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단군조선>단군조선과 삼한관경제 본문

역사 이야기/잊혀진 역사

<단군조선>단군조선과 삼한관경제

세덕 2026. 3. 11. 18:00

<단군조선>단군조선과 삼한관경제

<단군조선>단군조선과 삼한관경제

 

삼한일통의 근거
676년 11월에 신라新羅는 금강 하구의 기벌포에서 중국 당唐나라의 수군을 섬멸하여 이 땅에서 당나라의 세력을 완전히 몰아냈다. 신라 제30대 문무왕文武王은 비로소 당나라와 치열한 전쟁을 승리로 마감한 것이다. 660년 백제 사비성 함락, 668년 고구려 평양성 함락 이후 끊임없이 거듭된 전쟁의 마침표를 찍으면서 삼한을 통일하는 대업을 이루었다. 532년 금관가야, 562년 대가야가 신라에 멸망한 이후 100여 년 만의 일이었다.

이때 문무왕을 비롯한 신라 지도부가 내세운 명분이 ‘삼한일통三韓一統’이다. 즉 우리는 본래 한 나라에서 나왔으며 이제 다시 하나로 합해진 것이다. 여기서 ‘삼한’은 한반도에 있었던 남삼한南三韓(진한辰韓⦁마한馬韓⦁변한弁韓)을 통칭하는 말로 불려 왔지만, 본래의 의미는 단군조선의 영역인 북삼한北三韓(진한辰韓⦁번한番韓⦁마한馬韓)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신라는 단군조선의 본래 영역을 회복하지는 못하였으나, 그 영토의 사람과 문화를 하나로 아우르게 되었고, 이를 통해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을 다독이며 하나의 나라로 만들어 나간 것이다.

단군조선의 건국
우리는 어릴 적부터 소위 ‘단군신화’를 들어 왔다. 하늘의 신 환인의 아들 환웅이 인간 세상에 내려오고,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어 환웅과 혼인해 단군을 낳았다는 이야기 말이다.

"...환웅이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웅녀와 혼인하니, 아들을 낳아 이름을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 『삼국유사三國遺事』 중에서

이 신화적 상징이 담긴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어서 우리가 곰의 자손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망발이다. 진실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단군조선을 세운 이는 초대 단군왕검檀君王儉(신인왕검神人王儉)이시다. ​초대 단군이 환웅의 아드님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 환웅이 초대 환웅님은 아니다. 최초의 환웅께서 배달을 개국한 지 1,500여 년이 지난 18세 거불단居弗檀 환웅의 아드님이 곧 단군왕검이시다. 초대 단군께서는 14세부터 24년간 웅씨 족의 비왕裨王으로 있으면서 제왕 수업을 받았고, 38세에 천제의 아들로 추대되어 제위에 올랐다. 당시는 배달倍達 말기의 혼란한 시기였는데 이를 잠재우고 구환족九桓族 전체를 하나로 통일하여 한민족 전성기인 조선朝鮮을 열게 되었다. 이를 훗날 태조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 ‘고古조선’이나 ‘단군조선’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본고에서는 ‘단군조선’이라 칭한다.

삼한관경제와 수도 변천 - 송화강 아사달 시대
단군왕검은 조선의 개국시조로 삼신상제三神上帝님께 천제天祭를 올렸다. 우리 역사를 보면 역사의 주요한 변곡점이나 중요한 일에 직면한 때에는 늘 상제님께 천제를 올렸다. 단군께서는 쑹화강(송화강松花江) 유역(지금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哈爾濱)의 ‘아침 태양이 빛을 비추는 땅’인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였다. 이 시기는 BCE 2333년부터 BCE 1286년 21세 소태蘇台 단군 때까지 1,048년간 지속되었다. 이때를 단군조선 제1왕조 송화강 아사달 시대, 삼한(진한⦁마한⦁번한)이라고 부른다.

