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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공사]러일전쟁의 숨겨진 일화

세덕 2012. 5. 16. 14:22

[천지공사]러일전쟁의 숨겨진 일화



러일전쟁의 숨겨진 일화



*겨울에 상제님께서 병욱에게 물으시기를 “일본과 러시아가 국가의 허약함을 타서 서로 세력을 다투는데 조정에서는 당파가 나뉘어 혹은 일본과 친선하려 하며 혹은 러시아와 결탁하려 하니 너는 어떤 주의를 옳게 여기느냐?” 하시니 병욱이 대답하기를 “인종의 차별과 동서양의 구별이 있으니 일본과 친선하고 러시아를 멀리함이 옳겠습니다.” 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으니라. 이제 만일 서양사람의 세력을 물리치지 않으면 동양은 영원히 서양에 짓밟히게 되리라. 그러므로 서양 세력을 물리치고 동양을 붙잡음이 옳으니 이제 일본사람을 천지의 큰 일꾼으로 내세우리라.” 하시니라.

49일 동남풍 도수

상제님께서 전주에 계실 때 천지대신문(天地大神門)을 여시고 날마다 공사를 행하시며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제갈량의 전무후무한 재주라 함이 남병산(南屛山)에서 칠일칠야(七日七夜) 동안 동남풍을 빌어 적벽화전(赤壁火戰)에 성공함을 말함이 아니냐.” 하시고
이어 말씀하시기를 “이제 49일 동안 동남풍을 빌어 와야 하리라.” 하시고 성도 서너 명을 거느리고 남고산성(南固山城)으로 가시어 만경대(萬景臺)에서 공사를 행하실 때 장대에 종이를 달아 세우시고 글을 써서 축사하신 후에 성도들로 하여금 공사를 행하신 곳에 머무르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제갈량이 제단을 쌓고 7일 동안 밤낮으로 공을 들여 동남풍을 불렸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니라. 공들이는 동안에 일이 그릇되어 버리면 어찌하겠느냐.” 하시니라. 또 상제님께서 “너희들은 바람이 불거든 오라.” 하시고 남고사(南固寺)로 들어가시니 과연 조금 후에 동남풍이 크게 진동하거늘 성도들이 들어가서 아뢰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차길피흉(此吉彼凶)이로다.” 하시고 산성(山城)을 내려오시니라. 그후 상제님께서 49일 동안을 한 도수(度數)로 계속하여 동남풍을 불리시니 그 뒤로 러시아가 해륙전에 연속하여 패하니라. [道典5:27]


신도(神道)에서 도와준 러-일전쟁
-아끼야마 중장이 꿈에서 발틱함대의 항진 모습을 계시받다.

이 이야기는 당시 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주역이었던 아끼야마 중장의 꿈에 얽힌 유명한 비화이다. 당시 일본군은 러시아의 발틱 함대가 과연 대한해협을 지나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고맙지만 만일 태평양을 돌아서 쓰가루 해협이나 무네야 해협을 통과하여 우라지보스톡으로 들어가고 만다면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전쟁을 앞둔 아끼야마 중장의 심신의 긴장은 극도에 달해 있었다. 그런데 그는 뜻밖에도 해전을 앞두고 다음과 같은 꿈을 꾸게 된다.

“잊어버리지도 않습니다. 5월 24일 한밤중이었습니다. 너무나 피곤해서 저는 사관실로 가서 의자에 주저앉았습니다. 두 눈을 감고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에 저도 모르게 그만 잠이 들었는가 하는 순간, 갑자기 눈앞에 이런 장면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대한해협의 전경이 눈앞에 보이고 발틱 함대가 두 줄로 줄을 지어 천천히 오고 있는 것이 아주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었어요. 이젠 됐구나! 하는 순간 번득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영몽을 꾼 것은 이것으로 두 번째였으므로 저는 이것은 틀림없이 신의 계시라고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계획이 떠올랐어요. 결국 그 유명한 대해전이 벌어지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적의 함대 배열이 사흘 전에 꿈에서 본 것과 조금도 다른 데가 없었습니다. 막상 전쟁 보고서를 쓰려고 붓을 들었을 때는 자연히 ‘천우신조(天佑神助)에 의하여…’하고 쓰는 도리밖에 없었습니다." (『심령과학』82∼86쪽, 서음출판사, 1994)


