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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학이 아직도 판치는 이유

세덕 2013. 8. 19. 12:38

식민사학이 아직도 판치는 이유

식민사학이 아직도 판치는 이유

기사입력 2008-08-15 18:57 

 

[한겨레] 연구보다 일본 주장 받아쓰기 바빠

한국 고대사학계 향해 신랄한 비판


〈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

이희진 지음/소나무·1만2000원

몸담은 지 15년 되어가는 한국 고대사 학계를 지은이는 ‘복마전’ ‘지식 사기’ ‘파렴치’ ‘깡패 짓’ 같은 말로 묘사한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고 한다. 책 날개의 지은이 소개에는 “고대 한-일 관계사 분야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면서 대한민국의 고대사 연구자들이 얼마나 일본의 연구에 의지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뭘 모르던 시절, 함부로 입을 놀려서는 안 되는 미천한 신분을 깨닫지 못하고, 알고 있는 내용을 여기저기 발설한 죄로 지금까지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적었다. <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는 <거짓과 오만의 역사> <전쟁의 발견> 등의 저서를 통해 한-일 관계 고대사의 왜곡을 지적해 온 소장사학자 이희진 박사(서강대)가 “아직까지” 한국 고대사 학계를 장악하고 있는 식민사학의 과거와 현재를 파헤친 책이다.

그가 얘기하는 식민사학의 논점은 간단하다. “조선인은 열등한 민족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남의 지배나 받고 살아왔다. 당파성이 강해서 자기들끼리는 단결도 안 되고, 나라를 운영할 능력도 없다. 이런 것이 역사를 통해 증명된다.” “고대에는 나라의 꼴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허약한 집단들이 중국·일본 지역의 세력에게 허구한 날 지배와 압력을 받으며 비굴하게 연명해 왔다.”

 

지은이는 이러한 식민사학의 뿌리를 일본의 황국사관에서 찾는다. 황국사관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기 이전 일본이 천황 지배의 정당성을 설파하려는 목적으로 서술한 역사를 말한다. “일본의 기득권층은 한국을 지배하고자 식민사학을 만들기 훨씬 전에, 자기네 백성을 조종하려는 역사부터 만들어낸 셈이다.” 식민사학은 이러한 황국사관에 기대어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한 사이비 역사학이다.



일본의 고대사 부분 식민사학의 계파는 두 갈래라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고대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를 정복하고, 식민지를 건설하려고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기관을 설치했다”고 주장하는 스에마쓰 야스카즈의 말은 허무맹랑함이 도를 지나쳐 일본에서도 믿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에 반해 “천황에 대한 신앙고백”과도 같은 <일본서기>를 비판적으로 검토했던 쓰다 소키치는 현재까지 일본 고대사학계에서 주류로 통한다. 바로 여기에 대한민국의 식민사학이 뿌리박고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철저한 사료 비판을 앞세운 쓰다의 실증사학은 “남들에게 내세우지 못할 만큼 창피할 정도의 과장과 왜곡을 스스로 걸러내는 척이라도 하자는 취지”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일본서기>의 일부를 비판하는 척하면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 등 다른 사료를 끌어들이고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철저히 무시해 한반도의 고대 국가 건립 연대를 늦춘 그의 주장을 국내 원로 식민사학자들은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들 덕분에 쓰다는 “일본 군국주의에 저항한 ‘양심적인 학자’”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해방 뒤 한국 고대사학계를 장악한 이들의 주장이 쓰다 소키치의 억지 학설을 얼마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보여준다.

‘해방된 대한민국에 어떻게 식민사학이 남아 있을 수 있나?’ 이 지점에서 국내 고대사학계에 대한 지은이의 신랄한 비판이 시작된다. 해방 뒤 식민사학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 고대사학계의 역사는 명백한 ‘자기기만’의 역사다. 원로 식민사학자들을 정점으로 ‘학파’라는 이름의 ‘패거리’가 형성된다. 거의 교주-신도의 관계와 다름없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참신하고 획기적인 연구 성과가 나올 리 없다. ‘이러이러한 것이 잘못됐다, 다루어야 할 것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는 지적이 원천봉쇄된 ‘강단 사학’에는 “연구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차지하고 앉아 일본 논문을 티 안 나게 일삼아 베낀다. ‘표절’과 ‘재탕’이 만연한 학계는 식민사학을 ‘정설’을 넘어선 ‘정통’으로 굳힌다.

‘검열’이 되어버린 학술 논문 심사, 학계 기득권층과 야합하는 학술기관들, 패거리 문화를 굳히는 ‘학술지 등급제’ 등등 “한 번 얽혀 들어가면 결국 공범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연해 있다고, 지은이는 책장 밖으로 침이 튈 정도로 비판한다. “못다한 얘기가 많다”고 끝을 맺는 지은이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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