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일심(一心; One Mind) 본문

증산도는./증산도 일문일답

일심(一心; One Mind)

세덕 2012. 3. 19. 13:23

 

일심(一心; one Mind)

 

 증산도의 일심(一心)은 곧 도심(道心)

  일심(一心)의 사전적 의미는 ‘한 마음’, ‘한결같은 마음’, 혹은 ‘온전한 마음’이지만 문맥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증산도의 일심(一心)은 형이상학적인 의미, 수행자의 마음가짐, 그리고 수행자의 경계 혹은 경지 등으로 그 의미를 나누어 볼 수 있다.
유-불-선 삼교와의 관계에서 증산도의 일심을 정의한다면 그것은 도심(道心)이라 할 수 있다. 유가의 마음이 도덕적이고, 도가의 마음이 자연적이며, 불가의 마음이 염오적(染悟的)이라 한다면 증산도의 마음은 오도적(熬道的)이라 할 수 있다.

 
“마음 심자의 아래 모양은 땅(地)의 형상을 이름이요 위의 점 세 개는 불선유(佛仙儒)를 나타냄이라”(『도전』11:55:55)

  고 하는 것처럼 증산도의 마음은 유불선 삼교의 마음을 하나로 아우른 것이며 그 바탕이다. 또한 증산 상제님은 증(甑)자를

 
“세상에서 시루만큼 큰 그릇이 없나니, 황하수의 물을 길어다가 부어 보아라. 아무리 부어도 시루에 물을 못 채울 것이로다. 시루는 황하수를 다 먹어도 오히려 차지 않으니 천하의 그릇 중에 제일 큰 것이 시루니라”(『도전』 4:7:4-5)

고 풀이하여 강증산 상제님의 도가 천하를 통일하는 무극대도라고 한다. 그러므로 도심은 삼교의 마음을 통일하는 바탕이다 . 도심(道心)의 중요성은
“도심주(道心柱)를 잘 가지라. 천지 집을 지으려면 기둥이 완전히 서야 천지공사가 무궁하리라”(『도전』 9:49:6-7)고 하여 그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

 

천지만물의 뿌리이며 우주의 근원자리인 일심

  형이상학적 의미의 일심은 천지만물의 뿌리인 우주의 근원적 실체를 가리킨다. 그것은 우주의 마음이고, 우주의 신성이라 할 수 있다. 증산 상제님은
“天地萬物이 始於一心하고 終於一心이니라”(『도전』 8:33:1)고 함으로써 일심의 형이상학적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일심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天地之中央은 心也라 故로 東西南北과 身이 依於心이니라”(『도전』 3:2018)“天用地用人用이 統在於心하니”(『도전』 4:78:7), “吾心之樞機門戶道路는 大於天地니라”(도전』 4:78:10)라고 한 것은 이러한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일심은 천지만물이 생겨나는 근원이고 천지만물은 마음의 본래적인 작용에 의해서 생겨난다는 말이다.

 

일심의 양면적 의미- 주체이면서 객체

  본래적인 마음작용의 주체는 우주의 한 마음이다. 그것은 신성이며 모든 조화의 근원이고 질서의 근원 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일심은 구체적인 형상과 생각 이전의 본원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형상과 생각을 떠나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의 일심은 구체적인 현실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나타낸다. 현실은 일심의 구 체적인 드러남이다. 따라서 일심은 부분이면서 전체라고 하는 논리적 역설을 가능하게 한다. 일심이 음양의 리 듬을 갖는 것 또한 역설적 과정이다. 일심은 스스로가 주체이면서 객체이다. 일심이 주체이면서 객체이므로 자 신을 변화시키면서 그 변화 과정을 스스로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우주의 마음은 한결같은 일심

  인간의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개체적인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것이다. 그것이 우주의 한 마음이다. 그 마음은 변함이 없는 우주의 이치를 담고 있는 한결같은 마음이다. 인간의 이러한 마음을 성명 (性命)이라 한다. 생명의 의미는 성명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인간의 심성에 자리하고 있는 우주의 한 마음은 만물을 낳아 살리고자 하는 한결같이 자애로운 부모의 마음이다. 이러한 부모의 마음은 거짓이 없는 진실한 마 음이다.

  이러한 우주 일심의 진실하고 거짓이 없는 마음은 천지질서를 통해서 나타난다. 우주 사시의 질서, 선천과 후천의 질서, 일년과 하루의 질서는 정연하다. 정연하고 가지런하기 때문에 천지가 착오없이 운행하면서 만물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변함이 없이 진실한 마음, 사사로움이 없는 공정한 마음 그것이 우주의 한마음이고 인간의 본래적인 마음이다.

