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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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한다./전염병의 횡포

독감과 바이러스

세덕 2012. 4. 12. 15:42

독감과 바이러스



메디컬 인베스티게이션 : 독감과 바이러스

하리하라의 영화와 과학 이야기 (6) 2008년 08월 05일(화)

하리하라의 영화 카페 어느 작은 마을의 주민들이 갑자기 원인모를 괴질로 쓰러지자,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역학조사팀이 현장에 급파된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환자들은 더욱 늘어나 있었고, 마을의 유일한 의사마저 사망한 상태였다. 처음에는 가벼운 재채기로 시작되는 괴질은 점차 고열과 심한 기침을 동반하고, 결국에는 폐에 혈액이 가득 차서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질환이었다. 이 질환이 더 무서운 것은 이 일련의 과정들이 불과 며칠에서 몇 주에 이르는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괴질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현장에 뛰어든 NIH의 요원들은 처음 괴질에 걸린 사람을 접한 이들 중에서 유일하게 한 80대 할아버지만이 괴질에 걸리지 않은 사실을 발견한다. 또한 할아버지가 괴질에 걸린 아내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NIH 요원들은 이 병이 과거 할아버지가 언젠가 걸렸던 질병이어서 자연 면역을 가지고 있다고 추정하기에 이르는데...

- 메디컬 인베스티게이션(Medical Investigation) 시즌 1의 한 에피소드 중에서


갑자기 평화로운 시골 마을을 덮쳐서 마을 사람들을 죽음의 위기에 몰아넣는 괴질. 언뜻 이는 지난 2003년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사스(SARS)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사스가 아니라 1918년 전세계를 강타했던 스페인 독감입니다. 오랫동안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던 스페인 독감의 바이러스에 마을 사람 중 하나가 접촉했고, 이로 인해 온 마을에 스페인 독감이 퍼지게 된 것이죠. 그리고 유일하게 감염되지 않은 할아버지는 그가 아기였던 시절, 스페인 독감을 앓은 적이 있어서 몸 속에 항체가 생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병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죠.

우리 몸은 어떤 종류의 바이러스나 세균이 일으키는 질환들은 한 번 앓고 나면, 그 바이러스나 세균을 물리칠 수 있는 항체가 생겨서 다시는 같은 병에 걸리지 않게 됩니다. 이 것이 바로 ‘면역’의 과정이고, 이를 인위적으로 이용한 것이 백신을 이용한 예방접종이지요.

독감, 무서운 병 or 가벼운 병?


독감(Influenza), 우리말로는 ‘독한 감기’ 정도로 인식되지만, 감기와 독감은 같은 호흡기 감염 증상임에도 그 원인은 조금 다릅니다. 워낙 다양한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되어 어떤 바이러스가 원인인지 분명하게 파악하기가 힘든 감기에 비해,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라는 비교적 분명한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입니다. 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호흡기로 유입되며 감염을 일으켜 여러 가지 증상들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독감이죠. 감기와 비슷하지만 감기에 비해 증상이 ‘독한’ 특징도 가지고 있습니다.

재채기를 할 때 분사되는 침과 분비물의 모습. 재채기는 시속 200km에 달하는 엄청난 속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때 분사되는 분비물들을 타고 각종 세균이나 바이러스도 같이 퍼져나와 다른 이들을 감염 시킬 수 있습니다.

독감은 주로 춥고 건조한 겨울에 잘 발생하는데, 독감의 영어 명칭인 인플루엔자 자체가 이탈리아어의 ‘Influenza di freddo’, 즉 ‘추위의 영향’이라는 말에서 왔답니다. 독감 환자가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철이면 많이 발생되어서 이런 이름을 붙였던 모양이지만, 독감은 단지 추워서라기보다 독감 환자가 재채기를 할 때 분비되는 침을 통해 독감 바이러스가 배출되면서 공기 중에 떠돌다가 전염됩니다. 따라서 아무리 날씨가 춥더라도 독감 바이러스를 접하지 않는다면 독감에는 걸리지 않는답니다.

사람들은 독감에 걸리면 고열과 두통, 근육통, 기침 등의 증상으로 며칠간 고생하긴 하지만, 독감에 걸렸다고 해서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가벼운’ 병이 한 때는 무려 2천만명(혹자는 1억명 이상으로 추정하기도 함)이라는 인명을 앗아간 무서운 질환이었던 적도 있습니다. 당시 한창 전쟁 중이던 제 1차 세계대전의 전사자 수가 920만명이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숫자입니다.


1918년 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의 사망률은 2.5%였습니다. 사망률 2.5% 정도야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보통 독감의 사망률은 0.01%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독감은 매우 전염력이 강한 병이라서 세계 인구의 거의 20%가 독감에 걸렸기 때문에, 사망률은 다른 치명적인 질환에 비해 높지 않을지 몰라도, 사망자의 숫자는 엄청났던 것이죠. 이렇게 전세계를 휩쓸면서 수많은 사상자를 냈던 스페인 독감은 밀물이 밀려가고 나면 순식간에 갯펄이 드러나듯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는 그 때의 그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듯한 치명적 독감의 대규모 유행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런 행운이 계속될지는 모를 일입니다.

조류독감의 등장

그런 우려가 드는 이유는 최근 들어 대규모로 유행하고 있는 조류독감(Avian Influenza) 때문입니다. 조류독감이란 말 그대로 조류, 즉 새들에게 유행하는 독감으로 조류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Avian influenza virus type A)라는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하는 질환이지요. 닭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게 되면 벼슬이 파랗게 변하는 청색증 현상과 함께 머리 부분이 부어오르고 사료를 잘 먹지 않으며 암탉은 알을 잘 낳지 못하게 되다가, 심해지면 폐사에 이르게 되지요.

