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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을주 천지조화

서효사의 역사관,신지비사 서효사의 역사관,신지비사 우리는 ‘서효사 역사관’을 통해 무엇보다 삼한관경제로 다스린 단군조선 전체를 조명해 봐야 한다. 큰 안목을 갖고, 지나족의 기록과 비교해 봐야 한다. 「서효사」 역사관은 후에 행촌杏村 이암李嵒이 쓴 『단군세기』와 조선 중종 임금 때의 찬수관撰修官(사관)을 지낸 행촌의 현손 이맥李陌이 쓴 『태백일사』를 통해 보다 명확하게 정리된다. 우리는 「서효사」를 통해 사마천이 『사기』에서 의도적으로 왜곡한 연나라 추장, 위만衛滿 이야기의 실체를 알 수 있다. 위만은 단군조선의 중앙 진조선 강역을 다스린 역사가 아니라, 삼한관경제의 서쪽 변방인, 기준왕이 다스리던 번조선 강역한 도적이다. 그런데 현 교과서에서는 번조선 말대의 역사를 전체 단군조선의 역사로 포장한 사마천..

환단고기가 전하는 「서효사」의 원문 환단고기가 전하는 「서효사」의 원문 『환단고기』가 전하는 「서효사」의 원문을 통해 어떤 부분을 조선 3대왕 태종이 ‘불경지설不經之說’로 판단했는지 살펴보자. 그 전에 『환단고기』 「단군세기」에 기록된 「서효사」의 집필 시기와 의도를 간략히 알아보자. 「서효사」는 6세 달문達門단군 때인 단기 285년, 서기전 2049년에 제작되었으며, 달문 단군이 여러 제후국의 왕들과 함께 상춘常春의 구월산九月山에 모여 천제를 올릴 때 신지神誌 발리發理로 하여금 짓게 한 제천문이다. 『환단고기』가 전하는 「서효사」의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밝은 조선 땅과 삼신에 관해 전해 준다. 朝光先受地(조광선수지)에 三神赫世臨(삼신혁세림)이로다 아침 햇살 먼저 내려받는 이 ..

실록이 전하는 서효사 소각 사건 실록이 전하는 서효사 소각 사건 「서효사」 소각 사건의 핵심을 『조선왕조실록』 원문을 통해 살펴보자. 命史官金尙直(명사관김상직) 取忠州史庫書冊以進(취충주사고서책이진) … 1412년(명 영락永樂 10년) 사관史官 김상직金尙直에게 명하여 충주忠州 사고史庫의 서적을 가져다 바치게 하였는데 ... 且命曰(차명왈) 神秘集(신비집) 毋得披閱(무득피열) 而別封以進(이별봉이진) 「신비집神秘集」 은 펴 보지 못하게 하고 따로 봉하여 올리라. 上覽其集曰(상람기집왈) 此書所載(차서소재) 皆怪誕不經之說(개괴탄불경지설) 임금이 그 책을 보고 말하기를, “이 책에 실린 것은 모두 괴탄怪誕하고 불경不經한 설說이다.” 하고, 命代言柳思訥焚之(명대언유사눌분지) 其餘下春秋館藏之(기여하춘추관장지) 대언代言..

불태워진 서효사(신지비사), 잿더미가 된 역사의식 불태워진 서효사(신지비사), 잿더미가 된 역사의식 대한의 후손들은 고구려가 멸망당한 후 만주를 상실하고 한반도에 갇혔다. 고려 시대에는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에 굴욕을 당하기도 했고, 조선에 이르러서는 소중화를 자처할 지경까지 국력이 쇠잔해졌다. 이 와중에 실로 중차대한 일이 일어났다. 바로 태종太宗 이방원의 「서효사誓效詞」 소각 사건이다. 이번 달에는 지나족의 눈치를 보며 우리 스스로 태운 「서효사」에 관해 집중적으로 살펴볼까 한다. 태종은 왜 동방 조선의 역사서인 「서효사」를 불태웠을까? 불타 버린 「서효사」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을까? 「서효사」란 어떤 글인가? 「서효사誓效詞」는 ‘맹세할 서誓, 본받을 효效, 말씀 사詞’ 자로 문자적으로는 ‘하늘에..

단군조선 멸망의 이유 단군조선 멸망의 이유 단군조선은 신교의 삼신사상에 바탕을 둔 삼한관경제로 한민족의 고대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따라서 단군조선의 멸망 과정과 원인은 이와 관련된 사실에서 찾아야 합니다. 단군조선 멸망의 해답은 6세 달문단군 때 신지 발리가 지은 「서효사誓效詞」(일명 신지비사神誌秘詞)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서효사」의 핵심 내용인 신교의 삼신사상에 기초하여 성립된 삼한관경제(진한, 마한, 변한)를 시행하고, 삼경제도(소밀랑, 백아강, 안덕향)의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단군조선은 한민족 역사상 최대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이미 「서효사」에서 경계한 바와 같이 단군조선 말에 이르러 삼신사상이 쇠퇴하면서 삼한관경제가 와해되고, 단군조선도 종말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단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