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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한다./전염병의 횡포

초대하지 않은 손님, 전염병의 진화

세덕 2012. 4. 18. 16:06

초대하지 않은 손님, 전염병의 진화

김현자(ananhj) 기자
 

 

콜레라, 말라리라, 페스트, 티푸스, 천연두는 지난날 인류의 역사를 쥐고 흔들었던 전염병들이고, 사스, 조류독감, 광우병, 에이즈는 최근에 발병, 유행하면서 인류를 공격하고 있는 전염병들이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 전염병의 진화>는 이들 전염병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다.

전염병을 우리의 옛 문헌에는 '돌림병'이라고 기록한다. '티푸스'는 우리말로 '염병'인데 오늘날까지 욕 잘하는 일부사람들이 "이런 염병할~!" 등과 같이 욕으로 쓸 만큼 우리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 전염병중 하나다. 지난날 대부분의 전염병이 유럽에서 시작됐지만 티푸스는 15세기에 동양에서 유럽으로 건너가 유럽의 역사를 쥐고 흔들었다.

유럽 역사를 바꾼 작은 거인 나폴레옹의 러시아 정복을 처참하게 무너뜨린 주인공도 티푸스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이 의미 없지만,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 성공했다면 오늘날 세계는 어떤 역사를 기록하고 있을까?

나폴레옹의 러시아 정벌을 가로 막은 것은 '이'였다?

많은 문헌에 나폴레옹이 러시아 정벌에 실패한 이유가 러시아의 추운 날씨 탓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겨울을 맞이하기 전에 나폴레옹군대는 이미 발진티푸스와 굶주림으로 더 이상 전투가 어려울 만큼 큰 피해를 입었다. 이처럼 불과 200년 전만 해도 전쟁 중인 군대에서 발진티푸스의 유행은 전쟁의 승패를 바꿀 만큼 중대한 사건이었다. 나폴레옹 군에 발진티푸스가 유행하지 않았더라면 러시아와 인도는 프랑스가 지배했을 수도 있다. 물론 이 경우 대영제국의 건설도 어려웠을 것이다. 유럽 역사를 바꾼 거인 나폴레옹의 앞길을 가로막은 것은 다름 아닌 '이'였다. - 본문에서

 

▲ <초대하지 않은 손님, 전염병의 진화>겉그림
 
ⓒ 프로네시스
1812년 12월. 나폴레옹은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원정에 나선다. 1000문 이상의 대포와 8만 여명의 기병, 여러 전투에서 승리한 경험이 풍부한 정예군인 나폴레옹의 군대에 비해 러시아군은 톡톡 털어 30만. 세상 어느 멍청이라도 나폴레옹이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을 만큼 이미 정해진 승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30,40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던 '이'와 '이' 때문에 생긴 풍토병 '발진티푸스'였다.

몸을 자주 씻는 것이 힘들었던 19세기 유럽 사람들 몸에는 이가 들끓었다. '이'만이 아니라 빈대, 벼룩, 진드기도 마찬가지였는데 형편이 나은 귀족들의 몸에도 이가 들끓어서 '예의 바르게 이 잡는 법'까지 가르칠 정도였다나.

특히 폴란드 농민들은 지저분하기로 악명이 높았는데, 평생 단 한 번도 갈아입지 않을 것 같은 지저분한 옷과 흙과 기름기가 뒤범벅인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에는 이가 득실거렸다고 한다. 집에도 벼룩, 진드기, 쥐 따위가 득실. 폴란드 사람들이 지저분하였던 가장 큰 원인은 농사도 겨우 지을 만큼 절대적으로 부족한 물 사정 때문이었다.

우물은 말라붙어 밑바닥이 보였고 고인 물에서는 악취가 진동했고 벌레가 우글거렸다. 문제는 나폴레옹 군대가 러시아로 가기 위해서는 폴란드를 거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독일을 통과할 때만 해도 모든 것이 순조로워 승리를 장담한 나폴레옹이 폴란드에 도착하자 사정은 전혀 달라졌다.

도로사정이 나빠 식량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아 굶주림에 지친 병사들은 약탈금지령을 내렸음에도 농민을 약탈했고, 식수가 전적으로 부족하다보니 더러운 물까지 먹어야 하는 실정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 폴란드를 지나는 동안 나폴레옹 군대의 병사들은 심한 두통과 열병에 시달리고 겨드랑이에 붉은 반점이 돋기 시작한다. 폴란드 풍토병, 즉 발진티푸스였다.

열은 좀처럼 내릴 줄 몰랐고 헛소리를 하다가 혼수상태에 빠진 병사들은 살이 썩고, 사람을 통째로 구운 듯한 몰골로 죽어갔다. 병사들 사이에 급속도로 전염되었음은 물론. 결국 60만의 병사는 러시아에 도착하는 9월에 13만으로 준다. 러시아에 도착해서도 발진티푸스는 계속되어 모스크바에 도착하였을 때는 9만으로 줄고 결국 4만의 군대로 독일로 퇴각한다.

