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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는./증산도 일문일답

상제관

세덕 2012. 4. 16. 13:43

상제관

 


 

   먼저 제1법이 상제관 이다.


우주의 모든 변화는 궁극적으로 어떤 도(道)가 있다. 그것을 이법(理法)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그 이법을 다스리는 도의 주재자 상제님이 있다. 따라서 도의 세계를 알려면 상제님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상제님에 대한 인식이 깨져야 한다. 

 이
상제관 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면, 도의 궁극의 문제다. 깨달음의 궁극의 문제, 팔관법의 근본이다. 모든 진리가 상제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았는가. 이 우주가 상제님으로부터 새로 시작된다. 

 그런데
상제관 을 제대로 깨려면 먼저 상제님의 삶에 대해 깊이 깨져야 한다.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어떤 삶을 사셨는지 주의깊게 보고, 항상 마음속으로 상제님의 삶을 생각하고 체험해 봐야 한다. 고난 속에서도 참되게 사신 상제님 생애에 대해 사무치게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상제님을 바로 보는 것, 상제님을 깊이 느끼고 상제님을 체험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상제를 보는 눈, 신안(神眼)이 열리는 것이다. 상제님을 느낀다! 그렇게 되면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상제님의 삶을 인류에게 증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날마다 상제님 태모님께 청수 올리고 기도하고 절하는 것을 즐기게 된다.


   우주의 도(道)의 주재자, 상제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광대무변한 우주는 쉼없이 음양(태극)운동을 하고 있다. 변화 원리에 따라 끊임없이 생명을 낳으며, 변화하고 있다. 그러면 천지 만물의 생성 질서는 우주 자연의 이치에 의해 저절로 열려가는 것일까?

  바로 이 수수께끼를 깬 분이 주자(朱子)이다. 그는 ‘리즉주재(理卽主宰)’라고 하여, “우주 자연이 그냥 스스로 생명을 낳고 길러서 궁극적인 이상을 실현하는 게 아니다. 
그 이치를 주재하는 자리가 있다."고 했다.

  주재처, 주장해서 마름질하는 위격(位格)이 있다는 것이다.
  주재자! 그 분이 바로 상제님이다.

  증산 상제님은
“나는 생장염장(生長斂藏) 사의(四義)를 쓰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하늘이 이치(理致)를 벗어나면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느니라. (道典 2:49:1∼2)” 라고 선언하셨다.

  상제님은 우주 변화가 일어나는 생명의 궁극에서, 천지의 이치와 도를 주재하시는 분이다. 
  하늘과 땅과 인간, 만물의 변화를 ‘생장염장’ 사대(四大) 정신으로 다스리는 분이다.

   서양의 신(神)은 우주 변화성을 초월한 창조주

동양과 서양은 신에 대한 인식이 전혀 다르다. 구체적으로 왜, 무엇이 다를까? 
그것은, 동서 문화가 싹트고 뿌리 내리고 있는 삶의 환경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서양에서의 신은 기독교 신의 개념이다. 그들은 신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인식한다. 그들의 신은 바로 ‘저 우주 밖에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고 하늘과 땅을 빚고 인간을 만든 창조주’인 것이다.

 서구 기독교 문화의 뿌리는 사막 문화이다. 그 곳 사람들은 날씨가 항상 덥기 때문에, 자연의 변화 질서나 생명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우주가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변화한다는 걸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직선 시간관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우주의 저 밖에 우주 변화와는 상관없는 절대자 하나님이 있다고 한다. 하나님은 우주가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으며, 이 하나님이 우주도, 인간도, 자연의 변화까지도 창조했다고 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절대자인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 하나님의 피조물이므로, 그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그들은 생명의 영원성(eternity)을 오직 하나님에게 간구한다.

 또 신과 인간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이므로,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이별의 논리이고 죽음의 논리이다. 영원히 화해하지 못하는 이분법이다.

