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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이야기 : 금생부모

세덕 2012. 4. 13. 14:33

윤회이야기 : 금생부모



윤회이야기 : 금생부모

 


글: 소련


머릿말: 나와 다른 사람의 전생에 대해서는 좀 썼는데 부모님 간의 연분은 이전에는 수수께끼였다. 최근 며칠 전 나는 그들 전세의 연분에 대해 알게 되었다. 당연히 그들과의 연분은 일생에 그치지 않을 것이나 지금 나로서는 그렇게 많이 알지 못한다.

 


우리 부모님의 대략적인 상황


우리 부모님은 모두 1950년대에 태어나셨다. 어린 시절 중공의 문화대혁명을 따라다니다 청춘과 학업의 시간을 허비하였다. 모친은 날 때부터 소아마비를 앓았고 나중에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가 좀 짧아졌으며 발육이 균형적이지 못해 길을 걸을 때 절뚝거리셨다. 그 때는 도시에서 사는 것이 매우 어려웠는데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20세 무렵 외할머니가 고향으로 내려 보냈다. 그곳에서 친척의 소개로 부친을 만나 20여 일만에 결혼했다. 결혼할 때 모친에게는 심한 간염이 있어 일을 할 수 없었다. 당시 부친의 가정은 농촌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온순하여 가까운 형제조차도 깔보았다.


모친과 부친이 결혼 한 후 외할머니 식구는 우리 집이 있는 농촌에 16,7년 동안 매년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보내주었고 봄, 가을이면 농사일을 도와주었다. 나중에 외할머니는 부모님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를 시내로 받아들여 주셨고 우리는 기본적으로 외할머니, 외삼촌과 함께 살았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많은 애를 썼고 고생을 많이 하였다. 모친은 남자 같은 성격에 매우 주도면밀하고 노력을 많이 했다. 아버지는 매우 정직한 사람이셨으나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떤 일을 단정 지으면 그것이 설사 옳지 않더라도 고치기가 매우 어려웠다.


96년 나와 모친, 외할머니는 잇달아 법을 얻었는데 법을 얻은 후 우리의 신체는 많이 건강해졌고 각종 약물을 철저히 끊었다. 1999년 7월 이후 우리 일가족은 많은 박해를 받았는데 수련하지 않는 부친과 외숙부 일가는 이 때문에 많은 고통을 당했다. 특히 나이 많은 큰 외숙모는 부친의 이빨이 좋지 않아 단단한 것을 씹을 수 없었기에 많은 채소를 볶고 또 꺼냈다가 솥에 넣어 다시 볶아야 했다. 이렇게 하여 나와 모친이 유리실소 할 때 부친의 정신적인 압력을 덜어주었다. 부친과 외삼촌 일가의 이해와 동정이 있었기에 우리는 안심하고 대법제자가 할 일을 할 수 있었다. 이 기회를 빌어 부친과 외숙부, 숙모, 모친, 외할머니에게 안부를 전한다.


다른 이야기는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난세의 인연


그것은 지난 1920년대 푹푹 찌는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우리는 그때가 매우 어지러운 세상이었음을 잘 알고 있다. 각종 군벌(軍閥)과 지방 세력의 혼전이 진행 중이었고 민중들은 도처에서 아침에 있던 사람이 저녁이면 없어지기도 하는 지경이었다.


강남에서 방직과 자수로 유명한 도시 소주(蘇州)에 비단 가게를 하는 동(董) 선생이 있었는데 큰 가게를 열어 20여 명을 고용하고 있었다. 피고용인 중 30여 세 가량의 젊은이가 있었는데 매우 영리하여 동 사장은 그에게 회계를 맡겼다. 한번은 어느 날 저녁, 동 사장이 일이 있어 나갔는데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아 이 비단가게는 문을 닫게 되었다. 이 때 먼 곳에서 마적들이 찾아와 다짜고짜 빼앗아가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일반적인 강도처럼 살인하지 않고 사람을 묶고 입은 천으로 틀어막아 반항하지 않으면 죽이지 않았다. 하지만 반항하는 사람이 있으면 죽였다.


