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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역사에 대한 질문 본문

증산도는./증산도 일문일답

민족의 역사에 대한 질문

세덕 2012. 3. 2. 15:28

우리 나라 역사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가장 값진 유산은 뭐니뭐니 해도 역사입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는 이른바 삼독(三毒)에 의해 왜곡되어 있습니다. 삼독(三毒)이란 뭐냐. 중독(中毒), 왜독(倭毒), 양독(洋毒) 세 가지를 말하는 겁니다.
중독(中毒)이란 중국인 역사가들과 우리 나라의 존화사대주의자들에 의해 우리 역사가 왜곡된 것을 말합니다. 우리 역사를 우리민족의 주체정신에 입각해 기록하거나 해석하지 않고 중국인들 입장에서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중국인들은 우리 역사를 오랑캐 역사로 다루고, 국내의 사대주의자들은 중화를 사모하면서 우리 스스로를 오랑캐라고 하긴 좀 뭣하니까 ‘소중화(小中華)’, 즉 ‘작은 중화(中華)’라고 자처하고 우리 역사를 중국 역사의 아류로 취급하는 것이죠. 우리가 잘 아는 사마천의 『사기(史記)』로 대표되는 중국의 25사와 사대주의자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비롯한 조선시대 사서(史書)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왜독(倭毒)이란 일제 식민사학자들과 그들에게 부화뇌동한 얼빠진 친일매국노들에 의해 역사가 왜곡된 것을 말합니다. 그 잔당들은 현재도 우리 나라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주도하며 심각한 해독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양독(洋毒)이란 서구 실증주의 사관에 매몰되어 주체성을 상실한 학자들과 서구종교를 맹신하는 종교인들에 의해 행해진 역사왜곡을 말합니다.
박물관에 한번 가보세요. 엄연히 역사시대였던 고조선을 선사시대로 취급하고 있어요. 무슨 신석기시대니 청동기시대니 하면서 정작 있어야 할 고조선이란 국명은 아예 붙어있지도 않습니다. 또 일부 종교의 광신도들은 국조단군을 마귀 취급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얼마 전에 초등학교에 세워놓은 단군상의 목을 톱으로 베어버리기까지 했어요. 자기 자신들도 분명 단군의 자손이면서 말이죠. 참,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중독(中毒), 왜독(倭毒), 양독(洋毒) 중 어느 것이 제일 심각합니까?

 

 

일본은 우리 역사를 어떻게 왜곡시켰습니까?

 

 

삼국유사의 ‘환국’(桓f)을 ‘환인’(桓因)으로 변조했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광개토대왕비 비문도 석회를 발라 변조했다고 하는데 …


<광개토대왕비> 조작 사건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죠. 19세기말에 일본에서는 정한론(征韓論)이 대두되어, 일본은 조선침략의 전 단계로 우리 나라에 많은 스파이를 보냅니다. 1880년, 일본군 참모본부가 밀파한 군사스파이인 사꼬오 중위는 만주에서 광개토대왕비를 발견하고 그 내용 중, 신묘년과 경자년 기사를 변조시킨 뒤 6년 후 세상에 공개했습니다(『회여록』 제5집). 이걸 가지고 일본(왜)이 임나를 통해 한반도를 지배했다고 우기는 거예요. 얼마 전 일본 극우세력들이 이 내용을 그들의 역사교과서에 그대로 집어넣었습니다.
그런데 이 광개토대왕비가 날조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17년 전에 들통이 났었지요. 중국인 왕건군(王健群)의 『호태왕비연구(好太王碑硏究)』 탁본에는 이전에 공개한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 확인되었습니다. 사꼬오가 발라놓은 석회가 떨어져 나가, 사꼬오가 倭寇大潰(왜구대궤: 고구려군에게 왜구가 궤멸되었다)를 倭滿倭潰(왜만왜궤: 왜가 신라성에 가득하고 왜가 신라를 궤멸했다)로 조작한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입니다. 최근에 학자들은 소위 임나일본부라는 것은 군사기구가 아니라 그저 외교기구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2000.12.16, KBS 역사스페셜 『추적! 임나일본부의 정체』 참고).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지금도 틈만 나면 망언을 일삼고 이 나라를 집어삼킬 꿈을 꾸고 있어요. 조선은 역사적으로 7차례에 걸쳐 일본에 문물을 전해준 스승국입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배은망덕한 일본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 조선은 원래 일본을 지도하던 선생국이었나니, 배은망덕(背恩忘德)은 신도(神道)에서 허락하지 않으므로, 저희들에게 일시의 영유(領有)는 될지언정 영원히 영유하지는 못하리라. (道典 5:90:1∼2)]]

 

 

단군이 정말 실존 인물입니까?