   동양의 상제님은 우주 변화를 다스리시는 인격신

그런데 동양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동양의 농경문화에서는 자연의 변화에 대한 인식이 있다. 낮과 밤의 순환, 4계절 순환에 대한 인식이 모든 생활의 바탕이 되어 있다. 사물과 자연, 인간과 인간 사이의 모든 관계가 일정한 질서의 순환과 조화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순환 시간관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동양에서 말하는 우주 창조는 기독교 창조와는 그 개념이 다르다. 

  동양에서는 우주 만유 생명은 어떤 신이 만든 게 아니고, 하늘과 땅 안에 있는 ‘리(理, principle, 변화 이치)’에 의해 열린 것이라고 한다. 

  이 생명을 창조해내는 ‘리’는 본래부터 우주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 ‘리’가 곧 하늘이고, 하늘이 곧 ‘리’이며, 우주 속에 있는 그 이치에 의해 모든 생명이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상제님은 인간과 신도문명의 공덕을 성취하도록 우주 역사를 다스리는 인격신이시다. 천지의 근원질서[생·장·염·장]를 다스려, 우주의 꿈과 우주의 궁극 목적을 실현되게 하시는 분이다.

 

   인간으로 강세하신 개벽장 하나님

선천 성자들의 최종 결론은, 이 우주 질서가 근본적으로 새롭게 바뀌고, 개벽이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개벽을 성취하는 분이 인간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상제님은 인간의 몸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셔서 대우주를 개벽하신다. 

  가을개벽의 첫 출발점이 바로 상제님의 지상 강세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예수가 공부하고서 ‘하늘에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가는 길로써 사랑과 봉사, 희생을 제시했다. 하지만 더 이상이 없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6년간 설산고행을 했다. 
그런데 그 최종 결론이 무엇인가? 
“내가 깨달은 심법, 즉 마음을 여는 교설 갖고는 안 된다. 

  새 부처님이 오셔야 한다. 새 부처가 새 우주를 연다.”는 것이다. 
이게 불교 『팔만대장경』의 궁극적 결론이다. 

  그리고 『미륵경』에서는 “하늘 땅 생긴 이래로 부처가 일곱 명이 있다.
  제 7부처가 미륵인데 궁극적으로 그 미륵불에 의해 새 우주가 열린다.”고 얘기하고 있다. 『미륵경』의 핵심이 다 그에 관한 내용이다.

   인류역사를 결산하는 열매기 진리

증산 상제님께서는 
조선조 고종 8년, 1871년 신미년(辛未年)에 전북 정읍군 덕천면 신월리의 시루산(甑山) 아래에서 탄강하셨다.

  상제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의 존호를 시루 증(甑) 자, 증산이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무극제이신 상제님의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난다.

  시루는 익지 않은 것을 익히는 작용을 한다. 
  이제까지 인류의 역사속에서 전개되어온 정치, 경제, 철학, 문학, 종교 등은 미완성된 과도기의 과정이었다. 

  이제 증산 상제님의 오도(熬道)의 진리에 의해 인류의 역사는 완성되고 열매를 맺게 된다. 또 상제님께서는 밑 없는 시루에 대한 비유를 통해, 상제님의 진리가 무한대성과 무차원성을 지닌 무극대도임을 밝혀주고 계신다.

   묵은 의식을 정리하고, 상제님을 받아들여야

  새 하늘 새 땅을 여시기 위해,  우주의 주재자가 이 땅에 오신지 13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묵은 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양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는 그 느낌은 비록 시적이고 정감적이지만, 실제로는 너무도 막연하고 근본을 못 보게 하는 그런 이름이다. 

  ‘상제님’은 결코 그와 같은 이름이 아니다. 이제 우리의 묵은 의식을 완전히 깨부수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상제님을 받아들여야 한다.

  식고할 때, 청수 올리고 엎드려 사배심고 할 때, 길을 걸을 때에도, 상제님을 불러 보라. 

  잠자기 전에도, ‘상제님! 상제님! 우리 상제님! 증산 상제님!’, 

  진실한 마음으로 불러 보라.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신의 호칭 상제님, 증산 상제님을 찾고, 여러분 모두 상제관을 통해 궁극의 진리, 그 큰 틀을 깨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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