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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相生; Mutual Life-Giving) 본문

증산도는./증산도 일문일답

상생(相生; Mutual Life-Giving)

세덕 2012. 3. 23. 14:13

 상생(相生; Mutual Life-Giving)

 

후천 세계의 삶의 근본적 원리인 상생

  상생(相生)이란 말 그대로 ‘서로 살림’이다. 증산 상제님은 상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있다.

  
나의 도는 상생의 대도이니라. 선천은 상극(相克)의 운이니라. 위무로써 승부를 삼아 부귀와 영화를 이 길에서 구하였나니 이것이 곧 상극의 유전이라. 내가 이제 후천을 개벽하고 상생의 운을 열어 선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리라. 만국이 상생하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화합하고 분수에 따라 자기의 도리에 충실하여 모든 덕이 근원으로 돌아가리니 대인대의(大仁大義)의 세상이니라. 선천 영웅시대에는 죄로써 먹고살았으나 후천 성인시대에는 선으로 먹고살게 하리라. 선천은 위엄으로 살았으나 후천세상에는 웃음으로 살게 하리라. 우리 일은 남 잘되게 하는 공부니 남이 잘되고 남은 것만 차지하여도 우리 일은 되느니라.(『도전』 2:15:1-8)

 
구천지 상극 대원대한(舊天地 相剋 大寃大恨), 신천지 상생 대자대비(新天地 相生 大慈大悲)(『도전』 11:213:2)

  위의 구절에서 볼 때 증산 상제님은 선천의 상극에 대비해서 후천 세계의 근본적 원리를 상생으로 규정하고 있다. 증산 상제님의 상생사상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극에 대한 언급이 필요하다. 상극과 상생은 우주를 변화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이며 법칙이기 때문이다. 이 중 상극은 생장염장하는 우주 1년 중에서 생명이 생겨나고 성장하는 선천의 지배적 이치이며, 상생은 만물이 수렴,통일되는 후천의 지배적 이치이다.

 



우주원리로서의 상극과 상생

  이러한 상극-상생이란 말은 처음 음양오행을 설명하는 한 개념으로 등장하였다. 즉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라는 오행(五行)의 각각의 승부(勝負)작용으로 인한 상관관계를 상극과 상생으로 표현하였는데 오행의 상생은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 금생수(金生水)의 상호 생(生)하는 관계이다. 이에 반해 상극은 오행의 상호관계에 있어서 서로 극(克)하는 관계, 즉 수극화(水克火), 화극금(火克金), 금극목(金克木), 목극토(木克土), 토극수(土克水)의 관계이다. 상생이 만물을 살리는(낳는, 生) 이치라면, 상극은 만물을 기르는(대립하는, 養) 이치라고 할 수 있다.

  상극과 상생이란 개념은 동양철학에서 우주의 변화를 설명하는 원리로도 사용되었다. 이미 오래 전에 동양의 성인(복희와 문왕)들은 천수상(天垂象)하는 모습을 통해서 우주의 모습을 원리적으로 표현하였는데, 이것이 주역의 기초가 되는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이다. 일반적으로 낙서는 상극적 운동을 나타내는 象(선천팔괘도; 복희팔괘도, 문왕팔괘도)이라고 하며, 하도는 상생의 우주운동을 묘사하는 象(후천팔괘도; 정역팔괘도)이라고 한다. 증산 상제님은 일찍이
“천지의 모든 이치가 역에 들어있다”(『도전』 3:91:6) 고 하였으며, “주역을 보면 내일을 알리라”(『도전』 5:178:7) 라고 하였다. 이는 우주의 변화원리를 주재하는 주재원리가 하도와 낙서에 의해 알려지고, 그것을 통해서 선천과 후천이 상극과 상생의 이치로 존재함을 알려준 말이다. 이러한 상극-상생관계는 증산 상제님에 의해서 인류의 역사와 구원이라는 실천적 의미로 확대되었다.