 

 

단군이 47분이나 된다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단군은 국왕을 뜻하는 관직명이지 고유명사가 아닙니다. 절대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마치 1대, 2대, 3대, … 이렇게 대통령이 여러 명 있듯, 단군도 여러 분이 계십니다. 1세 단군 왕검, 2세단군 부루, 3세 단군 가륵, …, 마지막 47세 단군 고열가, 이렇게 47분이 계셨죠.
몇 년 전 북한에서 평양 인근에서 단군릉을 찾았다고 떠들썩했지요. 그 후 고구려식으로 능을 성대하게 건축했는데, 북한에서는 이 능이 고조선을 개국하신 초대 단군 왕검의 능이라고 선전했습니다. 이 능은 단군릉이 아닌데, 북한에서 민족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다는 걸 내세우기 위해 단군릉으로 조작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런데 설사 단군릉이 맞다고 해도 초대 단군성조의 능으로 보기는 어렵고, 그 능은 5세 구을 단군의 능으로 추정됩니다. 『환단고기(桓檀古記)』를 보면, 당시에는 수도가 만주 송화강 부근 아사달인데 5세 구을 단군께서 남쪽 즉 한반도를 순시하시다가 병을 얻어 붕어하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지역이 바로 현재 북한에 남아있는 단군릉 근처이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과 『동사(東史)』,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숙종실록, 영조실록, 정조실록을 보면, 조선시대의 역대 임금들이 관료들을 보내어 이 능을 관리하게 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한글이 과거에도 있었습니까?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것 아닙니까?

 

 

고조선 영토가 정말 이렇게 방대합니까? 너무 과장된 거 아닌가요?


당시에는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렸습니다. 마한(한반도), 진한(만주), 번한(발해연안)의 ‘삼한관경(三韓管境)’이라고 하지요. 단군께서는 진한을 통치하셨던 겁니다. 2천 년이 지나 삼한이 해체되고 만주, 요녕지역에서 대규모의 난민이 한반도로 이동합니다. 그리하여 한반도 남부에 새로 중삼한이 생기는데, 바로 이것이 중국문헌에 나오고 국사교과서에 나오는 삼한이지요. 전삼한의 영토는 중삼한보다 훨씬 넓죠.
이 사진은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물인 비파형 동검입니다. 예전에는 이 동검이 요녕지역에서만 발굴된다해서 요녕식 동검이라 불렀지요. 그런데 발굴이 진행되면서 한반도, 만주, 요녕, 하북성 일대까지 넓게 분포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가장 오래된 것은 만주, 요동반도 일대의 것이구요.
이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 중기의 유물이며 통치세력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다양한 형태로 만들 수도 있는데 굳이 이렇게 똑같이 만든 까닭은 고조선 중심지역에서 만들어 보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유물이 발굴되는 지역은 적어도 고조선 중엽까지의 영토로 볼 수 있는 것이죠.
이전에는 청동기를 썼냐구요? 썼습니다. 다만 합금기술이 떨어져서 순동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현재까지 고조선 영역에서 발굴된 가장 오래된 금속유물은 요녕성에서 발굴된 B.C.2000년경의 것으로 나타났지요. 발굴이 진행될수록 상한선은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한가지 더 말씀드린다면, 위만조선과 고조선은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위만조선은 중국의 괴뢰정권이고 고조선은 단군임금께서 통치하신 조선을 뜻합니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도 이것을 분명히 구별해 놓았습니다.
여하튼 단군성조님이 우리 역사의 뿌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외래종교에 빠져 제 뿌리를 잃어버린 한민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사람이란 제 조상이 있고 족속마다 제 뿌리가 있나니, 조선사람의 조상은 단군이요 여호와는 유대사람의 지방신이니라. (道典 5:10:7∼8)]]

 

 

단군조선 이전에도 우리 민족의 역사가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단군조선 이전에 배달국(倍達國)이 있었죠. 또 그 이전에는 환국(桓國)이 있었구요. 우리 역사의 원뿌리는 환국(桓國)입니다. 물론 당시 환국이나 배달국은 지금처럼 세금 걷고, 법 집행하고, 군대 징집하는 국가와는 성격이 다르겠지만, 『환단고기(桓檀古記)』 기록에 의하면 민족사의 원뿌리는 환국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걸 말씀드리면, 가끔 이렇게 묻는 분들이 있어요 ‘환국, 배달국을 국가단계로 볼 수 있냐? 그 때는 청동기도 없었는데 …’ 그러면 이렇게 대답하죠. ‘저기 중남미의 아즈텍과 잉카제국은 청동기를 만들지 못했지만, 엄연한 국가였습니다. 그와 반대로 청동기가 있었지만 국가 안 만든 민족도 수두룩해요. 철기문화까지 가졌던 히타이트는 국가를 안 세웠죠? 그냥 부족이었어요.’
환국의 위치는 텐산 - 바이칼호 - 극동시베리아 일대인데, 고고학적으로는 신석기 시대의 시작과 관련이 있습니다. 『환단고기』에는 환국은 12개 나라로 되어 있었다고 해요. 이 가운데 수밀이국은 중동지역 고대문명을 일으킨 수메르가 아닌가 합니다. 고고학자들은 그 사람들은 백인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종이었다고 합니다. 또 쓰는 언어도 한국어와 대단히 유사하여, 단어도 비슷하고 교착어, 모음조화도 일어난다고 합니다. 또 발굴된 유물 가운데에는 씨름하는 모습의 향로가 있는데, 샅바 쥐고 왼씨름하는 모습이 고구려벽화에 나오는 것과 똑같다고 해요. 참, 재미있죠.
환국의 통치자이신 ‘환인’(桓仁) 역시 관직명입니다. 환(桓)은 ‘환하다’, 즉 광명정신을 담고 있어요.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광명을 숭상하여 백색을 숭상하고 흰옷을 즐겨 입었죠.
『환단고기』의 기록에 의하면, 환인은 7분이 계셨습니다.

