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봉선(여,54세) / 서울 관악도장 / 도기 138년 8월 31일 입도 저는 도를 찾기 위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어떤 종교이든 첫 조상을 안 모시거나 혹은 어머니 하느님을 모르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져왔습니다. 증산도 도장에서 상제님과 함께 국조삼신과 어머니하나님까지 모셔진 신단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아! 여기로구나’하고 확신하였습니다. 77일간의 야산 기도 먼저 진표 대성사님의 구도정신과 많은 노고에 깊은 존경심을 표하며 고개 숙여 절합니다. 저는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나 어릴 때는 부산에서 이사가 살다가 1983년에 서울로 이사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제가 30세 되든 해, 그러니까 24년 전, 1985년의 일입니다. 한 철학원을 찾아갔는데 선생님이 주역과 명리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전에도 그런 말을 몇번 들었던 터라 마음을 결정해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 2개월쯤 지나자 선생님 말씀이, 이 세상이 이대로 가는 게 아니고 사람들이 거의 다 죽고 새로운 왕이 나와서 인류 역사가 다시 시작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산에 가서 일주일 정도 기도할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섯살 난 아들을 맡기기 위해 언니 식구를 저희 집에 들어와 같이 살게 한 후, 모든 준비를 해서 산에 가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12시간 철야기도, 6시간은 관세음보살주력, 6시간은 옥황상제 주력…. 기도하는 앞, 단에는 촛불이 있지만 그 외에는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눈앞의 반딧불만 바라보며 온갖 별의별 시험을 다 겪었지만 저는 오직 하늘에 목숨을 맡기고 기도를 해나갔습니다. 그렇게 7일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후 장마기에 들어갔는데, 몇십 년 만에 유난히 비도 많이 오고 긴 장마철을 겪었습니다. 5월에 시작한 기도가 6월 지나 어느덧 7월 말경에 가까웠습니다. 7일을 기약하고 시작한 것이 어언 77일에 이르렀습니다. 그야말로 77일간의 사투였습니다. 제가 기도하는 동안, 그 자리에 사람이라고는 단 한 사람도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제 몸은 피골이 상접하여 뼈만 남았더랬습니다. 다만 정신과 눈만 살아 반짝거렸습니다.‘ 이왕 작정한 김에 죽음을 무릅쓰고 끝까지 해보자’하고 버텼는데 장마비가 며칠을 계속 퍼붓는 바람에 텐트가 내려앉아 곧 떠내려갈 것 같았습니다. 그때 갑자기 정신이 깨면서‘저 높은 절벽에서 돌이라도 떨어지면 어쩌나!’하는 생각에 집에 있는 다섯살 난 아들이 걱정되고 보고 싶은 마음에 갑자기 하산 결정을 내렸습니다. 짐을 챙기는데 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허둥지둥 챙겨서 등에는 배낭, 양손에는 가방과 짐을 들고 뒤에서 보면 사람은 보이지 않고 짐만 보였을 정도였습니다. 내려오는 길이 얼마간 조그만 바위들이 가득찬 길이었는데, 이끼가 낀데다 비가 오니까 미끌미끌 하고 바위 속 구멍마다 녹색 구렁이들이 득실거렸습니다. 기어기어 내려오면서‘이를 앙다물어야 산다. 그래야 아들을 본다’는 마음을 먹고,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시야가 흐린 장대비 속을 지친 몸을 이끌고 하산했습니다. 중생을 구제해야 한다는 생각에 얼마 후 중생을 구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제게 강하게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제 명의로 된 전 재산을 팔아 조계종 스님이 창건한 절 하나를 샀습니다. 도통하신 스님도 운영하기 힘들다는 절을 말입니다. 그 후 절을 운영하기 위해 공부도 하러 다니고, 한국 불교통신대학에 입학해 불교의식도 배우고 경전도 공부하며 외웠습니다. 그러던 중 대순진리회에 입도를 했습니다. ‘옥황상제님’이라는 말에 솔깃하여 입도를 하고, 우리 절에 오는 신도들을 거기 데려가고 또 전부터 알고 있던 스님도 입도시켰습니다. 비교종교학을 하신 분이었는데 공부도 많이 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대순진리회에 회의를 느끼고 출입을 중단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종교를 찾아다녔습니다. 몇년 후 길을 가다가 우연히 제가 대순진리회에 입도시킨 그 스님을 만났는데, 대순진리회에 계속 다니면서 탁발승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가슴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스님께 식사대접을 하고, 지난 얘기들을 하면서‘이 사람이 나 때문에 이렇게 됐구나, 차마 대순진리회는 진짜 상제님이 오시는 데가 아니다’라는 말을 못하고 한없는 죄의식 속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또 다른 종교에서 저는 어머니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기도하면서 어머님의 마음을 느끼며 얼마나 가슴아파하고 울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곳에 오랫동안 마음을 두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불교에 전념했습니다. 