다. 필리핀의 유전자은행은 2006년 홍수에서 살아남았지만 2012년 불이 나 파괴됐다. 씨앗의 중요함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 형편이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다. 2011년 10월 파산 위기에 몰린 그리스 정부는 허리띠를 졸라 매기 위해 농업분야 기관 4곳을 통폐합했다. 세계 밀 종자의 3%를 갖고 있던 그리스 유전자은행에는 직원 1명만 남았다.

2006년에는 멕시코 텍스코코에 있는 국제 옥수수·밀 개량센터(CIMMYT)에 문제가 생겼다. 이곳은 세계 옥수수 25만여 품종이 모인 ‘옥수수은행’이다. 1000년 전 멕시코 원주민들이 처음 재배하기 시작한 옥수수는 지구상에서 인류가 가장 많이 먹는 곡물 중 하나다. 그런데 이곳 옥수수 씨앗의 절반 이상이 발아가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장 전에 제대로 건조되지 않았거나 전력이 끊겨 냉각 시설이 멈추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유전자은행에 있는 씨앗과 똑같은 씨앗을 더욱 안전한 은행에 맡기자는 생각으로 탄생한 것이 스발바르 저장소다.


씨앗이 돌아가야 할 곳
스발바르 저장소에는 ‘노아의 방주’ 외에도 ‘최후의 날 저장소(Doomsday Vault)’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아스달 박사는 이 별명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저장소는 지금도 우리가 활용하고 있는 곳이니 ‘최후의 날’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생명의 씨앗을 보관한 곳이 음울한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서, 그는 대신 ‘종자보험’이라고 표현했다.
보험을 들었으니 안심해도 될까. 노르웨이 사람들의 세금과 세계의 기부금으로 동굴에 냉각팬을 돌리면 우리의 미래는 안전해질까. 보험은 보험일 뿐,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해답은 아니다. FAO에 따르면 20세기의 100년 동안 세계 작물 종의 75%가 사라졌다. 이제 우리 먹거리 4분의 3은 식물 12종, 동물 5종에서 나온다.


스발바르 롱이어비엔 근처 생활용수 공급을 위해 만든 인공호수 앞에 총을 멘 한 관광객이 개가 끄는 자전거를 잠시 멈추고 서 있다. 그의 뒤로 ‘북극곰 주의’ 표지판이 붙어있다. 스발바르 전역에 북극곰 주의 조치가 적용된다는 뜻이다. 스발바르엔 총이 흔하다. 마을 밖 어디서든 북극곰을 마주치면 총으로 겁을 줘 쫓아내기 위해서다. |이인숙기자

종자로 보존할 수 없는 작물도 적지 않다. 카카오나, 코코넛, 바나나 같은 작물은 씨앗이 아니라 일부를 떼어내 클론을 만드는 ‘영양번식’으로 자란다. 재배하지 않으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2014년 벨기에 뢰벤 대학에 세계 바나나 1400개 품종을 모은 ‘바나나은행’이 생겼다. 아시아·카리브해·남태평양 등 39개 코코넛 생산국이 만든 국제코코넛유전자원네트워크는 ‘코코넛은행’을 추진하고 있다. 돈이 들지만 이런 작물을 영하 -160~196도의 액체질소에 담가 보존하는 방법도 시도되고 있다. 한국 농업유전자원센터에도 마늘, 고구마, 감자 등이 초저온 액체질소 탱크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저장소에서 100년 뒤, 1000년 뒤 씨앗을 꺼냈을 때 다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자연환경은 계속 바뀐다. 기후변화로 예측은 더 어렵다. 결국 씨앗이 잘 적응하게 하는 방법은 자연에서 살아나가게 하는 것이다.

이미 거대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농업의 세계에서 농부들에게 토종 씨앗을 열심히 심으라고 한다면 허망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그래도 농약 빚과 물 부족에 시달리던 인도 농민들은 여러 작물을 함께 심어 야생의 힘을 복원시키는 농법을 시도하고 있다. 씨앗 보존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네팔은 큰 작물박람회를 열고 다양성을 높이는 경작을 하는 농부들에게 인센티브를 준다. 스발바르에 미래를 모두 맡겨놓을 수는 없다. 지구에서 가장 척박한 땅은 ‘땅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롱이어비엔|이인숙 기자 sook9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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