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치우천황>치우천황(蚩尤天皇)-자오지천황(배달국) 본문
<치우천황>치우천황(蚩尤天皇)-자오지천황(배달국)
무성(武聖), 치우천황(蚩尤天皇)
조선시대 중기 조여적의 《청학집》에서 도인 김선자(金蟬子)는 변지(卞沚)가 지은 《기수사문록, 記壽四聞錄》이라는 책을 거론하면서 한국선도의 도맥이 한얼(환얼, 한인, 환인) - 환웅(桓雄) - 단군(檀君)으로 이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기수사문록記壽四聞錄》은 한국선도의 계보를 기록한 총서이다. 이는 현재 티벳의 달라이라마처럼 우리나라의 상고시대가 ‘제정일치(祭政一致)’ 시대였기 때문이다.
상고 14대 자오지(慈烏支) 환웅인 치우천황(BC2707∼BC2598)은 황제 헌원과 탁록(涿鹿)의 전투에서 패권을 다투었다. 일설에는 황제 헌원이 치우천황의 배다른 형제라는 말도 있다.
중국의 고서 《산해경》과《사기》, 우리나라의 《환단고기》에는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이 자웅을 겨뤘던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당시의 사람들은 치우천황을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가진 ‘동두철액(銅頭鐵額)’의 괴물로 표현했는데, 이는 치우천황께서 당시 최초로 금속무기를 사용한 청동기 문화의 개창자였기 때문이었다.
관자(管子)는 ‘치우가 노산(盧山)에서 금을 얻어 5가지 병기(兵器)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 사마천의 《사기史記》
구려국의 임금을 치우라 한다. 九黎之君號曰蚩尤 - 《書經》
치우는 고대의 천자이다. 蚩尤古天子 - 《書經》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은 무려 10여 년 간 73회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는데, 그때마다 항상 치우천황의 73전 73승이었다. 치우천황은 제정일치 시대의 군왕이었으므로 도력(道力)과 기무(氣武)에 뛰어났으며, 우뢰와 비를 자유자재로 부렸다.
큰 안개를 일으켜 적으로 하여금 지척을 분간치 못하게 하고, 물과 불을 부리며, 호풍환우하는 치우천황을 당시의 사람들은 모두 외경하였다고 하였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많은 사람들이 치우천황을 다음과 같이 찬양하고 있다.
치우천황은
신(神)처럼 용맹하였고
구리로 된 머리와 쇠 이마를 가졌다.
눈빛은 선하면서도 강렬했으며
그의 마음은 사물과 세상의 이치를 꿰뚫었다.
그의 머리는 지혜로 빛났으며
가슴은 뜨겁고 온 몸은 힘이 넘쳤다.
그가 말을 타고 대륙을 달릴 때
그의 갑옷과 어깨에 맨 외날 칼(儉)은
태양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양손에는 모(矛)와 극(戟)을 쥐고
탁록의 전투에서 천도(天道)를 지켜냈다.
그는 4천년 전 중국의 호북성, 호남성, 강서성의 주인이었으며,
동이족의 제왕이었다.
신(神)처럼 용맹한 치우천황을 도저히 당할 장사가 없자, 황제 헌원은 산에 올라 치성으로 제를 지내며 신에게 봉선(封禪)하였다. 그리고는 마지막 전투에서 신의 조력을 받아 치우천황과 싸웠다고 한다.
전쟁의 신(神) 치우천황은 동쪽으로는 회대(淮垈)의 땅을 진격하여 성읍으로 삼았으며, 지금의 산동성과 안휘, 강서성까지 영토를 확장시켰으니, 실로 얼마만큼 넓은 영토를 개척하고 경영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지금도 중국 산동성에는 치우천황의 능이 남아 있으며, 그때 팠던 우물이라든지, 진을 쳤던 자리들이 역사적인 유물로 남아있다. 그리고 현지인들 간에는 치우천황의 무용담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치우천황의 능과 유적들이 중국 산동성에 있다는 것은 배달겨레 청구국의 중심지가 산동성이었음을 뜻하는 것이리라.