러·일전쟁은 제1차 세계대전의 발판을 마련

19세기말은 서양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사상 유래 없는 세계 점령과 영토분할이 이루어져 아시아, 아프리카의 대부분이 식민지 혹은 종속국이 되는 폭력과 야만의 시대였다.
그리고 20세기는 인류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시기였다는 영국의 노벨상 수상작가 윌리엄 골딩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다른 어느 시대보다 약육강식의 시대 그 자체였으며 한마디로 전쟁의 세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극에 다다른 식민제국주의는 결국은 열강끼리의 충돌을 낳았고, 그 결과 세계를 움직이는 주도권이 이동했다. 즉 대규모 전쟁의 발발은 새로운 강자가 등장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인류문명사의 이면에는 항상 동전의 앞뒤처럼 신도세계(神道世界)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인간사 중심의 기존 문명사는 신도세계의 현실적 개입이 모두 빠져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역사 자체는 반쪽에 불과할 뿐이다.
상제님은 선천의 말세를 당하여
“천하대세가 큰 종기를 앓음과 같으니, 내가 이제 그 종기를 파(破)하였노라.”(道典 2:21:8) 하시고 선천 상극질서의 역사모델인 포악한 제국주의의 폭력문화를 다스려 이를 상생의 새질서로 전환되도록 묵은 기운을 뿌리뽑는 개벽기의 대전쟁공사를 집행하셨다. 근대와 현대의 분기점은 세계대전으로 인한 서구제국주의의 몰락으로부터 볼 수 있다. 제국주의의 몰락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시대상을 만들어냈다.
그 20세기의 서막을 연 전쟁이 다름 아닌
러-일전쟁(러일전쟁은 동학혁명으로 인한 청일전쟁이 그 단초였고, 러시아는 상제님께서 내 군사라고 이미 말하신 바 있다)이었다. 전쟁의 양상과 규모 면에서 1, 2차 세계대전에 견줄 수는 없지만 그 내포된 의미가 적지 않음을, 증산 상제님께서 집행하신 천지공사를 통해, 신도세계에서 펼쳐지는 역사와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전쟁의 와중에 영국의 지원을 받아 철강, 조선, 철도 등 중공업 중심으로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조선이라는 식민지를 발판으로 열강의 대열에 진입하였다. 반면 참패한 러시아는 단순히 전쟁만 진 것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갖고 있던 식민지와 잇권을 상실하여 극심한 경제난에 몰리게 되었다.
이에 따라 사회주의 혁명세력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불안을 느낀 러시아 차르정부는 새로운 돌파구로 전쟁을 선택하게 된다. 국민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고 정적을 제거하여 체제를 유지하는 확실한 수단은 역시 전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 놓여 있었던 러시아의 관심은 온통 발칸반도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당시 러시아의 상황은 보이지 않는 신도세계의 물샐 틈 없는 도수에 의해 진전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러시아의 참패는 제1차 세계대전의 불씨에 불을 붙인 것이었다. 러시아가 승리하였다면 굳이 발칸반도에 집착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고 세계전쟁으로 비화(飛火)되지 않았을 것이다.


서양의 인종차별과 잔학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노예무역

노예무역을 통하여 영국은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 더욱이 17세기 후반이래 북아메리카 남부의 담배·쌀·미곡(米穀)·인디고 생산의 대농장에서도 흑인노예를 사용하여, 아메리카 독립 당시 그 수효는 50만 명에 이르렀다.
1771년에는 영국의 노예무역선의 총수가 190척이나 되었고, 연간 4만 7000명을 운반하여 이윤은 30∼100%에 이르렀다. 그 반면 100t의 노예선에 400명 이상 실어 항해 중에 6분의 1이, 길들이는 동안에 3분의 1이 죽었다고 하며, 중간 항로에서의 잔혹하고 비참한 실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유럽의 상인에 의해서 신세계에 운송된 흑인노예는 300년 동안에 1500만 명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20세기는 전쟁무기 발달의 한 세기

"장차 세계 각국이 있는 재주를 다 내며 싸우리니 재주가 가장 뛰어난 나라가 상등국이 되리라." (道典 7:22:1)

20세기 들어 대전쟁이 빈발하면서 무기도 크게 발달했다. 산업화와 기술의 발달, 그리고 총력전 양상에 힘입어 무기의 살상력과 물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무기의 발달로 상대방을 해치는 일이 자기 눈에 보이지 않게 되자 살상력은 더욱 증가했다.
전쟁이 총칼로 적을 살상하는 단계에서 스위치를 누르거나 레버를 당기는 수준으로 변하면서 상대방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단순한 공격목표일 뿐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탱크와 항공기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 당시 제 기능을 발휘한 것은 잠수함뿐이었다. 탱크와 항공기가 제대로 사용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러서였다.
화학무기인 독가스도 제1차 세계대전 때 처음 등장해 전쟁의 비인간화를 부추겨 세계를 경악시켰다. 국제사회는 화학무기의 사용금지를 촉구했지만 이 무기는 1980년 이란·이라크전에서도 쓰이는 등 여전히 「약소국의 핵무기」로 불리며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20세기 전쟁이 늘 첨단무기만 개발한 것은 아니었다. 러일전쟁 때 가장 각광을 받은 무기는 총과 함께 철조망, 삽이었다. 전쟁의 양상이 장기전 및 참호전으로 바뀌자 철조망과 삽은 필수불가결한 장비로 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무기 개발을 가장 촉진시킨 전쟁이었다. 미사일이라는 무기가 막바지에 개발됐고, 항공모함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후반 전쟁의 양상을 바꿔놓은 무기를 꼽으라면 그것은 당연히 핵무기가 될 수밖에 없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처음 투하된 핵무기는 그 이후 너무나 막강한 살상력 때문에 실전투입 가능한 무기라기보다는 막강한 전쟁억지 수단 또는 정치수단으로서의 역할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연유로 각국은 다시 재래식 무기의 성능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항공기와 잠수함, 함정 등 재래식 무기들은 고도의 전자장비를 갖추게 됐다. 정보수집 수단 또한 고도로 발달하게 됐다.
20세기 막판 걸프전이나 코소보사태에서는 이런 무기들이 주역으로 등장했다. (1999.7.12,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