러시아 원정 실패는 이렇게 나폴레옹 인생 최대 실수로 기록되고 만다. 티푸스는 나폴레옹에게만 참패를 안겨주었을까?

인류의 동반자 전염병의 모든 것을 이 한권에!

티푸스는 전쟁이나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창궐하여 유럽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1917년 러시아는 2000만 명 이상이 감염되어 300만 이상이 죽었다. 최근에는 1997년에 아프리카 브룬디 난민 캠프촌에서 10만 명이 전염되었다. 위생이 깨끗해진 요즘에는 러시아처럼 대유행은 없지만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에서는 최근에도 수시로 소유행 되고 있다.

지난 세기는 물론 최근 2006년 12월에 다시 찾아 온 조류독감까지, 모든 전염병은 잠복기나 전염경로를 거치면서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할 만큼 강하게 진화하면서 인류를 뒤흔들고 있다. 그러고 보면 티푸스를 역사 속 전염병으로만 기억해선 안 될 것이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 전염병의 진화>는 이처럼 전염병이 바꿔놓은 굵직한 역사를 중심으로 전염병의 실체, 전염병의 발생과 유행, 전염병이 인류에게 끼치는 영향, 전염병을 물리치기 위한 인류의 노력과 대안 등이 그 주제다. 저자는 각 전염병에 따라 가장 영향이 컸던 역사를 비롯, 관련된 수많은 사례와 함께 전염병의 실체를 쉽고 이해 빠르게 설명한다.

티푸스의 경우처럼 각 전염병과 관련된 세계사를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것은 덤이고 무엇보다도 전염병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는 장점이 돋보이는 책이다. 1부에서는 목숨을 앗아가는 전염병 앞에 속수무책이었던 19세기 이전, 전염병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기도하는 것만이 전부였던 시대에 창궐하여 인류의 역사를 바꾼 전염병들이 주인공이다.

전 유럽을 공포에 떨게 한 검은 그림자 페스트, 아스텍 문명을 붕괴시킨 천연두, 우리나라에도 전해져(1821년) 많은 인명을 앗아간 콜레라, 로마제국의 멸망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말라리아와 나폴레옹에게 인생 최대의 참패를 남긴 티푸스 등이 주인공들이다.

전염병, 무엇이 그들을 성나게 했는가!

...인간이 부지런히 연구하고 병원체를 무너뜨릴 뭔가를 만들어내는 동안 병원체들도 그대로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항생제 내성균의 출현,DDT에 저항력을 가진 말라리아모기의 출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의 공격에 맞서기 시작했다. 특히 항생제 내성균문제는 전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최근에는 현존하는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이 발견된 적도 있다. - 본문에서

병원체의 반격은 이것만이 아니며, 최근에는 새로운 병원체가 등장하는 예가 잦아졌다. 에볼라 출혈열, 에이즈, 사스, 크로이츠펠트 야콥병 등 수 십 년 사이에 발병한 이들 전염병의 병원체는 각각 다르지만 생태계파괴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조류독감은 말 그대로 조류에게나 발생하던 것이지만 진화를 거듭하여 인간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인간들에게 지나친 밀도로 집단 사육당하는 가금류의 저항은 아닐는지!

게다가 이들 전염병이 예전의 전염병에 비해 훨씬 위험한 것은 오늘날 인류의 생활방식에 따라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세계 곳곳에 급속도로 전파된다는 것이다. 홍콩에서 항공기를 이용해 일주일 만에 30개국으로 퍼진 사스처럼! 2부 '전염병의 반격, 무엇이 그들을 성나게 했는가?'에서는 최근 발병하여 인류를 노리고 있는 전염병들에 대한 적극적인 이야기다.

"전염병의 반격, 무엇이 그들을 성나게 했는가?" 자연계의 최대 포식자, 오만과 이기의 인류를 향한 날카로운 반성의 물음이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 전염병의 진화>(최석민 글)(프로네시스. 2007년 1월. 9000원)의 저자 최석민은 질병과 그 질병을 극복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가 어린 시절부터 흥미로웠고, 자연스럽게 의과대학에 진학하였다고. 뇌와 관련된 과목에 관심이 기울어 신경외과를 전공으로 택하였고, 뇌거미막밑 출혈과 관련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인간의 뇌 및 척수외상과 유사한 형태의 신경손상을 실험동물에 재현할 수 있는 장치를 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 연구진들과 공동으로 개발하여 그와 관련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명지성모병원 신경외과 과장으로 있으며, 적정진료실장 및 감염관리위원장을 맡고 있다.

 

2007-02-1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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