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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손돌목"에 얽힌 비화

세덕 2013. 5. 15. 12:33

강화도 "손돌목"에 얽힌 비화
강화도 "손돌목"에 얽힌 비화



 

 

강화도는 한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있는 섬이다. 강화도와 육지 사이의 좁은 곳, 이곳의 바닷물은 그 흐름이 유난히 거세다. 물살이 거센 이 곳은 손돌목이라 불린다. 손돌목? 왠지 한 지붕 세 가족의 순돌이가 생각나는 이 구수한 명칭에는 슬픈 사연이 숨겨져 있다는데….

 

 

손돌목에 얽힌 슬픈 사연

 

때는 고려시대. 몽고의 침입을 받을 때다.

고려 고종은 몽고군을 피해 강화도로 피신해야 했다. 고종은 강화도로 가는 작은 배를 탄다. 그 배의 뱃사공은 손돌. 손돌이 모는 배에 왕과 그 일행이 타고 바다를 건너게 되었다.

 

강화도로 가는 뱃길은 너무도 험했다. 그러나 손돌은 태연하게 배를 몰았다. 배가 광성보를 지나자 바다의 물살은 점점 더 거세기만 했다.

 

왕은 뱃사공 손돌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 뱃사공이 날 해치려고 배를 일부러 물길이 험한 곳으로

몰고 가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낳은 비극

 

손돌이 물살이 더 거센 곳으로 배를 몰고 가자, 왕의 의심은 더해갔다. 다급해진 왕은 신하를 시켜 손돌의 목을 베라고 명하였다.

 

손돌이 자신은 임금님을 안전한 뱃길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믿어줄 리 없었다. 손돌은 죽음을 앞두고 말했다.

 

이 곳은 물길이 험합니다. 아무 길이나 가면 큰일나십니다. 제가 바다에 띄우는 바가지가 흘러가는 데로 배를 몰고 가십시오. 그럼 안전하게 강화도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손돌은 죽었다.

 

손돌목의 물살이장미

 

요동치는 바다에서 왕은 하는 수없이 손돌이 말한 데로 바가지를 따라갔다. 이윽고 배는 무사히 강화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왕이 강화도에 발을 내딛자,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물살은 더욱 험해졌다.

손돌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듯이…. 왕은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하여 왕은 억울하게 죽으면서도 자신을 위했던 손돌의 시신을 잘 거두어 후하게 장사를 지내라고 명했다. 또한 그 곳을 손돌목이라 부르게 했다.

 

 

손돌목의 위치 ⓒ 이장미

 

 

 

매년 음력 10월 20일에 부는 손돌의 한숨

 

지금도 강화도 광성보에서 마주 보이는 김포의 덕포진(대곶면 신안리)에 손돌의 무덤이 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매년 부는 바람이다. 음력 10월 20일에는 거세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 때문에 강화도 사람들은 그날엔 바다에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 바람은 손돌풍혹은 손석풍이라 불린다. 음력 10월 20일이 손돌이 죽었던 날이라 억울하게 죽어야 했던 손돌의 한숨이 바람이 되어 불어온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손돌목돈대

 

손돌목을 내려다보는 곳에 손돌목돈대가 있다. 손돌목돈대는 광성보에 있는 돈대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돈대는 원형 구조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참고로 돈대란,성벽 위에 석재 또는 전()으로 쌓아 올려 망루(望樓)와 포루(砲樓)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높직한 누대(樓臺)를 말한다.(네이버 백과사전)

 

 손돌목돈대 ⓒ 이장미

 

뱃사공 손돌 이야기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 손돌목돈대…. 손돌목에는 안타까운 죽음의 사연이 많이 담겨 있다. 그때의 안타까운 죽음들은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그 역사가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