마음은 항상 탐진치 삼독을 없애야 한다, 기독교에서도 시기 질투 혈기 교만 오만을 없애야 한다고 하듯 인격완성, 육바라밀, 대승불교, 팔정도 등 속세에서 지키기 힘든 계율들을 지키며 살려고 무던히도 애쓰며 살았습니다. 항상 제 머리와 마음 속에는 하늘 부모님, 관세음보살, 인류의 첫 조상 삼신, 그리고 제 조상님이 계셨습니다. 저는 41세에 삼일 밤낮을 지새우며 졸업 논문을 써서 10년 만에 불교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제 생각에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도를 통하는 것입니다.‘ 인격을 완성해서 도를 이뤄야 다시는 윤회하지 않고 인간으로 오지 않는다’는 생각을 늘 갖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여건과 상황이 점점 힘들어져만 갔습니다. 재산은 하나둘씩 날아 가고, 건물 하나 잘못 사는 바람에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이제는 그야말로 먹고 살기에 급급해 졌습니다. 조상님의 응감을 실감하며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제가 일하는 곳 같은 층에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이 자기 사무실에 놀러오라 해서 우연히 사무실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선생님이 저를 보고‘역학을 공부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안된다. 태을주는 구축병마주요, 태을천 상원군님은 모든 인류의 도의 뿌리이다. 조상님 천도식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증산도가 맞다’고 하시며『개벽을 대비하라』라는 책을 전해주셨고‘꼭 증산도에 들어가서 조상 천도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교통비를 주기에, 저는 그 돈으로 초와 향을 사서 2년 가까이 가슴 저미도록 지극한 마음으로 태을주 주문을 외웠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마침내 고대하고 고대하던 증산도 도장을 찾아갔습니다. 도장에 들어서는 순간, 온몸에 신비스런 전율을 느끼면서 눈물이 팍 솟구쳤습니다.‘ 아! 여기구나!’하는 느낌에 확신이 왔습니다. 성전을 들어가서 어진을 뵈었습니다. 제가 그토록 찾던 상제님과 어머니하나님, 그리고 환인천제, 환웅천황, 단군왕검을 다 모셔놓았고 게다가 조상님 신단까지 모셔져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여기가 맞구나! 이제 정~말 찾았구나!’하고 안도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제까지 품어왔던 의문이 싹~ 다 풀리는 것 같고, 제 마음 속의 한이 풀이 풀리듯 모든 근심이 사라져 버리면서 속이 후련하고 시원했습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는, 어떤 종교이든 옥황상제님과 환인 환웅 단군의 조상 삼신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확신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또 지천태 세상이 열리는데 어머니하나님을 모르면 안된다는 생각이 늘 간직되어 있었습니다. 얼마 후 저는 증산도 도문에 입문하는 식을 올렸습니다. 다른 성도님들이 조상 천도치성을 올리는 것을 보면 지금도 그렇게 눈물이 쏟아질 수 가 없습니다. 불교 신앙을 할 때는 좀처럼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반야심경에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듣고 보고 느끼고 맛보고 냄새맡고 촉감 감각 등 모든 것을 없애고자 하니 감정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한 20년 동안 울어본 적이 없습니다. 소승불교는 부모도 자식도 다 버리고 자기 혼자 도통하려고 식구들 마음을 산산히 찢어놓고 산속으로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보면 불교인들의 신앙심은 보통이 아닙니다. 부처님을 깊이 믿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곳에서 조상님의 응감이 없었습니다. 저는 입문 후 10개월 만에 입도를 하였습니다. 구도자가 속세에 살면서 화식하고 수도하여 체질을 변화시켜 도통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렇기에 대도통을 받으려면 신명의 도움 없이는, 또 때가 되기 전에는 어렵다는 것을 여러분도 알 것입니다. 증산 상제님, 태모 고수부님, 그리고 태사부님, 사부님, 조상 선령님이시여! 그동안 얼마나 수고로우셨으며, 철모르고 죄짓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내려다 보시면서 얼마나 가슴아파 하셨습니까? 크신 은혜에 보은하려면, 오직 상제님의 일꾼이 되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일도 해야 하고, 도장의 일에 봉사도 해야 하고, 포덕도 빨리 해야 하고, 마음이 참으로 급하기만 합니다. 천지일월 부모님과 조상님께서 이 가련한 여인에게 큰 은혜를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증산도 본부, 월간개벽 2008.11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