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후작에 대해 (고종) 황제는 확고한 자세를 보였고 계속해서 '안 된다[nein]'고 했다. 알현은 거의 매일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1905년 11월 18일 밤 2시 총리대신을 제외하고 전체 대신들이 부분적으로는 폭력의 결과로, 부분적으로는 노골적인 강요하에서 일본인들에 의해 준비된 문서에 궁전에 놓여 있는 국새를 인준했다."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일제의 통감부 설치를 결정한 을사늑약 체결 당시 서울 주재 외국공사가 조약의 강제성을 본국에 보고한 문서가 처음 발견됐다. 1905년 11월 20일 독일공사 잘데른(Saldern)이 보낸 보고서는 고종이 끝까지 조약에 반대하는 확고한 입장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보고서는 독일 외교부 정치문서보관소가 소장하고 있으며, 2005년 국사편찬위원회가 복사·정리한 1만8000쪽 분량의 한국 관련 독일 외교문서에서 정상수 명지대 연구교수가 최근 찾아냈다.
- ▲ 1905년 11월 20일 서울 주 재 독일공사 잘데른이 본국 에 보낸 12쪽분량 보고서의 마지막 장. 고종이‘Nein(안 된다)’이라는 말을 계속했다 는 내용이 담겨 있다./정상수 교수 제공
12쪽 분량의 '잘데른 보고서'는 "일본 관리와 개인은 가장 악랄하고 가증스러운 방법으로 한국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면서 "궁전은 일본 군인과 헌병에 의해 에워싸여 있었고 국새를 인준하는 과정에서 일본 군인이 개입했다"고 썼다.
고종에 대해서는 "자신을 괴롭히는 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황제"라고 평가하고, 고종이 미국 대통령의 딸과 황태자(순종)의 결혼을 통해 국면을 전환시키려 했다는 사실도 기록했다. 잘데른은 "황제는 이 젊은 숙녀에게 혼자가 된 황태자를 접근시켜서 대한제국이 정치적으로 유리한 입지를 마련하려고 했다"고 적었다. 미국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딸인 엘리스는 일본·필리핀·중국을 순방하는 '아시아 방문단'과 함께 1905년 9월 19일 한국에 도착하고 고종을 알현했다.
정상수 연구교수는 "잘데른 보고서는 을사늑약이 고종의 승인이 없었다는 점과 일본의 강제성을 강조한 첫 외교보고서로 가치가 높다"며 "고종을 무능한 군주가 아니라 주관이 뚜렷하고 능력 있는 군주로 묘사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