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환단고기>동명왕 고두막한과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 본문

역사 이야기/잊혀진 역사

<환단고기>동명왕 고두막한과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

세덕 2014. 4. 1. 21:34

 <환단고기>동명왕 고두막한과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
 <환단고기>동명왕 고두막한과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

 

<환단고기>동명왕 고두막한과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

그런데 환단고기『삼성기』 상에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가 또 있다. 한 무제가 우거의 왕검성만 정벌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옛 고조선 지역인 만주의 북부여까지 완전히 먹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동방 한민족사에 최대의 위기 상황이 닥친 것이다.
 
 이때 군사를 일으켜 의연히 일어난 구국의 인물이 서압록 위에 살던 고두막한高豆莫汗이다. 왕대나무에 왕대가 난다고, 47대 고열가 단군의 직계 후손인 고두막한이 나서서 한 무제를 물리쳤다. 그러고서 그는 졸본에 나라를 열어 졸본부여라 하고, 스스로 동명왕東明王이라고 칭하였다. 이는 ‘동방 신교의 대광명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그래서 졸본부여를 동명부여라고도 한다. 바로 동명왕이 고두막한이고 고두막한이 동명왕인 것이다.
 
 그런데 이 역사가 다 말살되어 지금 고주몽이 동명왕으로 알려져 있다.
 
 동명왕 고두막한은 북부여의 해부루 단군을 동쪽으로 몰아내고 5세 단군으로 등극을 했다. 이로써 북부여의 후기 시대[後北夫餘]가 시작되었으며, 그 후 6세 고무서 단군 때에 이르러 북부여는 막을 내린다.
 
 한편 왕위에서 밀려난 해부루 단군은, 국상 아란불과 함께 우수리강 지역의 가섭원에 가서 나라를 세웠다. 이것을 ‘동부여’ 또는 ‘가섭원부여’라고 하며, 금와와 대소로 왕통이 이어졌다.
 
 그러면 세상에서 동명왕으로 잘못 알고 있는 고주몽은 어떤 인물인가?
 
 그분은 고구려의 창업 시조이다. 원래 북부여의 마지막 단군인 고무서의 둘째딸 소서노와 혼인하여 북부여의 BCE 58년에 7세 단군이 되었고, 나라 이름을 고구려로 변경하였다.
 
 우리는 그동안 주몽이 기원전 37년에 고구려를 세웠으며 668년에 망했다고 배워왔다. 그러니 고구려 역사는 기껏해야 700년이 조금 넘는다. 그런데 신라시대의 고운 최치원의 글을 보면, ‘중국에서도 고구려 역사를 900년으로 알고 있더라’고 했다. 어떻게 해서 900년이 되는 것일까?  환단고기『삼성기』 상에 그 해답의 실마리가 되는 놀라운 내용이 있다. “사해모수祠解慕漱하여 위태조爲太祖라”, ‘해모수를 태조로 하여 제사를 모셨다’는 것이다. 해모수가 북부여를 세운 것이 BCE 239년이니까 668년까지, 900년이 조금 넘는 역사가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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