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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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는./증산도 입도 수기

잠자고 있는 영적, 진리적 본능을 깨우라

세덕 2012. 5. 11. 14:12

잠자고 있는 영적, 진리적 본능을 깨우라!




 
강지영 _ 독후감 4위 입선자

 
 목적도 목표도 없이 비행했던 삶
 모두들 내게, 이제 그만 정신을 차리라고 했다. 삶의 주위를 서성거리는 듯한 나에게, 너도 이제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한번 살아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충고했다.
 
 나는 목적도 도착점도 없이 발사된 로켓처럼 삶을 비행했다. 도착점을 모르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누구도 비행의 목적이나 종착점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다들 즐겁게 살아가는 듯이 보였다. 그들은 비행의 속도감에 매료되어 그저 비행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듯했다. 로켓의 발사 목적과 완수해야 할 목표에 대해서는 잊은 채, 빠른 고속 비행 자체를 비행의 목적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빠른 비행 때문에 어지럽고 구토가 났다.
 
 비행 여정 중의 하나인 대학 생활을 하면서도 학과 공부보다 더 관심 있었던 부분이 삶의 목적과 방향을 찾는 것이었다. 삶의 목적이 결여된 삶. 그냥 살아지는 것. 그런 일상에 대한 혐오가 점점 내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만들고 힘들게 했다. 사람들은 방법을 마치 목적처럼 믿고 사는 것 같았다. 어떠한 직업을 갖겠다는 것. 요즘 대학생들의 모든 관심사이기도 하고, 삶의 목표와 목적이기도 하다. 과연 직업이 삶의 목표가 될 수 있을까? 그건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에 지나지 않을까? 삶을 사는 여러 가지 방법 중의 하나를 우리는 마치 삶의 목표처럼 여긴 건 아닐까.
 
 자신이 살아온 잡다한 방법들의 총합이 한 사람의 일생이 되고, 그 속에서 목표는 상실돼 버리거나 적당히 끼워 맞춰진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목표가 정립되어야 방향이 정해지고 그 속에서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는 방향을 잃고 항상 무언가가 결여된 채 살아왔다. 그 결여된 부분을 채우려고 대학에 와서 환생이나 인생과 관련된 온갖 잡다한 책을 읽었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고 어떠한 확신도 생기지 않았다.
 
 이 책이 나를 매료시킨 이유는 아주 단순했고 당연했다. 그 이유는 책 서두에서 던져진 간결한 몇 개의 질문들이 내 삶의 모든 의문이었고, 알고 싶었던 유일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인생 중심의 화두’로 시작하는 『개벽 실제상황』
 『개벽 실제상황』 1부 1장 첫머리에서 언급된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왜 태어났는가?’ ‘인간은 과연 무엇을 위해 사는가?’ ‘저 광활한 우주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지만, 또 누구도 함부로 답변할 수 없는 질문이기에 민감한 ‘인생 중심의 화두’를 과감하게 들추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책 속에 흡입력 있게 빨려 들어갔다.
 
 먼저 1장은 ‘이 세상이 어떠한 틀을 가지고 변화해 가느냐’하는 우주론으로 시작하는데 ‘지금 현재, 우리는 어느 시대, 어느 시점에 살고 있는가’하는 것과 ‘우리의 시대적 사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시대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개벽’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1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점에 대해 깨닫게 하여 난해한 과제를 명쾌하게 풀어주었지만 동시에 험난한 개벽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을 함께 안겨준다. 그러나 우주의 질서가 바뀌는 대변혁인 개벽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충격적이지만 독자로 하여금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벽기에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 상제님의 구원 소식은 실로 놀랍고 경이로운 내용이다. 하루하루 바쁜 일상을 살면서도 ‘하나님께서 이 한반도에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136년 전에 인간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면 모든 분주한 일들을 손에서 놓고 깊은 숨을 쉬게 된다.
 
 각 장의 한 부분 한 부분마다 쉽게 넘길 수 없는 새롭고 놀라운 내용을 담아내고 있기에, 많은 분량의 책을 빠른 속도로 읽어 넘기기에는 너무나 심오한 무게감으로 책장을 넘기는 손길을 더디게 했다.
 
 
 세상사의 문제 진단과 해결책, 해원(解寃)
 총 5부로 구성된 각 부분은 1부로 다시 귀결된다. 결국 1부의 핵심내용들이 이어지는 내용들을 통해서 설득력을 가지게 되는 것인데, 2부에서는 한국이 개벽의 중심지가 되는 이유를 역사를 바탕으로 고증하고 있다. 3부에서 이 개벽기에 인류를 구원하시는 상제님과 이 세상 돌아가는 이정표인 상제님께서 짜놓으신 천지공사를 다루었으며 이 천지공사가 앞으로 개벽 실제상황을 통해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내용이 4부에서 전개가 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대 환란을 극복할 수 있는 구원의 방법들이 5부에 제시되면서 책이 마무리된다.
 
