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증산도 입도수기>인연을 위한 보이지 않는 이끌림,증산도 본문

증산도는./증산도 입도 수기

<증산도 입도수기>인연을 위한 보이지 않는 이끌림,증산도

세덕 2017. 11. 1. 15:46

<증산도 입도수기>인연을 위한 보이지 않는 이끌림,증산도

<증산도 입도수기>인연을 위한 보이지 않는 이끌림,증산도



배근호(37, 남) / 부산가야도장 / 147년 음력 2월 입도

2017년 2월 무렵 몸과 마음이 갑자기 쇠약해져 도장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의 사촌 누나와 자형이 증산도 수행을 한 지가 30년쯤 되었고,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쯤에 사촌 누나를 통해 증산도에 대해 잠깐 들었습니다. 하지만 교리, 수행, 기도 등의 단어들은 그때 저에게는 상당한 거리로 느껴졌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지금 이렇게 입도식까지 마치다니... 예전에 저로서는 정말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2016년 11월쯤 집을 알아보다 우연히 어느 부동산을 알게 되었습니다. 관계자와 같이 매물 확인 차 부산 어느 지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만나기로 한 장소에 가 보니 우연찮게 증산도 도장 앞이었습니다. 그때 도장의 위치를 알게 되었고 어렴풋이 20여 년 전에 사촌 누나로부터 들었던 증산도가 떠올랐습니다. 그렇다고 인연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며칠 후 길을 가다 우연히 ‘대진성주회’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익히 알고 있었고 가끔 길에서 마주친 적이 있던 터라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근데 그날따라 그 사람들이 집요하기도 했고 저도 중간에 시간이 남는 바람에 얘기는 들어보자라는 생각에 커피 한잔 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아까웠지만 ‘이것도 작은 경험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은 존재하지도 않거니와 만약 존재하더라도 신은 인간의 영역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또한 스스로 만들어 내는 불안과 공포를 비현실적인 신의 영역과 결부시키려는 태도는 고통을 회피하려는 관념의 또 다른 모습이며 스스로 무지하고 약한 존재라는 증거다.”라는 정도의 표현을 그 사람들에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논리든 사상이든 지극히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서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종교는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들이 허구적인 믿음을 통해 같이 소통함으로써, 힘듦을 극복하는 하나의 문화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고, 저는 그럴 여유도 없을뿐더러 지금껏 제 스스로 책을 통해 신념을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해가 바뀌고 1월에 들어서자,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채무 관계에 있던 친구가 자살을 해서 금전 손실을 보고, 20년을 알고 지낸 친구와 갑자기 문제가 생기고, 사기꾼에게 금전 손실을 보고, 그 외 크고 작은 일들이 연이어 발생했습니다.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일어난 일들이었습니다. 결국, 내키지는 않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액땜한다는 생각에 대진성주회 쪽에 연락을 하고 치성을 올렸습니다. ‘어차피 앞으로 변화는 있을 건데 치성 정도는 올리자. 제사 정도는 지낼 수 있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치성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한 두어 번 정도 가서 주문을 읽고 기도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신앙과 믿음에는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물론 애초에 마음가짐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더 이상의 방문은 내키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인연으로 제대로 된 태을주를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고, 후에 증산도를 찾는 계기로 작용한 것에는 지금 보면 감사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설 연휴가 끝난 직후부터 갑자기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가수면 상태가 지속되고, 심장 박동 수 증가로 불면증에 손끝 마디가 붓는 증상 등등... 태어나서 처음으로 말도 안 되는 고통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의학 서적과 신경계 관련 자료를 보고 스스로 진단하고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습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들이 이어지자 나중에는 화가 났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먹자.’고 다짐하는 한편으로, 의학으로 설명할 수는 있지만(갑작스런 범불안장애 또는 공항장애 같은) 그런 것만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연이어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났고, 한 달도 되지 않아 결국 증산도 가야도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병원이 아닌 신앙과 수행을 택했습니다. 그렇게 모든 일정을 한 달 뒤로 미루고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처음은 온전히 저를 위한 방문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제가 잘 아는 개신교, 천주교, 불교, 대진성주회를 뒤로 하고 왜 증산도를 택하였나에 대한 의문에 답하긴 힘들지만, 어떤 이끌림이지 않았을까, 인연을 위한 보이지 않는 인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합니다. 순리에 따라 모든 생명이 그렇듯 힘든 순간에는 가장 편하고 안전한 곳을 본능적으로 찾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포정님을 만나 처음으로, 그간 누구에게도 말 못했던 경험들을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사업, 주식, 사기, 파혼, 자살 등등... 과거에 저는 그런 일들을 겪을 때마다 ‘고통을 통해 나는 더욱 강해진다’라는 신념으로 극복해 왔었습니다. 책을 탐독하고 의학 서적을 보고 신경 과학을 통해 해석하고 상담을 하고 여행을 가고, 허나 그런 것들이 해소되지 않고 저에게 겹겹이 쌓여 있었다는 걸,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걸 후에 수행을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과 마음은 회복되고 안정되어 갔습니다. 수행을 통해 심신이 안정되고, 기도를 통해 정신도 건강해졌습니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이 만들어 내는 관념적인 허상이다’
‘편도체 작용이며 약물로 회복된다’
‘고통은 정신력과 인내심으로 극복된다’
‘약한 자들의 변명이다’ 이런 생각들이 과거의 저였다면

‘신은 존재하며 모든 신들에게 감사해야 하는 이유도 존재한다’
‘생각이 만들어 내는 관념적인 허상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편도체 작용은 몸이 나에게 말하는 관심의 신호이다’
‘정신력과 인내심으로는 고통을 잠시 억누를 수 있을 뿐이다’
‘깨달음의 결과이다’라고 바뀌게 되었습니다.


‘한 인간의 탄생은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한 종의 탄생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노력과 과거의 영향 안에서 탄생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앞으로는 온전히 나를 위한, 나 중심의 삶이 아닌 이타심을 가지고 상호 공존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라고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기도와 수행을 통해 스스로와 대화를 하며, 불안한 자아, 이기적인 자아, 관념적인 자아, 겁 많은 자아, 부끄러운 자아들과 대면함으로써 지금껏 나를 둘러싸고 있던 관념들을 하나씩 벗겨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입도식을 위한 과정 안에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신앙인, 구도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21일 후 마침내 입도식을 무탈하게 치렀습니다. 증산도의 진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저의 자아관에 변화를 주었으며, 왜곡된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가는 길이 상제님의 진리 안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때 다가올 고통은 저를 위한 또 다른 의미라고 믿습니다. 지금 비로소 저는 욕망 좇음 안에서 느껴왔던 수많은 고통의 흔적들 속에서 느리지만 조금씩 해방되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삶 속에서 느끼는 고통은 행복의 전조 현상일 수 있으며, 그 순간순간에 내가 느낀 고통의 크기만큼 남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다. 이것 또한 상제님께서 의도하시는 나를 위한 계획이다’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항상 조상님들과 함께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지기를, 상제님의 진리 안에서 깨달은 삶을 살기를, 훗날 천지대업에 힘을 보태어 인류를 구원하는 일꾼이 되기를 소망하고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