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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 배달>백두산 인근에 터 잡은 신시 배달국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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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 배달>백두산 인근에 터 잡은 신시 배달국

세덕 2026. 3. 12. 18:00

<신시 배달>백두산 인근에 터 잡은 신시 배달국

<신시 배달>백두산 인근에 터 잡은 신시 배달국


지금으로부터 6천 년 전 인류의 황금 시절이었던 환국桓國 시대 말. 지구의 환경 변화와 인구 증가 및 물자 부족 등으로 인류의 생활이 어려워졌다. 이에 환국의 마지막 7세 지위리智爲利 환인桓仁(桓因)께서는 금악산金岳山(알타이산)과 삼위산三危山 그리고 태백산太白山(백두산白頭山)을 두루 살펴본 뒤, 새로운 터전을 개척할 적임자를 찾게 되었다.

이때 오가五加의 우두머리가 모두 대답하며 추천한 인물이 바로 서자부庶子部 부족의 수장首長인 환웅桓雄이었다. 그들은 환웅이 어질고 용기와 지혜를 겸비한 인물로 일찍부터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세상을 개혁하려는 뜻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추천의 의사를 밝혔다. 이에 환인께서는 환웅에게 종통과 국통 계승의 상징으로 천부天符와 인印 세 종류를 주시며 다음과 같이 당부하셨다.

이제 인간과 만물이 이미 제자리를 잡아 다 만들어졌으니, 그대는 노고를 아끼지 말고 무리 3천 명을 이끌고 가서, 새 시대를 열어 가르침을 세우고[開天立敎], 세상을 신교의 진리로써 다스리고 깨우쳐서[在世理化] 이를 만세 자손의 큰 규범으로 삼을지어다. 더불어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 부권父權을 세우고 노인은 부축하고 어린이는 이끌어 평화롭게 하나 되게 하여 사도師道를 세우고 세상을 신교의 진리로 다스려 깨우쳐서 자손만대의 홍범洪範으로 삼을지어다.
- 『환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三聖紀」 하下, 「태백일사太白逸史」 <신시본기神市本紀>

환국의 마지막 환인께서는 환웅을 환국의 정통 계승자로 정하였고 그 증표가 바로 천부天符와 인印이다. 천부란 환인이 ‘세상을 다스리는 권한의 표징’으로 내려 주신 태고의 문서로 흔히 알고 있듯이 무속巫俗 세계에서 쓰는 방울이나 거울 같은 물건은 아니다. 그리고 인印이란, ‘환국의 종통을 전하는’ 사실을 인증하는 도장으로 임금의 옥새와 같은 것이다.

환웅천황님이 환인천제에게 정통으로 이어받은 이념은 바로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대부분 단군조선의 국가 이념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잘못이다. 홍익인간 사상은 사실 9천 년 전 환국의 통치 이념으로 천지 광명의 뜻과 대이상을 성취한 인간이란 뜻이 있다. 거발환居發桓 환웅은 재세이화在世理化를 기반으로 홍익인간을 실천하였다. 다시 말해서 삼신상제님의 진리, 즉 신교로써 세상을 다스리고 깨우쳐 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민족의 성산聖山, 백두산
환웅천황과 3천의 무리가 향한 곳은 동방의 태백산, 즉 지금의 백두산 일대이다. 환웅천황은 이 지역을 천명 받고 나라를 연 하늘 평야, 즉 ‘역사의 개척지’라는 뜻으로 천평天坪이라고 하였다. 이곳에 우물을 파고 그곳을 중심으로 청구靑邱에 농사짓는 땅을 구획하여 민생을 도모하였다. 그리고 백두산 신단수神檀樹 아래에서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려 나라 세움을 고하였다.

환웅천황님과 3천 명의 개척단이 터를 잡은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성산이다. 백두산은 백산白山 이외에도 삼신산三神山, 개마산蓋馬山, 불함산不咸山, 장백산長白山등으로 불렸다. 또한 인류 구원의 완성이며, 모든 진리 도맥의 완성인 시루산(증산甑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인근에 자리 잡은 배달국 사람들은 아침에 동산에 올라 태양을 경배하고, 밤에는 달을 맞이하는 광명光明의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터 잡은 백두산에 대해서 『삼한비기三韓祕記』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백두산이라는 거대한 산악이 광활한 대지 가운데 장중하게 자리 잡아 가로로 천 리를 뻗고, 높이는 2백 리를 우뚝 솟았다. 웅장한 고산준령이 꿈틀거리며 널리 덮어 배달천국倍達天國의 진산鎭山이 되었다.

여기서 진산은 한 국가나 도시 또는 각 지방에 있는 주산主山이라는 뜻으로, 백두산은 우리 배달국 환웅천황님과 제세핵랑군 3천 명이 터전을 잡고, 홍익인간의 큰 뜻을 펴신 민족의 성산이다.

배달국 사람들
한편 이때 환웅천황을 따랐던 무리 3천을 이유립李裕岦 선생은 ‘제세핵랑군濟世核郞軍’이라 하였다. 제세핵랑濟世核郞은 세상을 건지는(濟世) 핵심이 되는 랑(核郞)이라는 뜻으로 낭郞은 삼신상제님을 수호하는 관직 이름이기도 했다. 환국 이래 환웅, 단군 시대에 나라를 이끌어 가는 지도층이 이 제세핵랑에서 나왔다.

