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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살 접목 감나무, 해마다 감 5천개 '노익장'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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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살 접목 감나무, 해마다 감 5천개 '노익장'

세덕 2012. 10. 24. 16:22

530살 접목 감나무, 해마다 감 5천개 '노익장'

홍경낙 박사의 이야기가 있는 나무 ① 상주 '하늘 아래 첫 감나무'

조선 성종 때 고욤나무에 접붙인 국내 최고령 접목나무

노구에도 해마다 곶감 5천여개 생산하는 현역 감나무

 

gam0.jpg » 경북 상주시 외남면 소은리에 있는 530년생 '하늘 아래 첫 감나무'  

 

어느 세상에나 이 편 저 편을 나누고 1등 2등 순위를 매긴다. 지적 순수성과 객관성이 큰 몫을 하는 과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소위 ‘급’에 따라 등급을 구분하기도 한다.

 

치밀한 가설과 재현 가능한 실험으로 엄격하게 증명할 수 있는냐를 기준으로 '경성 과학'과 '연성 과학'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물리학이나 화학, 분자생물학 등이 이런 기준에 딱딱 잘 들어맞는 1등 과학 분야인 경성 과학이고, 관찰과 이론 사이에 경험적 해석이 상당히 들어가는 생태학이나 진화생물학이 말랑말랑한 연성 과학이라고 한다.

 

기준 자체에 형용사가 많아 분야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거나, 과학 발전에 따라서 또는 학제 간 방법론의 접목으로 새로운 융합학문이 나오는 등 애매함이 도처에 넘친다. 굳이 나눠 두면 과학의 속성이나 해당 분야의 과학철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지만 참으로 ‘과학적’이지 못한 과학 분야의 구분방법이다.

그런데 연성과학의 눈으로 보아도 아리송한 것이 우리나라 감나무의 구분이다. 감나무에 달린 채로 (생육과정에서) 떫은 맛이 사라지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단감과 떫은 감으로 나뉜다.

 

껍질이 두텁고 단단해서 칼로 깎아먹는 감이 단감이고, 말랑말랑한 연시(홍시)나 곶감이 떫은 감이다. 물론 두 품종군은 식물분류학상 동일한 감나무(Diospyros kaki Thunb.)이지만 벌률로는 주관 부처가 갈려서 단감은 농진청, 떫은 감은 산림청이 담당하고 있다.

 

‘임산물 및 산촌 진흥 촉진에 관한 법률’은 떫은 감만 따로 떼어서 임산물로 규정하고 있는데, 귤이 위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아마 감나무와 친척간인 고욤나무(D. lotus L.)가 농작물 취급을 받지 못하지만 감나무 접목의 대목으로 흔히 사용되고, 고욤나무 분포지와 떫은 감 생산지가 겹치는 인연으로 떫은 감이 자연스레 임산물로 분류되는 듯 싶다. 이러하니 감나무도 산림보호법이 정한 ‘보호수’에 속해서 관리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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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2006년 감나무나 고욤나무 중 100년 이상 된 노거수가 전국에 11그루 있다고 발표하고, 그중 최고령인 경남 의령군의 수령 450년 된 ‘의령 백곡리 감나무’를 천연기념물 제492호로 지정하였다.

 

그러나 경북 상주시에는 300년 이상된 나무만 50여그루가 넘고, 특히 상주시 외남면 소은리에는 ‘하늘 아래 첫 감나무’라는 이름을 갖는 530년생 감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2010년 국립산림과학원에서 목재절편 시료분석으로 수령을 감정하기 전까지는 ‘750년생’이라고 주장하기도 한 나무이다.

 

또한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도 푯말에 ‘2010년 국립산림과학원 측정’ 결과 700년생이라고 적혀있는 감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산청군 보호수 지정 당시인 1982년에는 590살이었고, 지역 역사가는 고려 말 식재기록(1382년경)을 들어서 630년을 주장하고 있다.

 

언급된 세 그루 모두 밑둥이 썩어서 커다란 공동이 생겼기 때문에 정확한 수령 측정에는 한계가 있고, 남아있는 부분의 나이테와 두께로 나이를 추정할 수밖에 없는데, 어째 수상쩍은 경쟁이 느껴지기도 한다. ‘네가 700이면 난 750!’ 참고로 가슴높이에서 잰 나무의 몸통 둘레는 백곡리 4m, 소은리 2.7m, 남사리 1.8m로 되어 있다.

 

gam00.jpg » 소은리 감나무는 늙은 나이에도 해마다 5000여개의 감을 연다.

 

나이 다툼과 상관없이, 아마 세간의 관심을 제일 많이 받는 감나무는 소은리의 ‘하늘 아래 첫 감나무’일 것이다. 백곡리 감나무는 비록 천연기념물이지만 이제는 감을 맺지 못하고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 구실만 하고, 남사리 감나무는 남사 예당촌의 가을 풍경을 지켜줄 정도의 감만을 달고 있다.

 

두 감나무가 문화활동에 집중하는 반면 소은리 감나무는 매년 5000여개의 곶감을 생산하여 우리나라 곶감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곶감 특구’ 상주시의 유명세를 업고 ‘하늘 아래 제일 비싼 감나무’로서 현역을 이어가고 있다.