이리하여 우리의 역사학계, 지리학계, 수행계통, 주역학계들이 다들 치우천황능과 탁록의 전투 현장을 답사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중국은 관광수입을 대거 벌어들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제는 공식적인 학술발표회를 열면서 우리의 14대 환웅이신 치우천황을 자기네 조상으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필자는 2003년 티벳 여행을 갔을 때, 카일라스(수미산, 6,714m) 아래 마나사로바 호수 근처에 치우 곰파(사원)가 있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귀국해서 우연히 서경보(1914∼1996) 스님의 글을 접하게 되었는데, 스님 생전에 티벳을 여러 번 답사하면서 치우천황 영역이 티벳까지 뻗어있다고 자신의 연구를 발표하신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용맹의 화신이자 태양의 아들이었던 치우천황은 동방의 무성(武聖)이자 군신(軍神)으로 자리잡았다. 한고조 유방은 전투에 출전하기 앞서 항상 치우천황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하며, 강태공 역시 제나라의 왕으로 봉분된 뒤 치우천황을 자신의 병주(兵主)로 모셨다.
불멸의 전승을 남긴 우리의 이순신 장군도 치우천황 사당에 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난중일기에 전하고 있다.
해마다 10월이면 사람들은 치우천황의 무덤에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무덤에서 붉은 기운이 뻗쳐오르며 단풍나무(楓木)가 생겨났다고 한다. 그 붉은 기운을 ‘치우기(蚩尤旗)’라고 하며, 한국 선도(仙道)에서는 단풍나무가 물드는 10월을 ‘치우천황의 계절’로 기리고 있다.
그리고 이 ‘치우기(蚩尤旗)’는 동양 천문에서 하나의 별자리 이름으로까지 붙여지게 되었으니, 실로 태양의 아들 치우천황의 영향력은 장대하다 하겠다.
치우천황의 붉은 기운은 삿된 기운을 물리친다하여 단오 부적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궁과 왕릉의 귀면와와 온갖 무기에도 형상을 새겨 보호신으로 삼아왔다.
또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어땠는가! 치우천황의 모습을 형상화한 붉은악마가 경기장과 거리마다 열광의 도가니를 만들었고, 배달겨레 한민족 투혼의 상징인 치우천황의 붉은 투혼은 역시 ‘오늘날의 전쟁 스포츠’에서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던 것이다.
한편, 치우천황과 패권을 다퉜던 황제 헌원의 기록을 우리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 진(秦)나라 사람인 갈홍(283〜343)은 그의 저서《포박자》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옛날에 황제가 있었는데, 동(東)으로 청구(靑丘) 땅에 이르러 풍산(風山)을 지나서 자부선생을 만나《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았다.’
청구는 바로 조선 땅이요, 풍산은 백두산이다. 또 중국사람 서량지가 지은《중국사전사화》에도 ‘황제족이 동이문화를 받았다.’ ‘은(殷)은 곧 요동의 동이 땅인 조선에서 일어났다.’고 나온다. 요동이 동이 땅이라고 적혀 있다!
이렇게 황제 헌원은 청구(靑丘)의 자부선생에게 동이족의 현묘지도(玄妙之道)를 받아감으로서, 비로소 중국 도교의 시조가 되었던 것이다.
맹자님 말씀 중에 우리민족을 잘 표현하신 말씀이 있다.
한 마을 뒷산에 울창한 숲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웃마을의 도적들이 울창한 숲의 나무들을 베어다가 자기들의 집도 짓고 창고도 짓고 공장도 짓는데 썼다. 그래서 숲은 벌거숭이가 되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자 그루터기에서 다시 싹이 트고 나무가 자랐으나, 그때마다 또 염소가 싹을 뜯어 먹고, 마을 사람들도 땔감으로 베어갔다.
숲은 새싹이 자랄 틈이 없어, 다시 벌거숭이가 되었다.
몇 대가 그렇게 지나자, 후대 사람들은 그 산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 산은 원래부터 나무가 없었던 산이야.”
우리 민족에게는 고대로부터 ‘홍익인간 이화세계’라는 훌륭한 고유사상 현묘지도가 있었다. 이웃나라들이 우리 것을 탐해 계속 도적질해가고 불태우기를 거듭하였다. 그러자 이제는 많은 백성들이 우리민족에게는 ‘고유사상’이 없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분들은 유·불·도 3교가 우리의 전통문화와 사상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계시다.
그러나 아니다. 유·불·도 3교는 삼국시대 말기에 들어온 것이다.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 수입되었고, 같은 해 유교도 수입되어 태학(太學)이 설립되었다. 도교는 그로부터 252년 뒤인 고구려 영유왕 7년(624년, 당고조 7년)에 조의선인 연개소문의 주청에 의해서 수입되었다.
유·불·도 3교가 수입되어 들어오기 이전부터 우리나라에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민족 고유의 사상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현묘지도 풍류도, 국선도였다.
우리의 것들을 적들이 다 훔쳐가고 불태우고 하였지만, 다행히 그들이 훔쳐간 것들에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자료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앞으로 그러한 것들을 기회가 닿는 대로 독자들과 공유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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