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절대자 하느님이 제 마음 속으로 걸어 들어오셨습니다! 본문
절대자 하느님이 제 마음 속으로 걸어 들어오셨습니다!
| 절대자 하느님이 제 마음 속으로 걸어 들어오셨습니다! |
김명성(여,35세) / 부천 심곡도장 / 도기 138년 10월 26일 입도
절대자 하느님을 받아들이다
‘바로 이거야!’‘맞는 것 같아!’
반신반의하며 집어 들었던 두터운 책!『 증산도 도전』
잠을 줄여가며 몇날 며칠을 새벽까지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연신 속으로 외쳐댔습니다.‘ 바로 이거야! 내가 이곳저곳 부유하며 그토록 찾아왔던 것’‘바로 이거야!’
대학시절 3년 동안, 대순진리회까지 거쳐봤던 저는, 진리는 맞아도 종통은 아닐 수도 있다는 마지막 의구심을 놓지 않은 채 계속해서『도전』을 읽어 나갔습니다.
하지만 정말 달랐습니다. 대순진리회의 상제님과는 정말 달랐습니다. 대순에서 상제님은 피상적으로 하늘의 막연한 하늘님으로 존재했고 피부에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정말 저의 마음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도전』의 성구 말씀들이 살아서 꿈틀대며 제 안으로 들어와 생명력을 불어넣는 느낌이었습니다. 상제님을 그렇게 가슴으로 절실히 느껴본 적이 없었고,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고, 그렇게 가슴 벅차며 애닯고, 눈물이 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제 마음이 스스로 놀랍기도 했습니다. 단 한번도 꿈에서조차 뵌 적 없는 우주의 절대자 하느님께 대하여 어떻게 이런 감정이 일어날 수가 있을까?
하느님, 제가 갈 길을 알려주소서!
‘하느님! 제가 갈 길을 알려주소서!’하며 교회에서 조막손을 모아 기도하던 어린 시절에도 하느님은 멀기만 했고, 머리가 크면서는 저 또한 기독교인이면서도 기독교인들의 심한 배타성에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또한 저는 사찰에서 울리는 조용한 풍경소리를 좋아하는 이상한 기독교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이상한 종교인의 종교적 방황은 대학교 2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대순진리회를 만났고, 부모를 속여 생전 만져보지도 못한 큰돈을 빼내 성금으로 올렸습니다. 학교도 휴학하고 대순에 들어가 살다 병을 얻어 집으로 요양 올 정도로 갖은 고생을 하며‘도’를 닦던 그 때에도 상제님은 제 가슴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대순에서 병약해져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을 끌고 나와 다시 세상을 바라보면서는 그저 한숨만 지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3년이 분명 그리 헛되지는 않았습니다. 일종의‘선행학습’을 했다고 생각하며 대순을 그리 원망하거나 성금을 아까워하지는 않았습니다. 비싼 학원비를 냈다고 생각하고 훌훌 털었습니다.
영혼을 성숙시키는 수행에 매달리다
그러나 그 후 어떤 곳에도 내 영혼을 의탁하지 못하는 정신적 표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결혼을 했고, 결혼을 하자마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남편을 따라 한번도 발 디뎌 본 적 없는, 시댁이 있는 경상도 타지 땅에서 남편과 함께 태권도 도장을 경영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이권에 눈이 벌게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그런 류의 사람들에게 볶이며 몸과 마음은 또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다시 진리를 찾아야 했습니다. 시련이 올수록 마음과 영혼을 키우지 않으면, 그래서 그런 시련을 감싸 안을 만큼 내가 크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습니다. 불교에 귀의하며 법명을 받았고, 매일 108배를 드리며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저는 겉돌았을 뿐 불교 안에 제가 용해될 수는 없었습니다.
경상도 땅에 더 머물 수는 없었습니다. 계속‘죽음’이란 단어가 눈앞에서 어른거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남편은 모든 것을 접고, 저의 친정이 있는 인천으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비록 몸담을 진리가 없었지만 계속 영혼을 성숙시키는 수행을 하기 위해 나름대로 책을 읽어가며 저만의 종교를 키워갔습니다. 천주교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미사를 드려 보기도 하면서 좀더 제가 새로워지고 성숙하기를 기원했습니다. 저 나름대로 위빠싸나 명상을 시도해 보기도 했고, 카발라(유대 지혜서)를 연구하는 등 소속된 종교와 상관없이 마음 닦는 공부는 계속 지속되었습니다.