 

작년에 이 나무의 곶감은 한 개에 1만원꼴로 백화점에서 팔렸다. 앞선 백곡리와 남사리 감나무들이 우아한 문화활동에 집중하는데 반하여 소은리 감나무는 왕성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소은리 감나무는 제일 비싼 감나무라는 기록 말고 또 하나의 진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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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44.jpg » 개당 백화점에서 1만원에 팔리는 소은리 감나무에서 감을 조심스럽게 따고 있다. 지난해 10월24일 감따기 행사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접목나무라는 것이다. 감나무의 번식은 종자보다는 감나무 가지를 잘라 고욤나무에 접을 붙이는 방법을 주로 쓴다. 종자로 번식된 감나무는 품질이 낮은 감을 맺기 때문에 우수한 형질을 유지하는 데는 무성번식 방법인 접목을 이용한다.

 

고욤나무는 추위에 강하고 잔뿌리가 잘 발달해 감나무 접목에 대목으로 흔히 쓰이는데, 접목 후에 오랜 기간이 지나면 접붙인 자리를 구분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500살이 넘는 소은리 감나무 경우에는 외관상 접목 여부의 확인이 불가능해서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는 상태였다.

 

2010년 국립산림과학원은 상주시의 의뢰를 받아, 소은리 감나무의 잎과 뿌리에서 각각 유전물질인 디엔에이(DNA)를 분리해서 다른 감나무와 고욤나무의 디엔에이와 비교했다. 그랬더니 소은리 감나무 잎사귀에서 나온 디엔에이는 다른 감나무들의 잎사귀의 것과, 소은리 감나무 뿌리의 디엔에이는 다른 고욤나무 잎사귀의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소은리 감나무는 고욤나무에 감나무를 접붙인 나무인 것이다.

 

이 조사로 우리나라 최고령 접목나무가 대구시 평광동의 81년생 사과나무에서 530년생 소은리 감나무로 바뀌게 되었다. 590년 전 조선 태종 23년(1423년)에 배나무에 대한 접목이 역사서에 있는데, 감나무 접목도 그에 못지않게 오래 되었음이 실체로써 증명된 것이다.

 

우리나라 떫은 감 재배는 고려 말(1348년) 도입된 중국책 ‘농상집요(1273년 간행)’의 언급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700년 이상은 되지 않겠나 싶지만, 감나무 접목에 대한 당시의 역사기록은 찾지 못했다.

 

한국관광공사_외남 상주 곶감축제.jpg » 샹주시 외남면에서는 해마다 곶감축제가 열린다. 사진=한국관광공사

 

소은리 감나무의 접목 여부를 확인하는데 사용한 디엔에이 감식은 미국의 과학 수사 드라마 ‘시에스아이(CSI)’의 방법과 다를 바가 없다. 범죄현장의 피 한방울에서 추출한 디엔에이를 용의자의 것과 비교해 범죄를 확증하는 것이다.

 

식물의 디엔에이는 매우 안정적인 유전물질로 잎이건 뿌리건 한 개체 내에서는 정확히 동일하고, 개체나 수종이 다르면 차이가 난다. 또한 오랫동안 지리적으로 격리된 지역의 동일 수종간에도 비교가 가능한데, 열대림의 불법 벌채와 도벌목의 수출입을 규제하는 방법으로 디엔에이 분석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일례로 유럽에서는 극동러시아 지역의 잣나무 불법 거래를 막기 위해서 여러 나라, 각 지역에서 자라는 잣나무들의 디엔에이를 수집하고, 디엔에이 바코드를 작성하고 있다. 불법이 의심되는 목재에서 채취한 디엔에이를 등록된 바코드와 비교한다는 계획으로 추진중이다.

 

이런 디엔에이 기술을 적용해 우리나라 감나무 접목의 효시가 최소한 1480년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은리 감나무가 ‘하늘 아래 첫 감나무’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하늘 아래 첫 접목묘’라는 건 증명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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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소은리 감나무는 이전에도 디엔에이 감식을 받은 나무다. 감나무에 발생하는 공동이 심해서 마치 두 나무인 것처럼 나무줄기가 갈라져 있다. 당연히 하나의 나무가 자라는 과정에 속이 썩고 갈라진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워낙 몸값이 비싼 나무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뉘어진 부분의 가지에서 각각 잎사귀를 채취해 디엔에이를 비교하였다. 결과는 ‘역시나’였다.

 

어쨌든 두 번씩이나 첨단과학의 수혜를 받는 독특한 이력을 갖게 된 이 감나무를 직접 보고 싶다면 경북 상주시 외남면 소은리 379-1번지로 가면 된다. 997번 지방도를 따라 가다가 소은1리 마을 앞에서 500m쯤 들어가면 된다. 길옆으로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가 있는데, 워낙 비싼 나무라 보는 눈이 많으니 행여라도….

 

글 홍경낙/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유전자원과 박사, 사진=상주시

 

■ 이 글은 국립산림과학원이 발행하는 잡지 <과학이그린> 2012년 9·10월 호에 실린 것으로, 국립산림과학원의 허락을 받아 전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