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독살설 사료 제대로 안 본건 주류 사학자
이덕일씨, 유봉학 교수 ‘왜곡’ 주장 반박 “심환지에 보낸 어찰, 되레 독살설의 증거”
“사료를 왜곡, 과장해서 해석했다고 하는데, 사료를 제대로 안 본 것은 오히려 주류 사학자들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악의적으로 왜곡해서 봤다고 할 수밖에 없어요.” <조선 왕 독살사건>의 저자 이덕일(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장)씨가 조선 왕 정조의 ‘독살설’을 강하게 옹호하고 나섰다. 이씨는 자신의 독살설에 대한 유봉학 한신대 교수의 공개 비판(<한겨레> 3월4일치 19면)에 대해 ‘비학문적 공세’라고 반박했다. 정조의 비밀편지가 공개된 뒤 불거진 독살설 논란이 본격적인 학계 논쟁으로 이어질지 관심을 끈다.
이씨는 지난 9일 <한겨레>와 만나 “유 교수를 비롯한 친노론 계열 독살설들이 정조 어찰을 독살설을 부인하는 사료라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이를 입증할 1차 사료 등 직접적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유 교수는 정조 사후인 순조 6년(1806년) 그의 정적이던 벽파 세력을 다른 반대파인 시파가 몰아내는 정변(병인경화)을 일으킬 때도 독살설이 거론되지 않았음을 강조합니다. 독살설 부인론자들이 유일하게 제시하는 근거죠. 하지만, 기초 사료인 실록조차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주장입니다.”
이씨는 병인경화 때 이미 죽은 벽파 수장 심환지가 역적이란 사실이 인정돼 삭탈 관직되고 자식들도 귀양을 간 것 자체가 명백한 반박 근거라고 주장했다. 당시 사헌부, 사간원 등 삼사에서 합동상소를 올려 심환지를 ‘선왕이 저승으로 떠나던 당일 선왕의 은혜를 저버린 역적’이라고 공격했고, 심지어 사간원 정언 박영재는 심환지가 친척 심인을 왕실 의사로 천거한 것을 첫번째 죄라고 지적할 정도로 당시 조야에 독살설 의혹 등에 대한 규탄 여론이 컸다는 것이다. 삼사의 상소로 미뤄볼 때 정조와 심환지의 밀착 관계를 드러낸 어찰은 “심환지가 오히려 독살에 관련된 증거”라는 게 이씨의 시각이다.
“유 교수 주장은 정조가 병으로 자연사했다는 전제에다 사료들을 맞춘 겁니다. 정조 사후 대간과 홍문관 관원, 유생들이 들고 일어나 왕실 의사 심인, 강명길의 처형을 요구한 데서도 드러나듯 정조의 죽음은 매우 갑작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졌어요. 심환지와 친벽파 정순왕후는 애써 묵살하다가 마지 못해 처형을 승인하지만, 심문도 하지 않고 죽입니다. 심환지도 처음엔 친척 심인을 감싸려다 훗날 죄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주위 경고에 의견을 바꿉니다. 그런 내용이 <순조실록> 곳곳에 기록되어 있어요.”
그는 또 정순왕후가 정조 사거 직후 심환지를 영의정에 임명한 행위도 명백한 불법이라고 단정했다. 어린 순조를 대신해 통치한다는 수렴청정 반교문을 반포하는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찰은 실록 등의 공식 사료를 보완하는 성격입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어찰이 독살설을 부인하는 사료로 둔갑하고 유 교수 등 특정 학파가 나서 독살설은 야담이라는 식으로 공격하는 건 역사학계의 노론 세력들이 일제 때 조선사편수회 참여 등을 거쳐 지금까지 학문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이씨는 “다음달 어찰 해제본이 나오면 전문 내용을 분석해 저서에 반영할 생각이며, 올 가을부터는 정조 정치사를 비롯한 우리 역사의 진실을 캐는 전문 강좌도 개설할 계획”이라며 “언제 어디서든 토론에 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1일 교보문고 강연을 시작으로 강단학계 역사인식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작업도 벌이겠다고 덧붙였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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