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종말설' 과학적 논리-과거예언 재해석도 나돌아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 4년 8개월?' 2012년이 되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생존과 멸종의 갈림길에 선단다. 요즘 인터넷과 '아포칼립소 2012' '월드쇼크 2012' 등 대중교양서를 통해 떠도는 말이다. 2012년 지구 재앙설은 1999년을 강타했던 종말설과 다른 양상을 띤다. 과학적인 근거들이 제시되고 과거 예언들이 재해석되기도 한다. 정말 지구는 이때 재앙을 맞는 걸까.
◆2012년, 과연 무슨 일이?='2012년 대재앙설'의 근거로 자주 거론되는 것이 '마야력'이다.
수백년간 남아메리카를 지배했던 마야문명은 AD 9세기 홀연히 사라졌다.
그들의 유산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정교한 '역법'. 2012년 12월 21일은 바로 5천125.36년으로 되어 있는 마야력의 큰 주기가 끝나는 날이며, 2만6천년 만에 지구와 태양계·은하의 중심이 정렬을 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한 주기가 끝나면 새로운 주기가 시작되지만 그 과정에서 엄청난 격변을 겪는다는 해석이다.
상당수 사람들은 성경이나 주역, 각종 예언들도 2012년을 가리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바이블코드'가 대표적 사례. '바이블코드'는 성경 원본의 히브리 글자를 띄어쓰기나 구두점 없이 적어놓고 가로와 세로, 대각선 등 순서대로 살펴보면 '암호화'돼 있던 특정 단어나 문구가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저널리스트 마이클 드로스닌(Michael Drosnin)은 저서 '바이블코드'에서 "2012년 혜성이라는 단어 근처에서 '부스러지고 밖으로 던져질 것이다. 나는 그것을 산산조각낼 것이다'라는 문구가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도 재등장했다. 1994년 로마 국립도서관에서 발견된 노스트라다무스의 새로운 예언에 의하면 지구 멸망의 해는 1999년이 아니라 2012년이라는 것이다.
격암 남사고(南師古·1506~1571) 선생이 남긴 '격암유록'은 '소두무족(小頭無足)'이 난리로 세상을 쓸어버린다고 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문 역할을 했다는 탄허 스님(1913~1983)은 '주역'을 풀어보니 지구 속의 불기운이 북극으로 들어가고 지축이 서면서 지구의 바다가 4분의 1이 되고, 육지가 4분의 3이 되는 지각 변동을 겪을 것이라고 했다.
◆과학자가 주목하는 2012년=과학적인 증거를 대는 예언도 있다. 현재 지구의 자기력이 빠르게 약해지고 있고 2012년에는 북극과 남극이 뒤바뀐다는 것이다. 물리학 전문가인 그렉 브레이든(Gregg Branden)은 저서 '월드쇼크 2012'에서 "자기장 역전 현상은 지난 7천600만년 동안 171번 일어났고, 적어도 14번은 지난 450만년간 일어났다"며 "실제 지구 자기의 강도는 2천년 전 최대치에서 계속 감소해 현재는 38%가 줄어든 상태"라고 주장했다. 지구상의 생명체에게 지구의 자기장은 일종의 '신호체계' 역할을 하고 있다. 자기장이 변화하면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뇌구조와 신경계, 면역체계, 인지능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김재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칼럼을 통해 "지자극의 역전은 지구를 태양의 강력한 우주방사선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는 반알렌대의 약화를 뜻한다. 특히 역전의 과정에서 자기장은 필연적으로 제로(0)가 되고 이 과정에서 지구 생태계의 보호막인 반알렌대가 사라져버림으로써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고 주장했다.
2006년 3월 시작된 태양의 흑점 주기가 2012년에 최고조에 달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 국립대기과학연구소 마우수미 딕파티(Mausumi Dikpati) 박사는 "다음 흑점 주기는 이전보다 30~50% 더 강력할 것"이라며 "2012년에 최대치에 이르고 인공위성이나 스페이스셔틀, 각종 통신장비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상기온,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와 석유위기도 2012년을 기점으로 격심해지고, 3천600년 주기로 공전하는 '행성 니비루(행성-X)'가 긴 타원형 궤도를 그리며 다가와 2012년에 치명적인 해를 끼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정말 사실일까=그러나 '2012년 지구 위기설' 혹은 종말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대체로 예언들은 모호하고 아리송하다. '지나고 나니 그렇더라'는 식이 되다 보니 어쩌다 맞힌 예언은 부풀려지고, 빗나간 예언은 묻히기 마련이다. 노스트라다무스의 경우 수많은 예언을 했지만 그 예언들 가운데 얼마나 적중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과학지식을 동원한 주장들도 믿기 힘들다. 결론을 미리 내려놓은 상태에서 과학적 근거를 끼워맞춰 놓은 것도 있다. 학계에서는 '2012 지구 위기설'이 지나친 비약이라고 반박한다. 지구 자기장의 역전 현상의 경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지만 구체적인 연도를 2012년으로 단정하기 힘들다는 것. 행성이나 혜성 충돌설도 근거가 부족하다.
소행성의 충돌은 위협적일 수 있지만 확률이 아주 낮을 뿐더러 2012년에 충돌 위험성이 제기된 혜성은 전혀 없다. 황재찬 경북대 천문대기과학과 교수는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수도 있겠지만 가까운 미래도 아닐 뿐더러 곧장 지구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며 "태양 흑점 활동이 크게 활발해지더라도 정밀한 관측 장비가 실린 인공위성에 영향을 주거나 국지적인 정전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왜 2012년 일까=그렇다면 왜 이런 주장들이 나오는 것일까. 많은 미래학자들은 가까운 미래에 급격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달과 지구온난화, 자원 고갈 등 다양한 변화의 요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화가 곧 종말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미래는 고정된 시나리오가 아니라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한 검토이기 때문이다.
결국 '위기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방증인 셈이다.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 석유 등 자원고갈, 곡물 파동,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인간이 지구를 좀먹고 있다'는 불안감이 위기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홍종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지구온난화와 세계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 등 환경 자원 문제가 글로벌 이슈로 떠오르면서 인류의 미래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며 "극단적인 미래 전망보다는 불확실성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는 '후회하지 않을 정책'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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