『도전』속 상제님께 빠져들다
‘카발라’에 대한 더 많은 자료를 구하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를 들어가게 되었을 때입니다. ‘증산도’라는 단어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그 즈음 몇 달 전부터 버스를 타고다니면 늘 저를 유혹하며 눈길을 끌던 간판이었습니다. 대순에서 한번 겪고 나서는 용기가 나지 않아 선뜻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여러 번 간판의 전화번호를 외워보기도 했던 터였습니다. 너무 반가워 바로 증산도에 대한 문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록 답은 없었습니다. 오기가 나서 그 사이트 운영자의 블로그에도 들어가 질문 글을 올렸습니다. 그리고도 며칠이 지나서야 겨우 답글이 달렸습니다. 그 뒤로 메일을 주고받으며 계속 문의를 했고, 지식이 짧아 저의 질문에 시원한 답을 해줄 수 없다며『개벽 실제상황』을 구입하면 카발라에 관한 책을 비롯해 증산도에 대한 의문점을 풀어줄 책들을 여러 권 빌려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망설일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보내 온 책 중에 눈에 띄는 두터운 책이 있었습니다. 바로『도전』이었습니다.
『도전』을 먼저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종교들을 부유하며 종교에 빠져들어 보려고 애를 많이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열의가 일어나지 않는 제 마음을 어찌할 수는 없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신앙하는 신앙인들을 보면 좀 부럽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신앙할 수 있을까? 광신도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에게『도전』은 신앙에의 몰입을 이해하게 해주었으며, 마음과 열성을 다해 믿는 선천 종교인들의 마음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진정 마음으로 상제님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렇게 눈물나게 상제님이 그립고,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리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상제님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해도 과연 증산도가 상제님의 진리를 올곧게 지켜가는 그런 곳인지, 대순처럼 난법난도를 짓는 곳은 아닌지, 그 점을 확인하는 과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 과제를 풀어가려면 증산도를 직접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도자의 제의로 대전에 가서 노상균 수호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정말 저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어 증산도에 대한 확신을 조금씩 갖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굳게 믿고 있던『도전』이 증산도에서 발간한 책이므로 절반은 증산도를 인정하고 갔기에 수호사님의 말씀은 저의 열린 마음에 바로 들어와 땅에 뿌려졌던 것입니다.
배례와 수행으로 더욱 정성을 들이다
그날로 입문하고 싶었습니다. 그날 바로 인도자와 함께 인천으로 돌아와 부천 심곡도장을 찾아가 제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 뒤로 일요치성에도 참석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모든 의식이 생소하고 낯설었고, 더구나 비디오로 사부님의 모습을 보며 의심이 나고 말씀은 귀에 거의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도전』이 진리에 맞는데 쉽게 물러설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포정님의 말씀대로 1주일간 집에서 105배를 올리며, 청수를 모시고 주문수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수행 도중 무서운 환영을 보았고 첫 수행 후 밤에 자면서 아주 무서운 악몽에 시달리면서 잠을 설쳐야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수행 자체가 무서워 정말 마음을 먹기가 힘들었습니다. 피곤에 찌든 몸을 질질 끌다시피 105배를 하기도 무척이나 힘이 들었지만, 그때마다, 몹시도 갈구해 왔던 상제님 진리를 좇으면서 천지 일꾼이 되려는 자가 이 정도에 무너져서는 안 되리라 마음을 굳게 먹고 수행과 배례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1주일을 채웠습니다.
매일 포정님과 통화하며 그 말씀에 힘입어 무서운 환영들을 견뎠습니다. 그리고 일요치성에 다시 참석했습니다. 그러자 비디오의 사부님 용안이 달라 보였습니다. 정말 눈에서 뭔가 벗겨진 듯하고, 웅웅거리기만 하던 사부님 말씀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태사부님과 사부님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리 따뜻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증산도는 반드시 입도해야 하는 곳이며 제가 가야할 길은 이 길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도(正道)를 걷고자 합니다
저를 이렇게 굽이굽이 증산도까지 이끌어 주시고 앞으로도 도(道)를 올곧게 닦아 갈 수 있게 지켜주실 저의 조상 선령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대인기피증, 대인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제가 늘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음에도 중요한 순간에는 용기를 내어 저를 이끌어 주셨고 또 대구에서 인천까지 먼 거리를 동행해 주셨던 인도자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시기적절하게 핵심이 되는 말씀을 해주신 노상균 수호사님, 저희 가족을 위해 자상하게 신경 써 주시는 부천 심곡도장 포정님과 여러 도생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믿어주고 증산도에 같이 입문 입도하며, 늘 함께 해주는 남편과 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후천이 오는 그날까지 천지부모가 쓰고자 하는 대로 쓰일 수 있는 무형의 빈그릇이 되어, 정성스럽게 정도(正道)를 걸어가고자 합니다. 부족한 저를 잘 이끌어 주시기를, 증산도에 계신 모든 신명과 도생들께 간곡히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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