나중에 붉은 얼굴을 한 거한이 큰 소리를 질렀다. “제군들 모두 뛰어!” 그리고 이 때 도와준 사람은 곧 사라져 종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상가가 털리는 것이 흔한 일이라 지방 관아에서도 관여하지 않았다. 그 강도들이 떠나간 이후 사람들은 밧줄을 겨우 풀고 한참 움직인 후 함께 상의하기를, 각기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만 못하다. 동 사장이 돌아와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어쩌지? 그래서 각자 물건을 수습하고 비단가게에 남은 것 중 가치 있는 것을 다 쓸어가 버렸다. 이때 회계를 보던 그 젊은이는 마치 공교롭게도 설사로 배가 아파 그가 평소에 쓰던 주판 이외에 다른 것은 별로 가지지 못한 채 떠나갔다. 하지만 동 사장이 일을 끝내고 돌아와 보니 아무것도 없는지라 눈앞이 깜깜해져 그만 목을 매고 죽어버렸다 .


이 젊은이가 비틀거리며 소주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나갔을 때 날씨가 매우 더웠고 설사가 매우 심해 현기증이 나서 길가에 쓰러졌는데 이 때 주판이 땅에 떨어졌다. 바로 그때 한패의 인마(人馬)행렬이 왔는데 그 두목이 바로 그 홍면 대한이었다. 말이 가까이 왔을 때 주판을 보고는 말에서 내려 이 젊은이의 얼굴을 자세히 보더니 수하에게 말하길, “우리는 마침 장부를 관리할 사람이 부족한데 그를 데리고 가서 살린 후 장부관리를 맡기자. 종일 돈을 안 써도 되고 나는 숫자도 모르니.” 그래서 이 젊은이는 이 마적 떼를 따라 강도 생활을 시작했고 나중에는 그 홍면 대한과 의기투합하여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또 그는 그들이 일반 강도가 아니라 부자를 죽여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려는 뜻을 가진 것도 알았다. 하지만 어쨌든 사람을 상하게 하고 물건을 빼앗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었다. 한번은 그 홍면 대한이 삼십여 명을 데리고 약탈을 나갔는데 그 부자 집주인에게는 매우 충성스럽고 지기 싫어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홍면 대한은 그들과 싸우기 시작했는데 원래는 칼로 그들의 다리를 약간 찔러 겁을 주려고 했지만 그들은 불복하며 목숨을 걸고 싸워 최후에 홍면 대한은 두 사람의 다리를 잘랐다.... 나중에 그들은 끊임없이 국민당과 각지의 군벌과 충돌하여 손실은 점점 더 엄중해졌다.


한번은 그들이 겨우 십여 명만 남아 한 주점에서 술을 마실 때 군벌에게 포위되어 대부분 피살당했다. 단지 그 홍면 대한과 젊은이만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하였지만 전신에 중상을 입었다. 어느 농가의 움집으로 뛰어들었을 때 이미 살 가망이 없었다. 그 젊은이는 입을 열어 “형님, 몇 년 전 제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만약 내생이 있다면 형님과 다시 함께 하겠습니다.” 홍면 대한은 중얼거리면서 “내생이라, 내생에 내가 너를 다시 돌봐 이번 생의 죄업을 치르겠다...” 이때 원래 청명하던 하늘에서 돌연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더니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렸다.


이렇게 하여 금생에 그 홍면 대한은 나의 모친으로 전생했고 그 똑똑한 젊은이는 나의 부친으로 전생했다. 여기서 설명해야 할 것은 모친은 전생에 지은 업력으로 인해 날 때부터 다리에 병이 있었으며 수련하기 전에 많은 병을 앓았다. 또 비록 모친이 고생을 겪고 유능했지만 얻는 것이 많지 않아 하늘은 늘 그녀를 놀리는 것 같았다. 부친은 전생에서는 총명했으나 필경 강도와 한 패인데다 사장을 버렸고 비단가게의 물건을 가지고 도망갔으므로 불의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번 생에 그는 별로 똑똑하지 못했고 집은 늘 도둑을 맞았다.


세간의 어떤 일도 우연한 것은 없으며 모두 원인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잘 모르는 사람은 늘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한다. 하지만 이런 인과를 명백히 알면 다시는 하늘과 사람을 원망하지 않게 되며 다시는 고의적으로 불의한 일을 하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