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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사>불태워진 서효사(신지비사), 잿더미가 된 역사의식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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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사>불태워진 서효사(신지비사), 잿더미가 된 역사의식

세덕 2023. 9. 21. 19:55

<서효사>불태워진 서효사(신지비사), 잿더미가 된 역사의식

<서효사>불태워진 서효사(신지비사), 잿더미가 된 역사의식

 

대한의 후손들은 고구려가 멸망당한 후 만주를 상실하고 한반도에 갇혔다. 고려 시대에는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에 굴욕을 당하기도 했고, 조선에 이르러서는 소중화를 자처할 지경까지 국력이 쇠잔해졌다. 이 와중에 실로 중차대한 일이 일어났다. 바로 태종太宗 이방원의 「서효사誓效詞」 소각 사건이다.

이번 달에는 지나족의 눈치를 보며 우리 스스로 태운 「서효사」에 관해 집중적으로 살펴볼까 한다. 태종은 왜 동방 조선의 역사서인 「서효사」를 불태웠을까? 불타 버린 「서효사」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을까?

「서효사」란 어떤 글인가?
「서효사誓效詞」는 ‘맹세할 서誓, 본받을 효效, 말씀 사詞’ 자로 문자적으로는 ‘하늘에 맹세하고 본받는 글’이라는 뜻이다. 이 「서효사」를 일명 「신지비사神誌秘詞」라고도 한다. ‘신지神誌에 의해 기록된 비밀스러운 글’이라는 뜻이다.

그럼 하늘에 고하는 글, 제천문인 「서효사」(신지비사)에 관한 현재 전하는 문헌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며 진면목을 파악해 보자. 「서효사」는 『삼국유사』,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환단고기』 등에 기록되어 전한다.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에 나타난 「서효사」
自稱姓盖名金(자칭성개명금) 位至蘇文(위지소문) 乃侍中職也(내시중직야)
그(개소문)는 스스로 성을 개盖라 하고 이름을 금金이라 했으며 지위가 소문蘇文에까지 이르니 바로 시중侍中의 벼슬이다.

唐書(당서) 云(운) 盖蘇文(개소문) 自謂莫離支(자위막리지) 猶中書令(유중서령)
『당서』에는 개소문이 자칭 막리지莫離支라고 했으니 당나라의 중서령과 같은 것이라 했다.

又按(우안) 神誌秘詞序(신지비사서) 云(운) 蘇文(소문) 大英弘(대영홍) 序幷注(서병주)
또 「신지비사」의 서문을 보면 ‘소문 대영홍이 서문을 쓰고 주를 달았다’고 했다.

則蘇文乃職名(즉소문내직명) 有文證(유문증) 而傳云(이전운) 文人蘇英弘序(문인소영홍서) 未詳孰是(미상숙시)
그렇다면 소문은 직책명이라는 증거이다. 전傳에는 문인 소영홍이 서문을 썼다 했는데,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제삼卷第三 흥법興法, 보장봉노寶藏奉老 보덕이암普德移庵)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일연 스님은 보장왕寶藏王과 (연)개소문蓋蘇文의 대화를 통해 「서효사」의 다른 이름인 ‘신지비사’를 전한다. 다만 그 본문은 전하지 않고, “‘소문蘇文 대영홍大英弘 서병주序幷注’, 소문 대영홍이 서문을 쓰고 주를 달았다.”라고만 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일연 스님 시절에 분명 「신지비사」라는 문서가 존재했고, 관직명이 소문蘇文인 대영홍大英弘이 서문과 주석을 달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사』가 전하는 「서효사」
「서효사」 본문의 일부는 세종대왕 시절 편찬된 『고려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고려사』를 보면, 고려 중기 숙종 임금 때 김위제金謂磾라는 신하가 『도선비기道詵秘記』와 「신지비사神誌秘詞」를 근거로 하여 남경 천도를 건의했다고 한다.

金謂磾(김위제) 肅宗元年(숙종원년) 爲衛尉丞同正(위위위승동정)
김위제는 숙종 원년(1096)에 위위승동정衛尉丞同正이 되었다.

新羅末(신라말) 有僧道詵(유승도선) 入唐學一行地理之法而還(입당학일행지리지법이환) 作秘記以傳(작비기이전)
신라 말기에 승려 도선道詵이 당에 들어가 일행一行의 지리법地理法을 배우고 돌아와 비기秘記를 지어 후세에 전하였다.

謂磾學其術(위제학기술) 上書請遷都南京曰(상서청천도남경왈)
김위제가 도선의 술법을 공부하여 남경으로 천도하자고 요청하는 상서를 올리며 말하기를,

道詵記云(도선기운) 高麗之地(고려지지) 有三京(유삼경) 松嶽爲中京(송악위중경)
木覓壤爲南京(목멱양위남경) 平壤爲西京(평양위서경)
「도선기道詵記」에 이르기를, ‘고려의 땅에는 3경京이 있으니, 송악松嶽이 중경中京이 되고, 목멱양木覓壤이 남경南京이 되며, 평양平壤이 서경西京이 된다.

十一十二正二月(십일십이정이월) 住中京(주중경) 三四五六月(삼사오유월) 住南京(주남경)
七八九十月(칠팔구시월) 住西京(주서경) 則三十六國朝天(즉삼십육국조천)
11월·12월·1월·2월에는 중경에 거주하고, 3월·4월·5월·6월에는 남경에 거주하며, 7월·8월·9월·10월에는 서경에 거주하면 36개 나라가 와서 조공을 바칠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중략)

又神誌秘詞曰(우신지비사왈) 如秤錘極器(여칭추극기) 秤幹扶疎樑(칭간부소량)
錘者五德地(추자오덕지) 極器百牙岡(극기백아강)
또 「신지비사神誌秘 詞」에서 말하기를, ‘저울추[秤錘]와 저울접시[極器]에 비유하자면 저울대[秤幹]는 부소량扶疎樑이며, 저울추는 오덕五德을 갖춘 땅이고, 저울머리는 백아강百牙岡이다.

朝降七十國(조항칠십국) 賴德護神(뇌덕호신)
(이곳에 도읍을 정하면) 70개 나라가 항복하여 조공을 바칠 것이며 땅의 덕에 힘입어 신기神氣를 수호할 수 있을 것이다.

精首尾(정수미) 均平位(균평위) 興邦保太平(흥방보태평) 若廢三諭地(약폐삼유지) 王業有衰傾(왕업유쇠경)
저울의 머리와 꼬리를 정밀하게 하여 수평을 잘 잡을 수만 있다면 나라를 융성하게 하고 태평성대를 보장받을 것이고, 만약 비유로 들은 세 곳의 땅을 버린다면 왕업은 쇠퇴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김위제는 고려의 수도(중경)인 송악, 서경인 평양과 더불어 남쪽에 남경을 열어 왕이 넉 달씩 순회, 거주하며 국정을 볼 것을 건의하였다. 그러면서 도선道詵의 풍수지리서인 『도선기道詵記』와 「신지비사」를 통해 삼경三京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삼경제도는 석 삼에 서울 경 자로 수도를 셋을 두고 통치한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고려 중기까지 『신지비사』의 핵심인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가 전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핵심은 삼한의 저울추와 저울대, 저울접시에 해당하는 세 수도가 조화롭게 유지될 때 ‘조항칠십국朝降七十國’, 즉 주변 칠십 나라가 조공을 하고, 태평성대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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