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북부여>국통맥은 북부여北夫餘로-해모수 본문
<북부여>국통맥은 북부여北夫餘로-해모수 |
<북부여>국통맥은 북부여北夫餘로
고열가단군이 “나는 이제 그만 물러나겠다” 하고선 산으로 들어가기 1년 전인 단기 2095년(기원전 239년)에 우리 민족 국통맥에 있어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바로 지금의 길림성 서란에 있는 웅심산熊心山에서 해모수가 북부여를 건국한 것입니다. 해모수는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고리국 출신으로, 백악산 아사달을 점거하고 오가 부족장의 6년 공화정을 철폐하였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해모수를 단군으로 추대하였고, 이로써 단군조선을 계승한 정통 왕조 북부여北夫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단군조선의 멸망 과정에서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단군조선 2,096년은 단군조선의 중심 세력으로 만주에 있던 진한(진조선)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고열가단군은 퇴위하였지만, 단군조선 전체가 한꺼번에 문을 닫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서쪽의 번조선은 그 후 40여 년을 더 존속하다가 위만에게 찬탈당하였습니다. 위만정권은 뒤에 한 무제에게 멸망당하게 됩니다.
북쪽에 북부여가 열리기 전부터 이미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땅이던 한반도의 막조선(옛 마한)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기원전 195년에 번조선에 살던 대부호 최숭이 백성과 함께 진귀한 보물을 싣고 발해를 건너 막조선으로 넘어와 왕검성 지역에 낙랑국樂浪國을 세웠습니다. 최숭은 요서 지역에 있는 자신의 고향, 낙랑에서 이름을 따왔던 것입니다.
이처럼 북부여가 세워진 후 만주의 진조선은 북부여에 흡수되고, 한반도의 막조선에는 낙랑국이 들어서고, 요서의 번조선은 망명객 도적 위만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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