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북부여>우리 역사의 잃어버린 고리, 북부여 본문
<북부여>우리 역사의 잃어버린 고리, 북부여
<북부여>우리 역사의 잃어버린 고리, 북부여

부여의 시작

“옛적 (고구려) 시조이신 추모왕鄒牟王께서 나라를 세웠는데, 추모 성제는 북부여北夫餘 출신으로 천제의 아드님이고, 어머니는 하백河伯의 따님이시다.”(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 出自北夫餘 天帝之子 母河伯女郎)

이는 동북아의 패자이자 단군조선의 적자嫡子인 고구려 광개토태왕 비문의 첫머리에 나오는 글이다. 고구려의 뿌리가 북부여임을 천명闡明하고 있다. ‘부여’라는 이름이 우리 역사서에 처음 나타난 시기는 단군조선檀君朝鮮의 1세 단군인 단군왕검 때였다.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군기檀君紀」에는 단군왕검이 나라를 다스린 지 40여 년에 ‘설유揳猶의 난’이 있었고, 이때 넷째 아드님인 부여夫餘로 하여금 이를 평정케 한 뒤, 북방의 땅을 더하여 제후국 국왕으로 봉하고 우수홀에 자리 잡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그 나라의 이름이 ‘부여夫餘’로 전해지고 있어 학자들은 이 부여를 ‘원시부여’라 부른다.
단군조선의 삼한관경제
한민족의 뿌리 역사라 할 수 있는 단군조선은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를 적용하여 통치 영역을 진한辰韓⦁번한番韓⦁마한馬韓의 삼한으로 나누었다. 만주 대륙과 중원 그리고 한반도 일대를 비롯한 동아시아 전역을 통치하였다. 만주 대륙의 진한은 대단군이 직접 통치하고, 중원 지역의 번한과 한반도 영역의 마한에는 부단군을 두었으나 병권兵權만은 진한의 대단군이 행사했다. 대단군이나 부단군은 혈육이 이어 가거나 새로운 능력자가 차지하기도 했다.
단군조선의 쇠락과 북부여의 흥기
흥망성쇠는 어느 왕조나 적용되기 마련인데, 이 삼한관경제가 무너지면서 대제국 단군조선의 국운이 쇠락해져 갔다. 제44세 구물丘勿 단군 때 국호를 ‘진조선’에서 ‘대부여大夫餘으로 바꾸며 국운을 일신해 보려 했다. 하지만 대부여도 47세 고열가高列加 단군 때 멸망하게 되고, 이 단군조선의 영토에서 새로운 나라가 그 맥을 이었다. 바로 해모수解慕漱가 세운 북부여北夫餘이다.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 성제의 고조부인 해모수는 BCE 239년 4월 8일 대부여의 북쪽 웅심산熊心山, 즉 지금의 지린성吉林省 수란(서란舒蘭)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서란은 대일 항전기 당시 석주 이상룡李相龍 선생이 생애를 마감했던 곳으로, 하얼빈에서 남쪽으로 125킬로미터 떨어져 있는데 지금은 중국의 소도시로 편제되어 있다.
당시 해모수는 은밀히 수유국須臾國과 약속하고 옛 도읍지 백악산 아사달을 습격해 점거한 뒤에 스스로 ‘천왕랑天王郞’이라 칭하였다. 그리고 당시 마지막 단군인 47세 고열가 단군의 빈자리를 대신하던 오가五加 부족장의 6년 공화정을 철폐하였다. 이에 사방에서 해모수의 명을 따르고 추대하였다.
‘북부여’라는 명칭은 대부여 강역 중 북녘땅인 만주 지역을 중심을 나라를 세웠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대부여의 수도가 장당경 아사달, 즉 지금 중국의 동북 3성 지역 중 하나인 랴오닝성遼寧省 카이위안시(개원시開原市)였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 해모수는 단군조선의 정통을 계승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를 담아 국호를 북부여로 하였다.
북부여의 역사적 의미
이 시기는 단군조선의 번조선과 막조선에 큰 변화가 있어 민족의 대이동이 일어나던 때였다. 그리고 북부여 시절 중원 대륙은 한漢나라 무제武帝 유철劉撤의 치세기였다. 한 무제는 모든 국력을 쏟아 동방의 대국 단군조선, 즉 북부여를 침공하였다. 이때 민족의 존망이 담긴 최대의 위기 상황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이 등장한다. 바로 고두막한高豆莫汗이다. 고구려 추모 성제가 추앙하며 본으로 삼은 부여의 동명왕東明王이 바로 이분이다. 이 고두막한의 따님이 신라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어머니인 파소婆蘇이다.
이후 북부여의 마지막 단군인 6세 고무서高無胥 단군은 스스로 천제의 아들이라 밝힌 고추모高鄒牟(고주몽高朱蒙)를 자신의 둘째 딸 소서노召西奴와 혼인시켰다. 소서노는 고구려 건국에 큰 공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이후 아들 비류沸流, 온조溫祚와 함께 백제百濟(남부여)를 연 인물이다.
이를 종합해 보면 북부여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시조가 모두 나온 우리 국통 맥의 허브라고 할 수 있다. 북부여의 멸망 이후 고구려高句麗와 대진국大震國(발해渤海) 등 후속 국가들이 그 유산을 계승 발전시켜 나간 것은 부인하지 못할 역사적 사실이다. 이처럼 북부여는 한민족의 고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나라임에도, 이를 우리가 잘 알지 못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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