상호 조화의 원리로써 존재하는 상극과 상생

  상극에 대해서 증산 상제님은


  “선천에는 상극의 이치가 인간사물을 맡았으므로 모든 인사가 도의에 어그러져서 원한이 맺히고 쌓여 삼계에 넘치매 마침내 살기가 터져나와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나니”(『도전』 4:14:2-3)


라고 하였다. 이 말은 선천 상극의 운은 천지만물을 낳고 기르는 공평무사한 우주의 이치이면서도 이 이치가 인간의 문명과 역사에 적용될 때는 이기주의적 투쟁으로 원한과 재앙을 야기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증산 상제님이 천지공사를 집행한 것은 우주만물을 극한까지 분열,성장시키는 상극의 힘과 인간의 문명과 역사에 원한과 살기를 불러일으키는 상극의 운을 끝맺고 생명살림, 인류구원의 새로운 대도를 정립하기 위해서이다.

   사실 현대사회가 바라는 이상적 질서가 상생이지만 이 상생은 상극없이는 불가능하다. 상극과 상생은 상호 조화를 통해 만물을 존재하게 하기 때문이다. 선천에는 상극의 이치가 지배하지만 상생의 수렴과 통일정신이 항상 그 방향을 지시하고, 상생의 도가 후천의 선경을 지배하지만 새로운 낳음 기름의 원리를 부정할 수는 없다. 상극의 힘이 극에 달할 땐 상생의 운으로 조화를 지향하고 상생의 운이 만물을 수렴,통일시키는 끝에서는 다시 상극의 창조력이 요구된다. 현대는 상극의 힘이 만물과 문명을 극도로 분열시킨 선천말대이며, 이제 克에서 새롭게 반(返)하는 우주의 개벽운동이 시작되는 시대이다. 증산 상제님은 극에서 되돌아가는 이 우주의 정신을 원시반본으로 규정한다. 상극우주의 원시반본이 바로 상생의 우주이며, 상극문명의 원시반본이 바로 상생의 화평세상이다.



상생의 실천적 이상향은 ‘개벽기에 생명을 살리는’ 것

  증산도에서는 이 상생의 의미를 실천적 관점에서는 ‘남 잘되게 하는 행위’와 ‘생명을 살림’, 이 두가지로 규정한다. 이러한 두 가지 의미에서만 고찰할 때 우리는 상생이란 인간의 행위에 관련된 윤리적 개념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현대의 윤리적 담론에 등장하는 상생이란 개념의 강조점 역시 인간의 윤리적 관점에 맞추어져 있을 뿐이며, 그리고 그 구체적 실현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부재한 상태에서 상생의 개념만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경제용어사전』은 상생에 대해 “상생은 생태학에서 파생된 개념인 공존(co-existence)이나 공생(symbiosis)보다 더욱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를 갖는다. 상생의 원리는 갈등과 대립의 연속이던 지난 세기의 인류사를 새 천년에는 화합의 시기로 전환시킬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래학자와 동양사상가들이 세기말을 맞아 상생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라고 풀이하고 있다. 여기서 상생이 새로운 세계를 여는 열쇠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이를 윤리적 관점에 한정하는 것은 상생의 본래적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상생은 후천을 지배하는 생명의 이치

  증산도에서 말하는 상생은 일차적으로 ‘우주의 원리’라는 측면에서 고찰될 수 있다. 우주 주재자 증산 상제님은 “상생의 대도로 하늘 땅을 개벽”하고, “상생의 도로 병든 하늘과 땅을 바로 잡는다”고 하였다. 이 때 상생은 새롭게 태어나는 신천지인 후천의 지배적 원리이다. 이러한 원리적 의미는 우주변화의 바탕 속에서 이해된다. 선천에서 후천, 상극에서 상생으로의 전환은 기울어진 지축이 바로 섬으로써 가능하게된다. 그런데 지축이 기울어지고 바로 섬은 천지간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자들에게 결정적인 생사의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재 지구의 지축이 동북방향으로 23.5도 기울어져 있음은 과학적 사실이고 그 결과 모든 우주운동은 삼천양지작용을 받게 된다. 이러한 양의 태과상태는 선천의 모든 존재자들이 상호 극(克, 대립)하게 하는 근본적 원인이 된다. 이를 증산 상제님은 ‘선천은 상극의 운’, ‘억음존양의 시대’ ‘천지비(天地否)의 운(運)’이라고 표현한다.

