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증산도>제 2변도운의 전개2-안운산 태상종도사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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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제 2변도운의 전개2-안운산 태상종도사님

세덕 2019. 4. 9. 14:09

<증산도>제 2변도운의 전개2-안운산 태상종도사님

<증산도>제 2변도운의 전개2-안운산 태상종도사님


일찍이 고수부님이 상제님의 성령감화로 도통을 받고 일어나 앉으시면서 차경석 성도에게 “나는 낙종(落種) 물을 맡으리니 그대는 이종(移種) 물을 맡으라. 추수(秋收)할 사람은 다시 있느니라.”(도전11:19)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결실할 사람은 어디에 가서 붙어야 하겠는가? 자기 홀로 독자적으로 판을 열어야 판 밖의 법이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는 스스로 종통맥, 법맥의 생명줄을 끊는 가짜 판으로 또 다른 유형의 난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결실할 사람은 고수부님이 떠나신 뒤에 상제님이 직접 내세우신 퍼스트 레이디이신 고수부님이 친히 주재하시고, “이곳에서 장차 사람이 나오니 용봉기를 꽂으라”고 하신 용화동의 통합교단의 판에 뛰어들어 2변 도운(道運)을 개척하기 위해 나오는 것이다.


1936년 병자년에 차경석 성도가 사망을 하고 10년간 1변 초기 도운 분열시대의 난법판이 막을 내리고 2변 도운의 서광이 열리기 시작했다. 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은 7살(1928년) 때부터 고향 각시바위에 들어가서 틈틈이 집중수련을 했다. 이때가 태모님께서 숙구지 공사를 보시던 때다(도전6:75). 그리고 9살 때 “만국활계남조선이요 청풍명월금산사라”는 상제님 성구를 붓글씨로 써서 입춘서로 상기둥 나무에 써 붙일 정도로 상제님 진리를 훤히 알고 있었다. 12세에는 대광명을 체험하는 초통을 하게 된다. 이때는 1933년 태모님이 용화동교단을 떠나서 추수도운의 임술생(壬戌生) 대두목를 예비하며 “북방(北方) 일육수(一六水)라야 채울 수 있느니라”며 오성산 도장으로 은거를 하러 가신 때였다.


●“대도통은 육(六)으로 되느니라.”(도전11:138)
 

●병오(1906)년 9월에 상제님께서 형렬을 데리고 함열 회선동(會仙洞) 김보경(金甫京)의 집에 가시어 보경으로 하여금 큰 북을 구해 오게 하시니
 보경이 가져다 올리매 그 북을 새끼로 묶어 대들보에 매달고 ‘병자(丙子) 정축(丁丑)’을 계속하여 외우시면서 북을 치며 흥을 내어 노래하시니 이러하니라.
丙子丁丑 丙子丁丑 丙子開路(병자정축 병자정축 병자개로)아
 병자정축 병자정축 병자(丙子)에 길을 여는구나.........,
時節花明三月雨(시절화명삼월우)요 風流酒洗百年塵(풍류주제백년진)이라
 철 꽃은 내 도덕의 삼월 비에 밝게 피고 ,온 세상의 백년 티끌 내 무극대도의 풍류주로 씻어 내니 우리의 득의지추(得意之秋) 아닐런가. 이어 말씀하시기를 “좋구나, 좋구나! 이 북소리가 멀리 서양까지 울려 들리리라.
 (도전5:155) 


병자 정축은 상제님 어천 후 2번을 맞이한다. 그 첫째는 1936(병자)년이고, 둘째는 1996(병자)년이다. 이 공사는 1906(병오)년에 보신 공사인만큼 백년을 맞이하는 병자(1996),정축(1997)년을 지나 무인(1998)부터 신사(2001)년까지 상씨름판에 1,501 마리의 통일소가 넘어가면서 진정한 통일역사의 주역인 육임군이 조직화 되는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이제 도운은 무기천지한문(戊己 天地閈門)시간대를 넘으면서 계룡산 천황봉 1만 2천 도체조직을 완수해야 하는 상씨름판 매듭도수의 중심으로 들어가고 있다.


차경석 성도의 사망으로 상제님이 그게 붙인 27년(1909.4~1936.3) 난법 헛도수가 끝나고,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이것이 2차 세계대전으로 확산되면서 일제는 민족종교 대탄압령을 내렸다. 그로부터 해방되기까지 약 10년의 세월동안 활동을 하지 못하고 지하로 잠복해서 1변 난법시대의 모든 교단이 완전히 해체 되었다. 이 과정은 세운에서는 일본제국주의가 무너지는 과정이자 도운에서는 내적으로 2변 도운을 잉태하는 준비 기간이었다. 그리고 해방이 되면서 여기에서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린 것이다.


보천교를 포함해서 상제님을 믿는 모든 교단의 대세가 기울어 형체만 남아 잔존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무에서 유를, 새 역사를 개척해야 하는 시운을 맞이한 것이다. 이 때 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이 이상호· 이정립 형제와 함께 고수부님이 통합교단의 교주로 계셨던 바로 그 용화동에서 일을 시작하셨다. 고령의 이상호씨(해방시56세)는 교단의 대표자로 있었고(이정립 씨는 일제탄압으로 감옥에 들어가 있다 해방과 더불어 출옥했고) 용화동은 명목만 남아있을 뿐, 모두 2변 도운에서 새롭게 개척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그 당시에 개척의 최일선에서 포교를 하여 제일 많은 인권을 가지고 계셨던 지도자가 바로 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이였다.
그러면 제2차 증산도 부흥시대를 열어놓으신 상제님의 도수를 살펴보자. 상제님은 어떤 정신으로 2변 도운 공사를 보셨는가?


