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천지조화
<환단고기 삼성기>『삼성기』 하의 첫 문장 본문
<환단고기 삼성기>『삼성기』 하의 첫 문장
<환단고기 삼성기>『삼성기』 하의 첫 문장
『삼성기』 하의 첫 문장
그러면 원동중은 『삼성기』를 어떻게 시작하고 있는가? 『삼성기』 하편의 첫 문장을 다함께 읽어보자.
人類之祖(인류지조)를 曰那般(왈나반)이시니
初與阿曼(초여아만)으로 相遇之處(상우지처)를 曰阿耳斯비(왈아이사비)라.
이분은 인류의 조상이 ‘나반’과 ‘아만’이라는 것을 가장 먼저 밝히고 있다. 인간이 태어나서 처음 찾는 소리가 ‘아빠, 엄마’다. 서양에서도 ‘파파, 마마’, 소리가 거의 같지 않은가. 지금부터 한 20년 전,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의 이 모某 교수가 중앙일보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원이 ‘나반’과 ‘아만’이라는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인류지조를 왈 나반이시니 초여아만으로 상우지처를 왈아이사비라’
이것은 “인류의 시조를 나반이라고 하며, 처음에 아만과 서로 만난 곳을 ‘아이사비’라고 한다”는 뜻이다. 이 ‘아이사비’는 이전 판본에서는 ‘아이사타’라고 읽혔다. 그런데 『환단고기』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한 이유립 선생은, 그 제자의 증언에 의하면 이를 ‘아이사비’로 읽었으며, ‘아이 숲’, 즉 ‘원시림’이라고 해석을 했다 한다. 이것이 더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되어 이번 판본부터 취하게 되었다.
『삼성기』 상과 하를 비교해보면, 상편에서는 인류 시원의 첫 번째 나라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는데, 하에서는 ‘인류사 최초의 인간은 누구냐? 인류의 아버지 어머니는 누구냐?’ 하는 문제로 시작하고 있다. 상편의 시원국가 이야기와 하편의 인류시조 이야기가 음양 짝이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불가의 절에 가보면 ‘독성각’獨聖閣이 있는데, 거기에 인류의 시조 나반과 이름이 같은 나반존자가 모셔져 있다. 한편 ‘대웅전’도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환웅전’의 ‘환웅’을 몰아내버리고서 ‘대웅전’이라고 한 것이다. 불가에서는 설화 속의 어떤 영웅을 추모하기 위해 ‘대웅’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이치에 닿지도 않는 소리를 하지만, 그것은 본래 불가의 풍속이 아니다.
유일신有一神의 ‘일신’은 ‘삼신’
다시 안함로의 『삼성기』로 돌아가 두 번째 구절을 보자.
有一神(유일신)이 在斯白力之天(재사백력지천)하사 爲獨化之神(위독화지신)하시니
일신一神, 곧 하나님이 시베리아의 하늘에 머무시면서 홀로 변화하는 신, 스스로 조화를 일으키는 신이 되셨다는 말이다. 첫 줄에서 환국의 개창을 이야기하고서는, 문맥의 흐름이 하나님의 문제, 신의 문제로 돌아간다.
이것은 인간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만든 궁극의 손길인 ‘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일신은 자연신으로서 무형의 하나님이며 조물주 하나님이신 삼신을 말한다. 우리 한민족의 하나님 사상이 여기서 일신으로 표현되어 있다.
예전에 내가 이 구절을 처음 읽고서 ‘아, 여기에 동방의 유일신 사상이 나오는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우리 동방에서는 하나님을 있을 유 자를 써서 유일신有一神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오직 유 자, ‘오직 한 하나님only one God’라는 의미로 유일신唯一神이라고 한다. 여기서 동서의 신관이 확연히 달라지면서 음양으로 대극對極의 성격을 보인다.
동방의 유일신관은 태초에 한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 일신은 3수 원리로, 즉 세 가지의 창조 덕성으로 만물을 지으신다. 이 우주 안의 크고 작은 모든 것, 극대 세계의 우주나 극미 세계의 원자까지도 모두 3수의 원리로 구성되어져 있다. 시간도 과거·현재·미래로, 계절도 봄에 씨 뿌리고 여름에 기르고 가을에 거두고, 전부 3수로 되어 있다.
이처럼 3수의 원리로 만물을 창조하며 변화를 열어나가기 때문에, 동방에서는 조물주 하나님을 삼신이라고 한다. 이것이 『삼성기』에서부터 『환단고기』 전체에 나타나는 “삼신즉일신三神卽一神”, 삼신은 곧 일신이라는 구절의 참뜻이다. 삼신이라고 해서 세 분의 신이 독립해서 있다는 것이 아니다.
서양에서는 ‘한 하나님과 삼위’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세 위격으로 존재하며 그 삼위는 일체라고 한다. 쉽게 말해서 한 하나님이 아버지, 아들, 성령으로 역할을 분담하지만, 삼위 하나님의 본질은 ‘하나’로서 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창조하고, 아들은 구원하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사역을 한다. 그들은 이 성령이 오직 아버지로부터만 나온다는 동방교회(그리스 정교와 러시아 정교)와 성령은 아버지에게서만이 아니라 ‘아들에게서도’ 나온다 하는 서방교회로 나뉘어 천 년 동안 논쟁을 벌여왔다. 그것이 ‘필리오케filioque’ 논쟁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철저한 유일신이다. 하지만 실제 뚜껑을 열고서 보면 아버지가 있고, 아들이 있고, 성령이 있다. 이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유일신이라고 하면서 왜 아버지가 있고 아들이 있고 성령이 있느냐’고 하면서 헷갈려 한다.
‘승유지기’에 담긴 지기사상
그 다음 구절로 가 보자.
光明(광명)으로 照宇宙(조우주)하시며 權化生萬物(권화생만물)하시며
長生久視(장생구시)하사 恒得快樂(항득쾌락)하시며 乘遊至氣(승유지기)하사 妙契自然(묘계자연)하시며
無形而見(무형이현)하시며 無爲而作(무위이작)하시며 無言而行(무언이행)하시니라.
‘광명으로 우주를 비추고 조화권능으로써 만물을 낳고, 영원히 사시면서 언제나 변치 않고 기쁨의 조화경계에 머무르시며, 지극한 조화기운을 타고 노셨다.’
‘승유지기’, 여기에 ‘지기至氣사상’이 나온다. 이것도 깜짝 놀랄 만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신이 지기를 탄다, 즉 신이 어떤 매체를 갖고서 우주를 만들고 역사를 만든다는 것이다. 서교에는 이런 사상이 전혀 없다.
동학을 창도한 최수운은 이것을 ‘내유신령內有神靈하고 외유기화外有氣化라’고, 여덟 글자로 말을 했다. 안으로는 신령함이 있고 밖으로는 기로 꽉 차 있어, 그 기의 조화가 있다는 뜻이다. 신이 지기를 타고 하늘과 땅과 인간과 만물과 역사를 구성한다는 말이다. 이 지기사상이 동학에서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으로 나타난다.
그 다음이 ‘묘계자연’이다. 이는 ‘진실로 오묘하게 스스로 그러함을 따른다’는 뜻으로, 선가 또는 도가에서 쓰는 전형적인 표현이다. 한자말 자연自然의 본래 의미는 ‘스스로 그러함’이다.
‘천지자연天地自然’이란, ‘하늘과 땅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것이다. 천지는 생장염장으로 스스로 둥글어가지 않는가. 우주의 자연 법칙에 의해 그렇게만 변화를 하면서, 천지는 영원히 둥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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