이때 단군조선은 진한辰韓(지금의 만주滿洲 지역)에 대단군이 계시고, 번한番韓(지금의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서부와 허베이성河北省 북부를 비롯한 산둥성山東省에서 양쯔강揚子江 유역까지의 동부 지역)과 마한馬韓(지금의 한반도)에 부단군을 두었고 주변 64개국을 통치한 광대한 제국이었다. 이 삼한이 바로 북삼한北三韓이며, 이후 단군조선이 몰락한 후 유민들이 한반도로 내려와 다시 삼한을 세우니 이를 현재 교과서에서 배우는 남삼한南三韓이라고 한다.

신라가 이 북삼한을 염두에 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삼한을 하나로 통일한다는 기치를 내세웠던 것은 사실이다. 하나였다가 갈라진 후 다시 통합하는 이 과정과 이후 통일의 모습으로 200여 년간 전성기를 누린 점에서 현재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단군조선의 영역이 가장 넓었을 때는 만주 대륙과 한반도를 중심으로 북으로는 러시아의 바이칼호, 서로는 중국 산시성陝西省, 남으로는 산둥성山東省을 포함한 양쯔강 유역까지였다. 동아시아 전체를 아울렀다고 할 수 있다.

백악산 아사달 시대
이후 22세 색불루索弗婁 단군이 정변政變을 일으켜 남서쪽의 백악산白岳山(녹산鹿山) 아사달, 지금의 지린성 창춘長春으로 천도하였다. 이 시기는 BCE 1285년부터 43세 물리物理 단군 때인 BCE 426년까지 860년간 지속되었다. 이때를 단군조선 제2왕조 백악산 아사달 시대, 삼조선三朝鮮 시대라고 한다. 색불루 단군은 국정 쇄신을 위해 삼한을 삼조선(진조선眞朝鮮⦁번조선番朝鮮⦁막조선莫朝鮮) 체제로 바꾸었다.

단군조선 통치 체제의 근간인 삼한관경제는 신교神敎의 삼신三神 사상에 따라 나라의 영역을 셋으로 나누어 다스린 것이다. 6세 달문達門 단군 때 신지神誌(사관史官의 관직명) 발리發理는 한민족의 뿌리를 노래한 대서사시 「서효사誓效詞」(또는 「신지비사神誌秘詞」)를 지었다.

여기에서 삼한의 형세를 저울대와 저울추 그리고 저울판과 같다고 하면서 저울판은 마한의 수도 백아강白牙岡(지금의 평양), 저울추는 번한의 수도 안덕향安德鄕(지금의 허베이성 탕산唐山)이고 저울대는 진한의 수도 소밀랑蘇密浪(송화강 아사달, 하얼빈)이다. 번한은 험독險瀆, 낭야성琅耶城, 탕지湯地, 개평蓋平, 한성汗城 등으로 수도를 옮겼다. 마한은 처음부터 끝까지 백아강이었다.

대단군을 중심으로 이 세 나라의 수도가 하나의 저울이 되어 균형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단군조선이 융성하였다. 그 핵심은 병권兵權을 대단군만 쥐고 있느냐 부단군까지 쥐게 되었느냐였다. 병권을 부단군까지 쥐게 되면서 삼한관경제는 무너졌고, 그 과정에서 단군조선은 몰락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장당경 아사달 시대
이후 43세 물리 단군이 사냥꾼 우화충于和冲의 반란으로 붕어하고 단군조선의 국가 시스템인 삼한관경제가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우화충의 반란을 진압한 44세 구물丘勿 단군은 수도를 장당경藏唐京 아사달, 지금의 랴오닝성遼寧省 카이위안開原으로 이전하였다. 이때를 단군조선 제3왕조 시대, 장당경 아사달 시대라고 하며, 나라 이름을 대부여大夫餘로 고쳤다. 이 왕조는 BCE 425년부터 47세 고열가高列加 단군 때인 BCE 238년까지 188년간 지속되었고, 후에 단군조선의 종통은 해모수 단군이 세운 북부여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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