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인간관 증산도의 핵심에 대한 질문 본문

증산도는./증산도 일문일답

인간관 증산도의 핵심에 대한 질문

세덕 2012. 3. 7. 14:03

증산도의 핵심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증산도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인생입니까?



증산도의 핵심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후천개벽입니다. 이건 무슨 말일까요? 지금은 선천인 우주의 여름철이 모두 끝나고 후천인 우주의 가을철이 새로 시작되는 때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것이 증산도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그러면 우주가을의 핵심 정신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증산 상제님은 한마디로 원시반본(原始返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시반본은 ‘근원 원(原), 처음 시(始), 돌이킬 반(返), 근본 본(本)’ 이라는 글자 뜻 그대로, 본래 시작했던 근본 뿌리로 다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이 나무 그림을 한번 보시죠.
봄 여름에는 나무뿌리가 땅속의 물기운을 끌어올려 나뭇가지와 이파리로 올려보냅니다. 하지만 가을이 되면 나무가지와 이파리에 있던 진액이 다시 뿌리 쪽으로 모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나무의 생명력이 본래의 근본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원시반본의 모습입니다. 만약 가을에 나무가 진액을 뿌리로 돌려보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 나무는 결국 추운 가을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말라 비틀어져 죽어버리고 맙니다. 물론 그 이듬해에는 다시 싹을 틔우지 못하죠.
인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주의 가을이 되면, 모든 인간이 자신의 순수한 본성자리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혈통적으로도 자신의 뿌리를 찾아야 하고, 영적으로도 자기 영혼의 순수모습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벽철에 자신의 생명이 연기처럼 흩어져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생명의 원시반본을 성취할 수 있을까요? 상제님은 그 해답을 이렇게 내려주셨습니다.
첫째는 자기 조상신을 잘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둘째는 자기 민족의 뿌리를 잘 받들라고 하셨습니다.
셋째는 자기 생명의 뿌리를 찾기 위해 태을주 수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태을주 수도가 증산도의 핵심인데, 도장에 나오시면 태을주 수도법을 전수받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사랑을 말하고, 불교에서는 자비(慈悲)를 말하는데, 증산도에서 주장하는 건 뭡니까?


증산도 가르침의 핵심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을 말하면 보은(報恩), 해원(解寃), 상생(相生)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 해원(解寃)은 ‘원한을 풀어버리라’는 말인데, 이 해원이 증산도 가르침의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기독교에서는 2000년이나 사랑을 외쳤습니다. 불교에서는 자그마치 3000년이나 자비를 부르짖었구요. 그런데 왜 이 세상이 이 모양일까요? 왜 사랑이나 자비가 아직도 이 세상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인간은 전쟁을 일삼고 또 서로서로 속이면서 살아갈까요?
상제님께서 그 해답이 바로 원한의 문제 때문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가슴속 깊은 곳에 원과 한이 맺히고 쌓여 있는데, 어떻게 서로 사랑을 할 수 있겠습니까?
증산 상제님은 단순히 도덕적인 교화만을 하신 게 아니라, 인류를 쪄누르고 있는 원한을 실제로 풀어버리는 그런 일을 하셨습니다. 이게 바로 천지공사(天地公事)죠. 이건 나중에 자세히 말씀드리죠.
여하튼 증산 상제님은 무엇보다 먼저 원한을 끌러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전 2편 16장 1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 이 때는 해원(解寃)시대이니라. (道典 2:16:1)]]
이 원한이 해소되면, 그 다음에는 서로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원한이 끌러지면 부처님이 말씀하신 자비가 샘물처럼 솟아나게 됩니다.

그러면 왜 인간은 원한을 맺을 수밖에 없을까요? 이런 근본적인 게 궁금하시죠?
그 해답이 바로 이 우주일년 도표에 나와 있습니다. 우주 봄 여름철은 상극시대거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원한이 맺히는 거예요. 천리가, 우주 자연섭리 자체가 상극으로 기울어져 언발란스(불균형) 되어 있으니까, 인간도 힘센 사람 약한 사람이 있고, 부자가 있고 가난한 사람이 있고, 고통을 주는 사람이 있고 고통받는 사람이 생겨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원한이 맺힐 수밖에 없는 거죠.
비유를 하나 들어볼까요. 한 여름철이 되면 무척 덥죠. 더우면 사람이 옷을 벗게 되어 있어요. 이건 불교인이든 기독교인이든, 무신론자든 유신론자든, 누구나 다 그렇죠. 더우면 옷 벗는게, 인간성이나 신앙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하등의 관계가 없어요.
이와 마찬가지로 선천에는 원한이 맺힐 수밖에 없어요. 선천 즉 우주의 봄 여름철에는 음양의 균형이 맞지 않아요. 음 기운보다 양 기운이 더 많아요. 그래서 남는 양 기운으로 만물을 분열시키고 성장시키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원한이 맺히는 거예요.
그런데 기존종교는 이런 근원적인 문제는 아예 언급조차 안 했어요. 그러고는 인간에게 도덕적으로만 착해지라고만 한 거죠. 근본 문제는 하늘 땅에 있는데, 사람에게만 ‘사랑하라, 자비를 베풀어라’ 그러니 문제가 해결될 턱이 없는거죠.

 

 

요즈음 신문을 보면 상생의 정치니, 상생의 경제니 그런 말이 심심찮게 자주 등장하던데, 상생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