모악산 금산의 땅을 도모하는 자를 경계하심

(구릿골 근처에 사는)도일이 병이 나은 뒤에도 요통이 풀리지 아니하여 지팡이를 짚고 다시 와 뵙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병이 나은 뒤에 오히려 지팡이를 짚고 다님은 웬일이냐?” 하시니 도일이 대답하기를 “요통이 나서 그러하나이다.” 하는지라.
상제님께서 광찬에게 명하시어 그 지팡이를 꺾어 버리게 하시매 이로부터 요통이 곧 나으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도일에게 명하시어 “서쪽 하늘에 붉은 구름이 떠 있는가 보라.” 하시니 도일이 나가서 보고 아뢰기를 “붉은 구름이 떠 있나이다.”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금산을 얻기가 심히 어려운 일이니라.” 하시니라.(도전6:24)
 

“사기(邪氣)는 김제(金堤)로 옮겨야 하리라.”(도전5:185)

상제님의 이 말씀이 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의 2변 도운을 개척해 열어놓으신 그 땅, 2변 도운의 그 중심 지역에 대한 핵심 문제점을 지적해 주신 것이다. 제2변 도운 때의 교단의 책임자는 연로한 이상호였다. 그리고 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은 당시에 20대로서 도운의 최전선에서 개척하실 때였다. 개척하는 과정에서 신도가 많아지자 이상호는 금산사 아래의 용화동 땅을 모두 사서 신도들을 집단 이주시키자는 주장을 하였고, 안운산 총사수는 신도들을 궁핍한 곤경에만 빠뜨리게 한다며 의견이 서로 충돌하게 된다. “금산을 얻기가 심히 어렵다”는 말씀은 모악산을 낀 금산 일대나 상제님께서 공사를 보신 구릿골 등지에서 일이 될 것으로 믿고 천하를 꿈꾸는 자들을 경계하신 말씀이다.

상제님께서는 2변 도운의 바로 이 일을 두고 금산 일대에서는 성공할 수 없음을 지적하신 것이다. 돈이 많고 신도가 많아서 땅을 다 사서 성지를 만들려 해도 일 되는 곳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난법 기운을 해소하는 과도기의 분쟁지역으로, 성숙의 결실장소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상제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공사로서 이를 결론 내려 주셨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필성에게 말씀하시기를 “용화동은 사룡(死龍)이 되리라.” 하시니라.(도전6:100)
 

●모악산은 청짐관운형(靑鴆貫雲形)인데 그 살기(殺氣)를 피워 내는 바람에 세계가 물 끓듯 하리라.”하시니라.(도전4:148)


이 세계가 지금 이렇게 물끓듯 하는 것은 후천의 어머니 산이 될 모악산이 푸른 짐새가 구름을 꿰뚫는 악살 찬 형국이기 때문이다. 짐새는 살모사 같은 독사를 잡아먹고 사는데, 그 짐새의 깃털로 술을 담은 짐주(鴆酒)를 먹이면 사람을 순식간에 독살시키고, 또 짐새가 날을 때에는 그 기운만 간접적으로 쏘여도 죽은 송장도 사기ᅵ(邪氣)를 받아 시신이 검게 변한다는 것이다. 모악산은 그렇게 청짐관운형으로 악살이 많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결국은 일이 되지 않고 분쟁이 많을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따라서 이곳 용화동은 제1변 난법도운을 정리하면서 제3변 성숙기 진법도운을 여는 과도기 지역으로 삼으신 것이다. 모악산을 끼고 있는 상제님 천지공사의 성지인 금산일대에서 일이 이루어지지 못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용화동의 제2변 도운도 3변의 성숙을 위한 과도기 과정이었던 것이다.

또한 도사발전 과정의 난법이라는 문제 측면에서 보면, 해방 이후부터 경인(1950)년까지 2변 도운이 전개된 몇 년 간은 큰 인재들을 길러내고 도운의 대세몰이를 할 수 있는 역사적 시간 길이가 너무도 짧았다. 경인년에  우리 민족의 9천년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동족상잔의 6·25 대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남북전쟁은 인적으로나 물적인 그 피해가 실제로 1,2차 세계대전과 맞먹는 충격이었다. 이 남북전쟁은 세계 최강대국이 충돌하는 오늘날의 동북아 미소중일의 패권질서를 만들고 앞으로 전개될 3차 세계대전의 구도를 만들었다.

이 개벽의 종주국에서 음양의 판을 갈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 싸움을 벌인 것이다. 머리 위에서는 폭탄이 떨어지고 인민군이 탱크를 몰고 오는데, 이러한 가운데 앉아서 훔치훔치를 하고 있으면 탄환이 피해가는가? 그런 때는 태을주를 읽는다고 해도 자칫하면 죽는다. 세운 자체에서 그렇게 도운의 판을 대세로 쳐서 깨기 때문에 2변 교운은 역사의 또 한 차례의 과도기 발전과정으로서 마무리 지어진 것이다.


『관통증산도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