조류독감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병이지만, 그 심각성은 최근 들어 전면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근대식 대량사육 시스템에서는 한정된 사육사에서 한꺼번에 수많은 개체들을 대량으로 키우다보니 조류독감처럼 공기 중으로 전염되는 질병의 경우, 일단 바이러스가 출현하면 집단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죠. 이 조류독감의 원인은 오소믹소바이러스(Orthomyxovirus)의 일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Myxo는 그리스어에서 온 말로 끈적끈적한 점액(mucos)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생명체가 원활하게 호흡을 하기 위해 코, 입, 기관지, 폐 등의 호흡기는 늘 점액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어야 하는데, 이 오소믹소바이러스들은 이런 호흡기에 주로 감염을 일으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지요.

이 오소믹소바이러스들은 크기가 80-120nm 정도로 유전물질로 RNA를 가지며, 이 RNA를 둘러싸고 있는 뉴클레오캡시드(nucleocapsid)에 엔벨롭(envelop)이라는 껍데기가 둘러쳐진 형태를 지녔는데, 벨롭에는 못처럼 생긴 hemagglutinin(HA)과 neuraminidase(NA)이라는 물질이 촘촘히 박혀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숙주 세포의 표면에 달라붙어 바이러스를 숙주로 침투시키는 일종의 스파이크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죠. 바이러스는 표면에 있는 HA와 NA라는 일종의 스파이크로 숙주 세포를 콱 찍어, 내부로 자신의 유전물질을 집어넣어 숙주 세포를 자기 것으로 만들 준비를 합니다.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표면에 존재하는 HA는 16종, NA는 9종이 알려져 있는데,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HA와 NA를 1개씩 가지므로, 이론상으로는 16×9=144, 즉 144가지 종류의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무서운 종류는 HA 5번과 NA 1번을 가지고 있는 H5N1 바이러스로, 이 바이러스가 현재 일어나고 있는 거의 모든 조류독감 집단 발생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요.

오랫동안 조류독감은 인간에게는 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조류독감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들은 조류의 호흡기 세포에 존재하는 효소와 작용하여 질병을 일으키는데, 인간의 폐에는 그런 효소가 없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이런 믿음을 흔들리게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1997년 홍콩에서 처음으로 조류독감에 감염되어 희생자가 나온 이래, 2006년 7월까지 전세계적으로 229명이 감염되어 그 중 131명이 사망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치사율이 57%라니, 중세유럽을 붕괴시켰던 흑사병의 치사율이 30~70%, 무시무시한 질병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천연두의 치사율이 50% 정도로 알려져 있는 것과 비교해 보면, 사람에게도 전염되는 조류독감이 대규모로 유행한다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 지는 상상하기조차 싫습니다.

왜 사람에게 전염되었는가?

앞서도 말했듯이 원래 조류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사람의 독감 바이러스와는 달라서, 조류의 세포에만 감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입니다. 이렇게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특정 종류의 종(種)에게만 특화된 종특이성(highly species-specific)을 갖기 때문에 특정 종에게는 위협적인 바이러스이더라도 다른 종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돌연변이가 매우 잦은 개체이기 때문에, 갑자기 어느 순간 돌연변이가 생겨나 종특이성이 무너지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답니다. 그래서 가끔은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염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 인간은 이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이 전혀 없기 때문에 치사율이 매우 높게 나타나는 것이죠.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인간에게 감염되는 기작을 설명하기 위해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흥미로운 것은 로버트 웹스터 박사와 케네디 쇼트리지 박사의 주장으로, 그들은 조류독감과 인간 사이의 넘지 못할 장벽을 무너뜨린 것이 바로 돼지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돼지는 조류독감 바이러스와 인간독감 바이러스에 동시에 감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가설은 이렇습니다. 닭과 돼지가 동시에 사육되는 농장에서 우연히 닭은 조류독감에, 사람은 독감에 걸렸고, 둘의 몸 속에서 나온 바이러스들이 동시에 돼지에 유입되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겠지만,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돼지의 몸은 바이러스들의 공동 인큐베이터가 되고,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들끼리의 유전자 재조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친구가 되어 오히려 서로의 나쁜 술버릇을 배우는 것처럼, 돼지 몸에서 만난 조류독감과 인간독감의 바이러스들이 서로의 유전정보를 교환하여 새로운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조류와 인간에게 모두 감염될 수 있고, 그 효과 또한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말이죠.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1918년에 일어난 스페인 독감 역시 이처럼 돼지의 몸에서 변형된 조류독감이 인체에 감염된 경우라고 말합니다. 이들의 주장은 많은 공감을 얻어냈지만, 돼지와는 상관없는 바이러스들에 의해 조류독감에 감염된 환자들도 있어서, 아직까지는 조류독감의 인체 감염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경로는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어쨌듯 조류독감에 감염되면 이 바이러스를 이전에 접해보지 못했던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만은 변치 않습니다.

메디컬 인베스티게이션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우연한 기회에 오래 전에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던 스페인 독감이 다시 발생했고, 이로 인해 마을 주민들이 죽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이 치명적인 질환이 발생한 마을이 외부와 고립된 곳이었고, 이 감기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가지고 있던 할아버지의 피를 채취해서 면역 혈청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주사하여 질병을 퇴치하는 긍정적인 결말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처럼 긍정적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조류독감을 단지 새들만의 문제로 보지 않고, 이에 대해 더 많은 연구를 해야할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답니다.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 hari@hanmail.net

저작권자 2008.08.05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