이들은 삼신상제님께 올리는 제사를 주관한 신교의 핵심 일꾼으로, 신교의 가르침을 받들어, 신교의 성소인 소도의 경당扃堂에서 문무를 겸전하였다. 시대에 따라 단군조선의 국자랑國子郞, 북부여의 천왕랑天王郞, 고구려의 조의선인皁衣仙人, 백제의 무절武節, 신라의 화랑花郞, 고려의 재가화상在家和尙 등으로 호칭은 다르지만, 그 전통을 면면히 이어 오고 있다. 최근세에는 갑오 동학혁명, 항일 구국 운동과 광복군의 독립운동 등 민족의 위기 때마다 이 낭가郎家의 정신은 유감없이 드러나 불의를 뿌리 뽑고 정의를 실현하였다.

나라 이름과 도읍지, 배달과 신시
백두산에 도착한 환웅은 나라 이름을 배달倍達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흔히 우리를 부로는 배달겨레라는 말은 실질적인 한민족사의 첫 번째 나라인 배달에서 그 근원을 찾아볼 수 있다. 외부에서는 구려九黎, 청구靑丘라고도 불렀다.

‘배’는 밝다는 뜻이다. 고대어는 한자의 의미보다는 음가音價에 따라서 그 의미가 정해지기도 한다. ‘달’은 땅을 상징한다. 우리가 응달, 양달 할 때 그 달이 땅을 가리키는 말로 결국 배달은 광명의 동방 땅을 뜻한다. 배달을 ‘땅의 광명[地光明]’을 가리키는 ‘단檀’ 자를 써서 단국檀國이라고도 부른다. 그래서 환국과 배달을 합쳐서 환단桓檀 시대라 통칭하기도 한다.

건국 초기 배달의 강역은 도읍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도읍지와 국호는 서로 상통하였다. 거발환 환웅은 도읍 이름을 신시神市라 하였는데, 이는 신의 도시라는 뜻이다. 신시 배달은 환국의 광명 사상을 그대로 계승하여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개천光明開天의 3대 정신으로 백성들을 교화하며 1,565년 동안 지속되었다.

배달국의 호족과 웅족 이야기
이제 우리는 전 국민이 왜곡된 채로 잘못 알고 있는 우리 민족의 시원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아마도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단군신화’에 관한 것이다. 환웅천황께서 마늘과 쑥을 주며 곰과 호랑이를 동굴에 들어가게 했는데, 곰만 여자가 되었고 그 아들인 단군께서 조선을 건국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과연 이 신화 같은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그 진실은 이렇다.

환웅천황이 동방 백두산 문명을 새로 세울 당시 ‘백두산에서 송화강’에 이르는 만주 일대에는 본래 거주하던 원주민 호족虎族과 새로 이주해 온 웅족熊族이 살고 있었다. 호족은 탐욕이 많고 잔인하여 오로지 약탈을 일삼았다. 웅족은 어리석고 괴팍하며 고집이 센 편이라 함께 어울리며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같은 곳에서 살았으나 두 부족은 세월이 지날수록 사이가 멀어졌다. 서로 물건을 빌리거나 빌려주지도 않고 혼인도 하지 않으며, 매사에 서로 불복하여 함께 같은 길을 가지 않았다.

이에 환웅천황께서 신령한 덕으로 통치하심을 알고 있던 웅족의 여왕은 무리를 거느리고 환웅천황을 뵙고서 “원하옵건대 저희에게 살 곳을 내려 주십시오. 저희도 하나같이 삼신의 계율을 따르는 환족의 백성이 되고자 하옵니다.”라고 간청하였다. 이를 들은 환웅께서는 “가히 가르칠 만하도다.” 하시고, 신령한 주문의 도술로써 환골換骨케 하여 정신을 개조시키셨다.

이때 먼저 삼신께서 전해 주신 정해법靜解法(몸과 마음을 고요히 수행하여 해탈하는 법)으로 그렇게 하셨는데, 쑥 한 묶음과 마늘 스무 줄기를 영험하게 여겨 이를 주시며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고 기도하여 참된 인간이 되는 길을 알려 주셨다. 쑥은 몸속의 냉冷을 치료하고, 마늘은 구워 먹으면 마魔를 물리친다고 한다. 마늘은 각종 질병의 치료제로 쓰이며 육체의 힘을 솟아나게 하는 신비로움이 있다는 믿음으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여러 가지 용도로 쓰여 왔다.

이에 웅족뿐 아니라 호족도 함께 쑥과 마늘을 먹으면서 삼칠일三七日, 즉 21일 수행을 하며 외부와 만남을 끊고 지냈다. 웅족은 능히 굶주림과 추위를 참아 내고 계율을 지켜 온전한 인간의 참모습을 얻었지만, 호족은 방종하고 게을러 계율을 지키지 못하여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후에 웅족 여인[熊女]들이 시집갈 곳이 없어 매일 신단수 아래에 와서 주문을 외우며 아이 갖기를 빌었다. 예전에 아이를 갖기 위해 명산대천에서 100일 정성 공부나 치성을 드리던 모습과 유사하다. 이에 환웅께서 이들을 임시로 환족으로 받아들여 환족 남자들과 혼인하게 하였고 아이를 낳으면 환桓의 핏줄을 이은 자손으로 입적시켰다. 이렇게 환족과 웅족은 협력하여 ‘신의 도시’란 뜻의 신시神市를 수도로 하는 배달국을 흥왕하게 하였다. 이것이 배달과 단군조선의 바른 역사인 『단군사화檀君史話』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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