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역사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중독(中毒), 왜독(倭毒), 양독(洋毒) 중 어느 것이 제일 심각합니까?
일본은 우리 역사를 어떻게 왜곡시켰습니까?
삼국유사의 ‘환국’(桓f)을 ‘환인’(桓因)으로 변조했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광개토대왕비 비문도 석회를 발라 변조했다고 하는데 …
단군이 정말 실존 인물입니까?
단군이 47분이나 된다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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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은 국왕을 뜻하는 관직명이지 고유명사가 아닙니다. 절대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마치 1대, 2대, 3대, … 이렇게 대통령이 여러 명 있듯, 단군도 여러 분이 계십니다. 1세 단군 왕검, 2세단군 부루, 3세 단군 가륵, …, 마지막 47세 단군 고열가, 이렇게 47분이 계셨죠. 몇 년 전 북한에서 평양 인근에서 단군릉을 찾았다고 떠들썩했지요. 그 후 고구려식으로 능을 성대하게 건축했는데, 북한에서는 이 능이 고조선을 개국하신 초대 단군 왕검의 능이라고 선전했습니다. 이 능은 단군릉이 아닌데, 북한에서 민족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다는 걸 내세우기 위해 단군릉으로 조작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런데 설사 단군릉이 맞다고 해도 초대 단군성조의 능으로 보기는 어렵고, 그 능은 5세 구을 단군의 능으로 추정됩니다. 『환단고기(桓檀古記)』를 보면, 당시에는 수도가 만주 송화강 부근 아사달인데 5세 구을 단군께서 남쪽 즉 한반도를 순시하시다가 병을 얻어 붕어하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지역이 바로 현재 북한에 남아있는 단군릉 근처이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과 『동사(東史)』,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숙종실록, 영조실록, 정조실록을 보면, 조선시대의 역대 임금들이 관료들을 보내어 이 능을 관리하게 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 |
한글이 과거에도 있었습니까?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것 아닙니까?
고조선 영토가 정말 이렇게 방대합니까? 너무 과장된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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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렸습니다. 마한(한반도), 진한(만주), 번한(발해연안)의 ‘삼한관경(三韓管境)’이라고 하지요. 단군께서는 진한을 통치하셨던 겁니다. 2천 년이 지나 삼한이 해체되고 만주, 요녕지역에서 대규모의 난민이 한반도로 이동합니다. 그리하여 한반도 남부에 새로 중삼한이 생기는데, 바로 이것이 중국문헌에 나오고 국사교과서에 나오는 삼한이지요. 전삼한의 영토는 중삼한보다 훨씬 넓죠. 이 사진은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물인 비파형 동검입니다. 예전에는 이 동검이 요녕지역에서만 발굴된다해서 요녕식 동검이라 불렀지요. 그런데 발굴이 진행되면서 한반도, 만주, 요녕, 하북성 일대까지 넓게 분포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가장 오래된 것은 만주, 요동반도 일대의 것이구요. 이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 중기의 유물이며 통치세력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다양한 형태로 만들 수도 있는데 굳이 이렇게 똑같이 만든 까닭은 고조선 중심지역에서 만들어 보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유물이 발굴되는 지역은 적어도 고조선 중엽까지의 영토로 볼 수 있는 것이죠. 이전에는 청동기를 썼냐구요? 썼습니다. 다만 합금기술이 떨어져서 순동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현재까지 고조선 영역에서 발굴된 가장 오래된 금속유물은 요녕성에서 발굴된 B.C.2000년경의 것으로 나타났지요. 발굴이 진행될수록 상한선은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한가지 더 말씀드린다면, 위만조선과 고조선은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위만조선은 중국의 괴뢰정권이고 고조선은 단군임금께서 통치하신 조선을 뜻합니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도 이것을 분명히 구별해 놓았습니다. 여하튼 단군성조님이 우리 역사의 뿌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외래종교에 빠져 제 뿌리를 잃어버린 한민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사람이란 제 조상이 있고 족속마다 제 뿌리가 있나니, 조선사람의 조상은 단군이요 여호와는 유대사람의 지방신이니라. (道典 5:10:7∼8)]] | |
단군조선 이전에도 우리 민족의 역사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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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입니다. 단군조선 이전에 배달국(倍達國)이 있었죠. 또 그 이전에는 환국(桓國)이 있었구요. 우리 역사의 원뿌리는 환국(桓國)입니다. 물론 당시 환국이나 배달국은 지금처럼 세금 걷고, 법 집행하고, 군대 징집하는 국가와는 성격이 다르겠지만, 『환단고기(桓檀古記)』 기록에 의하면 민족사의 원뿌리는 환국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걸 말씀드리면, 가끔 이렇게 묻는 분들이 있어요 ‘환국, 배달국을 국가단계로 볼 수 있냐? 그 때는 청동기도 없었는데 …’ 그러면 이렇게 대답하죠. ‘저기 중남미의 아즈텍과 잉카제국은 청동기를 만들지 못했지만, 엄연한 국가였습니다. 그와 반대로 청동기가 있었지만 국가 안 만든 민족도 수두룩해요. 철기문화까지 가졌던 히타이트는 국가를 안 세웠죠? 그냥 부족이었어요.’ 환국의 위치는 텐산 - 바이칼호 - 극동시베리아 일대인데, 고고학적으로는 신석기 시대의 시작과 관련이 있습니다. 『환단고기』에는 환국은 12개 나라로 되어 있었다고 해요. 이 가운데 수밀이국은 중동지역 고대문명을 일으킨 수메르가 아닌가 합니다. 고고학자들은 그 사람들은 백인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종이었다고 합니다. 또 쓰는 언어도 한국어와 대단히 유사하여, 단어도 비슷하고 교착어, 모음조화도 일어난다고 합니다. 또 발굴된 유물 가운데에는 씨름하는 모습의 향로가 있는데, 샅바 쥐고 왼씨름하는 모습이 고구려벽화에 나오는 것과 똑같다고 해요. 참, 재미있죠. 환국의 통치자이신 ‘환인’(桓仁) 역시 관직명입니다. 환(桓)은 ‘환하다’, 즉 광명정신을 담고 있어요.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광명을 숭상하여 백색을 숭상하고 흰옷을 즐겨 입었죠. 『환단고기』의 기록에 의하면, 환인은 7분이 계셨습니다. | |
왜 우리를 ‘배달민족’이라고 부르죠?
태극기의 팔괘를 처음 그으신 분은 누구입니까?
치우천황이란 분은 누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