 

수행을 통해 천지부모의 일심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런데 인간은 태어난 이래 스스로의 개체성을 인식함으로써 우주의 마음을 망각하였다. 우주의 한 마음을 망각 함으로 인해서 인간은 원한을 쌓는 삶을 살아간다. 이렇게 살아가는 인간의 삶은 인간의 불행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슬픔에 관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증산 상제님은 우주의 한 마음을 깨닫고 그러한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한다.

  우주의 마음을 깨닫기 위한 방법은 바로 수행이다. 증산 상제님은 태을주 수행에 커다란 비중을 두고 있다. 증산 상제님은

 
“말은 마음의 소리요, 행동은 마음의 자취라”(『도전』 3:15:5)

 
“천지는 억조창생의 부모요, 부모는 자녀의 천지니라”(『도전』 2:41:4)

 
“태을주를 많이 읽으라, 하늘 으뜸가는 임금이니 오만 년 동안 동리동리 각 학교에서 외우리라. ‘훔치’는 천지부모를 부르는 소리니라. 송아지가 어미를 부르듯이 창생이 한울님을 부르는 소리니라”(『도전』 7:58:1-4)

라고 한다. 부모는 자식의 부름에 한결같이 자애로운 마음으로 응답한다. 천지의 자식인 인간이 부모인 천지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정성과 믿음을 다해 찾으면 천지는 답을 한다. 그 속에서 부모와 자식은 하나가 될 수 있다. 증산도의 수행은 천지의 마음, 우주의 마음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정성이며 천지부모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 이 바탕을 이룬다. 이에 증산 상제님은
“주문을 읽는 방법은 마음을 바르게 갖고 단정하게 앉아 성경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니라”(『도전』 9:48:1)고 한다. 천지부모 에 대한 정성과 변함없는 믿음이 바로 수행자의 일심(一心)이다.

 

천지의 마음을 나의 심법으로 삼고 수행해야

  수행자의 일심이 지향하는 바는
“원형이정(元亨利貞)으로 성경신(誠敬信) 석 자를 일심으로 지켜 수행하라”(『도전』 11:154:4) 는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원형이정(元亨利貞)은 1년 사시(四時)의 변화정신이고, 성경신은 “마음을 속이지 말고 생명을 해하지 말라”(『도전』 3:19:4)고 한 것 처럼 거짓없는 마음과 호생(好生)의 생활태도를 말한다. 자연의 변화정신은 천지의 마음을 가리키고, 성경신은 수행자가 갖추어야할 덕목을 의미한다. 즉 수행자는 천지의 마음에 수행자의 모든 것을 일치시키도록 하라는 말이다. 이것이 천지와 하나가 되는 천지 일심이며 수행자가 추구하는 바이다.

 

우주의 조화성신과 함께하는 자리-일심

  증산 상제님은 천지일심의 경계 혹은 경지를

 
“이제 모든 일에 성공이 없는 것은 일심(一心) 가진 자가 없는 연고라. 만일 일심만 가지면 못 될 일이 없나니”(『도전』 8:29:1-2)

 
“일심을 가진 자는 한 손가락을 퉁겨 능히 만리 밖에 있는 군함을 깨뜨리느니라”(『도전』 8:29:8)

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일심이 무한한 능력과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즉 일심은 선불권술(仙佛權術)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쓸 때가 되면 바람과 구름, 비와 이슬, 서리와 눈을 뜻대로 쓰게 되리니 일심혈심(一心血心)으로 수련하라. 누구나 할 수 있느니라”(『도전』 11:108:6)고 하였다. 우주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우주의 덕을 나의 덕으로 하고 나의 덕을 우주의 덕으로 할 수 있는 마음이 일심 혹은 천지일심의 경계이다 . 그러므로 증산 상제님은

 
“천지의 마음을 나의 심법으로 삼고 음양이 사시(四時)로 순환하는 이치를 체득하여 천지의 화육에 나아가나니 그런고 로 천하의 이치를 잘 살펴서 일언일묵이 정중하게 도에 합한 연후에 덕이 이루어지는 것이니라”(『도전』 4:74:10-11)

고 한다. 우주는 신으로 가득한 신성 그 자체이므로 천지일심은 우주의 조화성신과 함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