 

 

왜 우리를 ‘배달민족’이라고 부르죠?


환국 다음에 등장한 나라가 바로 배달국(倍達國)입니다. 지금부터 약 6000년전이죠. 이때부터만 셈해도 우리 민족의 역사는 반만년이 훨씬 넘어요. 지금까지도 우리를 ‘배달민족’이라고 하는 건, 당시의 나라 이름이 배달국이었기 때문입니다.
배달국에는 역대 18분의 천황이 계셨습니다. 초대 환웅천황은 ‘거발환’이십니다. 바로 이 분이 『삼국유사』에서 환인(7세 지위리 환인)으로부터 ‘홍익인간(弘益人間)하고 개천입교(開天立敎)하라’는 명과 함께 신표로 천부인(天符印)을 받으신 주인공입니다. 아마도 환국 말에는 신석기 문화가 점차 세련되고 인구가 늘어났던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제세핵랑(濟世核郞)이라 불리는 문명개척단 3천명이 동방으로 이주하여 삶의 터전을 새로 개척하고, 이들이 주도하여 동방 땅 백두산에 새나라를 열었습니다. 당시 선진문화를 가진 환웅부족(桓族)은 탐욕스런 호랑이 토템부족(虎族)을 몰아내고 곰 토템부족(熊族)과 혼인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리하여 웅족이 환국의 정통계승자가 된 것이죠. 이것이 후일 호랑이는 사람이 못되고, 곰은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으로 변했다는 신화로 윤색된 것입니다.
배달국은 환족, 웅족을 중심으로 후에 호족을 흡수한 나라였습니다. 백두산 신시(神市), 즉 신의 도시에 나라를 세운 배달국은 상제님과 조상선영신을 섬기는 시원종교인 ‘신교(神敎)’를 국교로 삼아 찬란한 문화를 열었습니다. 이 나라는 점차 영역을 서쪽으로 확장하여 많은 유물·유적을 남겼습니다. 소위 홍산문화가 그것입니다. 이 지역에서는 성곽이 발굴되고 극히 섬세한 옥기와 종교적 자취가 남아있습니다.

 

 

태극기의 팔괘를 처음 그으신 분은 누구입니까?

 

 

치우천황이란 분은 누구입니까?


배달국의 14세 환웅이죠. 14세 환웅이신 자오지(치우) 천황께서는 도읍지를 백두산 신시에서 대릉하지역으로 옮기셨습니다. 그 도시 이름이 청구(靑邱)입니다. 그래서 근세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문 좀 하는 양반들은 우리 나라를 ‘청구(靑丘)’라고 즐겨 부른 것입니다. 청구라는 말은 『산해경』, 『회남자』등 중국문헌에도 많이 나오죠. 특히 신선이 사는 나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전쟁이 많았어요. 14세 자오지(치우)환웅천황과 중국 땅에 사는 황제헌원(우리 민족의 방계)과 큰 싸움이 있었죠. 숫적으로는 헌원이 많았지만, 치우천황이 이끄는 청구국은 금속으로 된 신무기를 사용했습니다. 결국 이 전쟁은 환웅천황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패널에 있는 치우북채(蚩尤北寨: 치우천황께서 쌓은 북쪽 성곽)는, 당시 전쟁이 벌어졌던 지금의 베이징 서쪽 탁록벌판에 있는 비석입니다.
중국문헌 『사기』를 보면 ‘동두철액(銅頭鐵額: 구리로 된 머리와 철로 된 이마)’이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 이 때 벌써 금속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청구국은 동아시아의 선진문명이었던 것이죠. 철(鐵)이라는 글자의 옛날 형태는 ‘g’인데 이것은 쇠 금(金)자에 동이족을 뜻하는 이(夷)자입니다. 글자를 통해서도 우리 민족이 금속문명를 먼저 일으켰다는 걸 알 수 있죠.
그런데 중국 역사가들은 배달국의 실체를 숨기기 위해 ‘헌원이 치우를 잡아죽였다’고 역사를 150% 날조했습니다. 이런 것이 대표적인 중독(中毒)의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