  상극의 이치에서 상생의 운으로서의 전환은 지축이 바로 서는 우주적 대변화에 의해 가능하다. 지축이 바로 선다는 것은 지축의 경사로 인한 양의 태과(太過)상태를 벗어나서 양과 음이 동등한 작용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른바 ‘정음정양’의 시대가 된다. 이 때는 음양의 작용이 동등하게 되고, 우주는 가장 정상적인 운동을 하게 된다.
이러한 개벽을 증산도에서는 우주론적 후천개벽이라고 하고, 정음정양의 후천우주는 우주 내 모든 생명존재를 살림의 길로 인도한다. 우주와 우주의 이치가 조화롭게 되는 것은 그 우주 내 모든 생명존재의 존재방식이 바로 생명의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며, 이는 한마디로 상생이라고 표현된다. 즉 상생은 후천을 지배하는 지배적 이치가 된다.



우주원리적 관점에서의 상생

  상생의 이치가 우주 변화의 원리에 따라 후천의 지배적 원리가 될 때, 인간의 삶도 상생의 운에 따른 실천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우주론적 관점에서 상생을 철저히 이해할 때, 그리고 우주론적 의미의 상생을 근거로 할 때, 증산 상제님의 상생사상에 포함된 윤리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상생의 도는 후천개벽을 실현하는 길이며, 후천개벽은 상생이 열리는 근거이다. 아무리 우주의 질서가 바뀌고 모든 생명의 생명성이 본래성을 회복한다고 하더라도 인간간의 관계가 아름다운 상생의 관계가 될 때, 그 진정한 생명실현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이와 더불어 상생을 지향하는 인간의 의지와 실천이 아무리 적극적이라고 하더라도 후천개벽과 후천선경과 연관될 때, 그 빛을 발하게 된다.
“낡은 삶을 버리고 새 삶을 도모하라”(『도전』 2:47:2)는 증산 상제님의 말씀은 선천의 상극지리가 후천의 상생의 도로 개벽되어, 새로운 세계가 가능하게 되는 시점에서 인간의 삶의 방식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가를 알려준 것이다.
낡은 삶의 방식이란 바로 척과 원을 쌓는 세상에서의 삶의 태도, 이기주의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위무와 폭력으로 타인을 억압하는 행위를 뜻한다. 그렇다면 새 삶이란 이러한 선천의 모든 상극적 태도를 벗어버리고 상생의 조화를 지향하는 선생(仙生) 그리고 선생(善生)을 의미할 것이다.



“상생의 도로써 仙境을 연다”

  상생은 후천개벽의 전제조건이면서 지배원리이다. 증산 상제님은
“상생의 도로써 仙境을 연다”(『도전』 4:14:6) 고 하였다. 후천이 개벽되고 선경이 열리는 것은 상생의 이치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증산 상제님은 후천선경을 상생의 도로 주재하며, 그 상생의 주재는 천지 자연과 문명 역사의 새로운 방향을 지시한다. 즉 주재원리이며 자연의 새 질서인 상생의 도는 바로 후천개벽의 전제가 된다는 의미이다. 후천의 전제조건인 상생은 그 후 선경의 전체적인 지배원리로서 작용한다. 또 증산 상제님은 “내가 이제 후천을 개벽하고 상생의 운을 열어 선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리라”(『도전』 2:15:3)고 말한다. 이 구절에서는 후천을 개벽한 후 상생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든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즉 상생은 존재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후천을 지배하는 이법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상생은 우주의 구원, 인간의 구원을 위한 우주의 주재자인 증산 상제님의 도법이다.



인간 문명적 관점에서의 상생

  우주원리적 관점에서 본다면 상극의 이치에서 상생의 도로 이치가 변화하는 것인데, 이는 상제의 주재권능에 의한
무위이화(無爲以化)(『도전』 2:49:1) 이면서, 동시에 천지의 자연스러운 필연적 변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의 도덕적 관점 혹은 문명적 관점에서 본다면, 상극에서 상생에로의 전이는 결코 필연적 흐름이나 무위에 의해 가능한 것이 아니라 천지의 대신문을 연(『도전』 3:1:2) 인존상제의 권능에 의한 유위(有爲)이며, 인간의 적극적 실천의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