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전생과 윤회] 업보는 스스로가 극복해야 한다. 본문

수행과 명상/영혼의 세계

[전생과 윤회] 업보는 스스로가 극복해야 한다.

세덕 2012. 6. 13. 15:13

[전생과 윤회] 업보는 스스로가 극복해야 한다.



성숙을 향한 우리 영혼의 간절한 바램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나의 부모형제, 부부, 친구, 그리고 직장동료들. 나와 가까운 이들은 전생에서부터 보통의 인연으로 이렇게 만난 것이 아닌 것이다.

각각의 영혼은 자신의 성장을 도와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부모와 환경을 찾아 새롭게 태어난다. 우리가 선택해서 태어난 환경이기에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다고 부모님을 원망할 필요도 없다. 내가 앓고 있는 병이나 내가 당한 사고들도 알고 보면 자신의 카르마(업보)에 의해 생겨난 일들이다.

*한 성도가 여쭈기를 “매양 병자를 보시면 차마 그 아픔을 보지 못하시어 몸소 대속하시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모든 병은 척이 있어 생기고 수(數)가 있어 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척을 풀어 주지 않으면 척으로 돌아가고 수(數)를 제거하여 주지 않으면 화액(禍厄)으로 돌아가나니,

내가 병고(病苦)를 대신 앓게 되면 척은 스스로 풀리고 수는 자연히 소멸되느니라. 내가 천하의 모든 병을 대속하리니 그러므로 후천에는 억조창생에게 병고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도전 9:27)

그리고 물질과 명예를 누리고 만족하며 살아가다가 허탈감에 빠질 영혼보다는, 주어진 환경의 제약 속에서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극복하며 살아가는 것이 보다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물론 모든 질병, 사건, 사고를 전부 자신의 업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가지 일에도 수많은 요인들이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전생과 연관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조상과 부모가 짓고 행한 업보와도 매우 중요한 영향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그러하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생의 목적, 삶의 큰 틀은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진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카르마 때문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과 관계되는 사람이 반드시 생기기는 하지만, 카르마가 주어진 대로 움직여야만 하는 철칙이 있는 것이 아니다.

카르마는 본질적으로는 어떠한 일의 동기에 해당하지만, 이를 행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다. 스스로가 설정해 놓은 자신의 카르마를 극복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극복하지 못할 경우 다시 카르마가 반복되기도 한다. 그리고 어찌되었건 인간은 결국은 자기 자신의 의지로써 카르마를 극복하고 성숙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윤회는 대우주가 인간을 성숙시키기 위한 우주의 법도이다. 사람이 윤회를 한다는 사실만 인식한다고 해도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현생에서 인간은 다른 사람을 짓밟고, 남을 살상하고, 음해하고, 사기를 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하고 나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의 도서관에 그대로 기록되어 남아 있고, 언젠가는 거기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중간세에서 만난 영적 스승들은 우리가 희생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고, 봉사하길 원하고, 남을 잘 되게 하길 원한다. 그런 삶의 행위를 통해 인간은 대우주가 원하는 성숙을 향해 보다 빨리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은 그가 행하는 대로 만들어지고, 운명도 그가 원하는 대로 정해진다. 윤회를 바르게 인식할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을 결코 아무렇게나 살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자신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가 지어야 함을 알게 되고, 우리의 삶과 생명의 진정한 의미와 사랑과 겸손을 깨닫게 된다.

성숙을 향한 우리 자신의 영혼의 간절한 바램을 현생에서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