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단군조선>3세 가륵嘉勒단군의 업적-가림토 본문

역사 이야기/잊혀진 역사

<단군조선>3세 가륵嘉勒단군의 업적-가림토

세덕 2023. 8. 8. 07:00

<단군조선>3세 가륵嘉勒단군의 업적-가림토
<단군조선>3세 가륵嘉勒단군의 업적-가림토

 


신왕종전神王倧佺의 도
부루단군의 뒤를 이은 이는 가륵단군입니다. 가륵단군은 삼신을 수호하는 관직인 삼랑三郎 을보륵乙普勒에게 신왕종전神王宗佺의 도에 대해서 얘기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을보륵은

“신神은 천지조화의 기氣로부터 만물을 낳고 각기 타고난 성품[性]을 온전하게 하시니 신의 오묘한 조화를 백성이 모두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왕王은 덕과 의로써 세상을 다스려 각자 타고난 목숨[命]을 안전하게 해 주시니, 왕이 베푸는 것을 백성이 복종하여 따르는 것입니다. 종倧은 나라에서 선발한 스승이요 전佺은 백성이 천거한 스승이니, 모두 이레(7일)를 한 회로 하여 삼신께 나아가 맹세합니다. 천상의 상제님[天神] 을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릴 때는, 도를 널리 펴서 백성을 이롭게 하여 한 사람도 자신의 타고난 성품을 잃지 않게 하며, 만왕萬王을 대신하여 인간을 다스릴 때는 ‘병을 없애고 원한을 풀어 주어[去病解怨] 비록 미물이라도 함부로 생명을 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옵니다.

백성으로 하여금 그릇된 마음을 고쳐 참되게 하고 삼칠일(21일)을 기약하여 ‘온전한 사람이 되는 계율’을 굳게 지키게 해야 하옵니다.”

라고 진언하였습니다.

이에 단군이 구환족에게 이 가르침을 베푸니, 백성이 모두 순종하고 삼신의 한마음으로 돌아가 교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신왕종전의 도’에 대해서 종도사님은 “제왕학帝王學의 법전이다. 왕도王道문화의 핵심 정수를 보여 주는 교과서와 같다.”고 정의해 주셨습니다.

한글의 시원 가림토와 최초의 역사책 배달유기

이후 지방마다 말이 서로 다르고, 마을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많고 서로 문자를 이해하지 못하여, 가륵단군은 삼랑 을보륵에게 한글의 원형이 되는 가림토加臨土 38자를 창제하게 하였습니다. 배달국 시대에는 녹도문鹿圖文이라는 문자가 있었습니다. 형상의 뜻을 나타내는 진서眞書는 이를 말하는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즉 배달국 신시 시대 때부터 있던 문자를 이때 수정 보완하여 만든 것이 가림토 문자인데 이를 신전神篆이라고도 하였다고 전합니다. 이를 조선 시대 세종대왕이 필생의 사업으로 수정, 보완한 것이 훈민정음訓民正音 즉 우리의 한글입니다. 이 가림토 문자는 몽골, 만주, 서역 등 당시 단군조선의 영향력 아래 있던 여러 지역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글이 창제된 이후 이 기원에 대해서 여러 설이 있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가륵단군은 또한 신지 고설高契에게 명하여 지금은 현존하지 않으나 배달국 역사로 추정되는 『배달유기倍達留記』를 편찬하게 하였습니다.

흉노족의 시조와 일본의 기원
서양은 물론 지구촌 역사를 흔들어 놓은, 동북아 유목문화 가운데서 가장 강력한 기마 민족으로 훈족이 있었습니다. 훈족의 ‘훈’은 ‘한, 사람이다’란 뜻입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훈족을 폄하하기 위해서 ‘흉악한 노예 같은 위인들’이라는 뜻을 담아 ‘흉노匈奴’라고 불렀습니다.

가륵단군 6년 열양列陽 욕살 삭정索靖을 약수弱水 지방에 유배시켰다가 나중에 사면을 하고서 그곳(몽골 초원에서 북만주에 이르는 지역)의 제후에 봉했는데, 이 사람이 훈족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욕살은 큰 성을 다스리는 행정권과 군사권을 함께 관장하는 장관이고, 약수는 간쑤성 장액현張掖縣입니다.

가륵단군 재위 10년 무신년에 두지주의 예읍이 반란을 일으키니 임금께서 여수기余守己에게 명하여 그곳 추장 소시모리素尸毛犁의 목을 베게 하였고 그 땅을 소시모리라 불렀는데 이후 음이 변해서 소머리 나라[牛首國]가 되었습니다. 그 후손에 협야노挾野奴라는 인물이 있는데(36세 매륵단군 38년인 기원전 667년 협야후 배반명裵幋命), 바다를 건너가 삼도三島, 즉 지금의 일본을 점거하고 스스로 천왕이라 참칭僭稱하였습니다. 이 협야후 배반명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진무왕 즉 사노노미코토狹野尊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