 특히 1부의 ‘선천 종교의 깨달음의 총 결론’ 부분은 대단히 흥미로웠다. 지금까지의 종교들의 핵심을 진단하고 ‘천상에는 환란기에 인간으로 강세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며 그를 만나야 새롭게 열리는 새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공통분모를 찾아낸 것은 누구도 융화하리라 생각지 못한 기독교와 불교의 통합점을 찾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절대자는 ‘한 명이기에 절대자’인 것처럼 각 종교가 주장하는 절대자가 각기 다른 대상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모순을 내포하는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와 불교의 화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가을개벽의 구원정신인 ‘해원’사상은 이를 통해 증산도의 ‘세상사의 문제 진단과 해결책’을 엿볼 수 있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든 문제는 원한으로부터 발생하며 이 원한을 해원함으로 인해서 상생의 세상이 열린다는 내용은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다. 내가 여러 번 교회 문을 두드리다가 결국 일요일에는 주말의 명화를 보기로 결심했던 이유가 바로 ‘기독교적인 문제의 진단과 해결책’에 대해서 회의를 가졌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중요시 한다. 물론 그 관계는 가장 긴밀하고도 중요한 관계일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치명적 맹점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인해서 문제 해결 과정의 객관성이 결여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 안에서 살며 무수한 인간관계를 맺고 산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바로 ‘인간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제로섬 게임처럼 한 사람의 득은 또 다른 사람의 실을 야기하는 것처럼 결국 모든 관계와 문제는 인간 대 인간의 문제이며 상대적인 것이다.
 
 기독교적 시각은 바로 그러한 관계적 측면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 받는 것만으로 죄와 용서의 문제를 단순화 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나의 죄로 고통을 받은 대상은 바로 직접적인 어떠한 ‘특정 인물’이기 때문이다. 친구를 때려서 다치게 해놓고 담임선생님께 용서만 받으면 된다는 식의 문제해결 방식은 납득하기 어렵다. 따라서 하나님의 용서와 동시에 수반되어야 할 것이 바로 원한 맺힌 자의 용서이다. 이러한 죄와 용서의 관계를 단순한 ‘하나님과 나’, 양자 간의 관계로 축소시킨 것은 인간 세상의 근본적 문제를 진단하지 못한 기독교의 치명적 맹점일 것이다.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안목을 제시하는 책
 『개벽 실제상황』은 역사, 철학, 종교를 집대성하고 있기 때문에 책의 내용이나 관점이 아주 거시적이고 포괄적이다. 여러 분야의 지적 열망에 대한 갈증을 충분히 채워주며, 삶을 살아가는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안목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독자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자신의 모든 주관, 가치관을 뒤흔들 만큼 다분히 충격적이다. 대부분의 독자는 그로 인해 가치관에 대한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책은 독자를 패닉 상태로 빠뜨리는 책이다. 끝까지 책을 읽고도 별다른 감흥이 없고 삶의 변화를 주지 못하는 책이란, 결국 무덤덤한 아침 밥상처럼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는 지루한 권태로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생각을 완전히 흔들어 놓고 독자를 패닉 상태로 만들 수 있는 책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책이 아닌가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개벽 실제상황』으로 인한 혼란과 충격은 ‘아노미를 극복하기 위한 한시적인 아노미’이기에 우리는 유쾌하게 이 혼란 속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찾은 나의 궤도
 살아오면서 나는 궤도에서 얼마간 멀어진 듯이 보였다. 사람들은 내게 한심한 듯 충고했으나 누구도 궤도를 알지 못했으니 아무도 내게 궤도를 알려주지 못했다. 다만 그들의 비행 방식에 동참하라고 권유할 뿐이었다. 나는 이제 그들에게 내가 찾은 궤도를 제시하고자 한다. 끝없이 헤매인 끝에 찾아낸 정상 궤도. 반드시 걸어야만 하는 길. 아주 오래 전부터 정해졌으나 알지 못했던 길. 나는 이제 그 길, 그 궤도권으로 진입하려 한다.
 
 역설적이지만,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이 나와 함께 이 ‘혼란’ 속으로, 이 ‘안정’된 궤도 속으로 과감하게 뛰어들기를 갈망한다.
 
 
 나는 숨이 가쁘다.『개벽 실제상황』!
 이 ‘실제상황’이 나를 두렵게 하고,
 전율케 하고, 가슴 뛰게 하고, 꿈꾸게 한다.
 이 모든 감정이 나를 휘몰아쳐 나는 오늘도 숨이 가쁘다.
 ‘개벽 실제상황’이라는 책 제목이 주는 긴박감은 어쩌면,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영적, 진리적 본능을 깨우라는 긴박한 채근이 아닐까?

ⓒ증산도 본부, 월간개벽 2006.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